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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21. 2023

<단편소설>잃어버린 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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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씨는 우유 안 마셔요?”

“네, 제가 우유를 못 마셔요”

“유당불내증? 뭐 그런 것 때문인가요?”

“아니요. 치즈 같은 우유 가공식품은 잘 먹는데, 이상하게 우유는 안 먹게 되네요. 저도 제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요? 특이하네요. 치즈는 먹는데, 우유를 못 마시는 건”     


 나는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 억지로 먹어보아도 다 게워내기 일수다. 평생을 우유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내가 딱히 우유를 먹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오늘도 직장동료와 함께 새로 생긴 빵집에서 빵을 먹는데 나만 오렌지 주스를 들고 있다. 물론, 우유가 술이나 담배 혹은 커피처럼 사회생활에서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왜 우유를 먹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궁금하다.      


“태수씨,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빵이 맛이 없어요?”

“아니요. 아주 맛있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네요. 이제 일어나나요?”

“아니에요. 아직 점시시간 좀 남아서 천천히 먹어요. 아참, 오늘 일 끝나고 다들 펍(PUP)에서 한 잔 하려고 하는데 어때요? 오늘 시간 괜찮아요?”

“어쩌죠. 제가 오늘은 동창회가 있어서. 오늘 참석은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아, 그럼 다음에 같이 마시죠.”     


 일을 마치고, 친구가 보내준 술집에 도착했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겨우 친구를 찾아 말을 건냈다. 


“야, 언제 왔어? 그리고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어 왔냐? 우리 반 애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전체 학년이 다 나온 거 같더라. 그래서 사람이 좀 많은 거 같아, 지금 내가 우리 반 애들만 찾아서 7번 룸으로 보내고 있으니까 너도 거기서 기다려”

“응 알았어, 근데 애들은 많이 왔냐?”

“너 까지 오면 8명 째야”     


친구가 이야기한 7번 룸으로 발을 돌렸다. 다행히 룸에 도착하자, 아는 친구들의 얼굴이 몇몇 보이고, 밖에 보다 시끄럽지도 않아 안도감이 들었다.      


“너 태수니? 얘들아, 태수 왔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해주며 덕담을 나눴다. 친구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지난날 걱정 없이 놀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그 때, 나를 초대한 친구도 합류했다. 나를 끝으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5학년 5  반 40명 중에 오늘 동창회에 나온 사람은 8명뿐이 안 되나 보다. 친구의 건배사로 왁자지껄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정리가 된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다시 옛 추억을 끄집어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미진이가 들어왔다.     


“어, 미진이 왔다. 여기 오기까지 복잡했을 텐데, 잘 찾아 왔네”     


 날 초대한 친구는 미진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아마, 미진이도 나처럼 이 친구가 초대했나보다. 미진이는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조각중 하나다. 5학년 첫 반 배정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교실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는 친구가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밝은 미소 그리고 귀여운 덧니까지 어떻게 보면 왈가닥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이뻤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이름은 미진이라고 했다. 남몰래 나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키웠었다. 하지만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기억이라고는 미진이를 처음 봤을 순간 정도만 기억이 났다.      


“어, 태수도 왔었네, 태수야 나 기억나? 나 미진이야”   

  

미진이가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미진이구나,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너는? 왜 그동안 연락이 한 번 도 없었어?”

“나이를 먹으니 다 잊고 살게 되더라, 특히 초등학생 때 추억은.. 그러다 보니 친구들도 다 잊어 버렸지, 서운했다면 사과할게”     


 미진이가 나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깔깔 웃는 그녀에게 예전 모습이 남아있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또 설레어 빈 잔만 손으로 잡고 돌리고 있다. 미진은 그런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내게 볼이 빨개졌다며 혹시 자신을 만나 설랜거냐고 재차 묻는다. 술 때문이라고 이야기해도 뭘 안다는 듯이 그저 웃고만 있다.      

 그러다 문득 나와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내 기억에 없는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술기운에 물었다.     


"미진아, 나는 너에 대한 예전 기억이 별로 없어. 우리 사이는 어땠어"

"너 정말 기억 안 나?"

"응, 사실 기억이 잘 안나"

“그랬구나”


이번에 그녀는 조금 쓸쓸히 웃었다.      


"너랑 나랑은 말이지, 서로 좋아 했어, 그리고 애들 몰래 만났었어, 그것도 꽤 오래"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하자 미진은 조금 실망한 눈치다. 

"그럼 넌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도 모르겠네?"

"정말 미안해 그 때의 기억이 없어, 혹시 알려줄 수 있을까?"     


2000년 대 초     


"야 패스,패스"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먹은 아이들이 공을 들고 나가고, 몇몇 여자아이들은 좋아하는 가수들을 보며,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태수야, 우리 축구하러가자!"     


