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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23. 2023

<단편소설>호우지시절(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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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태수를 기다리고 있다. 미진의 같은 학과선배인 태수는 4학년으로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제 막 입학한 미진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듣게 된 교양과목 수업에서 태수를 만났고, 태수와 미진은 서로가 유일한 같은 학과 학생이였다. 미진은 수업시간마다 같은 학과라는 핑계로 태수의 옆자리에 앉으며, 태수와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날, 태수와 미진이 듣는 교양과목에서 둘 씩 짝을 지어 문화탐방 후 레포트를 쓰는 과제가 주워졌다. 자연스럽게 태수와 미진이 짝이되었고, 오늘 미진이 설레며 태수를 기다리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미진아, 미안해 내가 좀 늦었지? 길을 착각했어"     

숨을 헐떡이며, 태수는 미진에게 사과했다.      

"아, 괜찮아요 선배 저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 그리고 제가 가는 길 알아봤는데 저기 밑에서 버스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된다고해요"

"꼼꼼