친구 영수가 제안을 했지만, 숙제가 밀렸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나는 곧장 책을 챙겨, 6층으로 향했다. 그 곳에 미진이 서있다. 나보다 밥을 조금 더 빨리 먹고 미리 올라갔다. 우리학교 6층에는 비교적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며, 학교 내 유일한 비품창고가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선생님 심부름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나와 미진의 밀회장소이다. 점심시간 20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도 안 들키고 잘 왔어?"     

"응, 다행히 안 들켰어! 미안해 매번 나 때문에 애들이 여자애들이랑 다니면 왕따 시키는 분위기라 조금만 이해해줘"

"알아, 너 네 남자애들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어"     


미진이를 몰래 만날 때 마다,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미진은 주머니에서 오늘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건 내 주었다.


"자! 먹어 너 우유 좋아하잖아"     


마침 목이 말랐던 나는 미진이 준 우유를 빠르게 마시고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내가 웃자 미진이도 따라 웃으며 한적한 그녀와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점신시간 영수가 다급하게 내게 뛰어왔다.    

  

"야, 태수야! 너 혹시 미진이랑 사귀냐?"

"뭔 소리야 내가 걔랑 왜 사겨? 누가 그래?"

"5반 민재가 너랑 미진이랑 6층에서 있는 거 봤다던데, 너 맨날 점신시간 되면 사라지더니 결국 여자였냐?"     

영수는 나를 비난하며 차갑게 웃고는 그들 무리를 부르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이야기 해야만 했다.      


"뭔 소리야? 그 때는 담임이 미진이랑 나랑 불러서 비품 좀 채우라고 해서 올라간거야 내가 걔랑 왜 만나?"

"거짓말 하네 비품이 뭐 얼나 무겁다고 담임이 두 명 씩이나 시키냐??"     

내 마지막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하면 믿을 건데??"

"때려"

"뭐?"

"미진이 밀치고 와봐, 그럼 믿어줄게"     


차라리 왕따를 당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남은 초등학교 기간 동안 얘들한테 시달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져, 친구들과 서서 이야기 중인 미진를 밀쳤다. 미진은 '아얏'이라는 탄성과 함께 넘어졌고, 나를 주기 위해 주머니에 있던 우유가 터져버렸다. 터진 우유는 교실바닥을 빠르게 퍼졌다. 미진의 친구들이 나를 때렸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서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터져버린 우유만 바라봤다.      


 내게 미진이를 밀치라고 시킨 영수도 멋쩍었는지 내게 와서는 한마디 했다.      


"야, 그렇다고 진짜 밀면 어떡하냐?"     


영수의 그 말에 참았던 모든 울분이 터져버렸다. 영수를 바닥에 누위고, 주먹으로 있는 힘껏 영수를 때렸다.      

그 날, 나는 사랑하는 이와 친한 친구들을 잃었다.      


현재     


"그래서 결국 너는 나랑 영수를 때린 죄로 1주일 근신처분을 받고는 졸업할 때까지 조용히 지냈어"     

미진의 설명을 다 듣고는 나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끝없이 몰려왔다. 이런 내게 오늘 밝게 인사하고, 친하게 대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했다. 

"미진아, 미안해 그 때는 너무 어렸어, 그래서 그랬나봐 비록 기억은 다 나지 않지만,  지금 너에게 하는 사과는 진심이야"

"그렇게 사과 안 해도 돼!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됐지, 물론 너가 날 때려서 헤어지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너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미진아"     


미진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틈타 가볍게 포옹를 했다.      


"고마워, 내 과거를 알려줘서, 사실 나는 어느 시점부터 우유를 먹지 못했어. 먹으면 다 토하는 바람에, 근데 왜 그랬는지 알겠네"

"왜 그랬는데? 그때 우유가 터져서 트라우마로 남은 거야?"

"아니 좀 더 본질적인 문제인 거 같아. 날 위해 주머니에 넣은 우유가 터지는 것을 보는 순간, 너를 좋아하지만 반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었을 거야"     


미진은 내 말을 듣고는 골똘이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꼴은 못보겠어. 내가 너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줘도 괜찮을까?"

미진아.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나는 널 때린 놈인데"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진은 웃으며 다시 이야기했다. 


"나를 때리기 전에 귓속말로 '사랑해'라고 말했어 그리고 날 때리고는 부들거리는 손을 봤지, 마지막으로 이미 너랑 영수랑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서 각오는 하고 있었어 그래서 그 때 맞은 거 생각하면 그렇게 열 받지도 않아."

"그랬구나"

"근데, 왜 헤어졌는지 알아?"

"아니? 왜 헤어졌어?"

"나 역시 너 처럼 보는 눈들 때문이 였어. 너와는 다르게 내 친구들은 너와 사귀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거든 거기서 너랑 헤어지지 않았으면 평생 쪼다, 등신으로 불렸을 거야"     


미진이는 목이 마른지 맥주를 한 모금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결국, 우리 둘 다 주변 사람들 눈치에 이꼴이 났네. 참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정말 어렸어"

"그러게 말이야"     


미진이와 나는 다시 서로를 바라봤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미진이를 보면서 '다시 우유를 마실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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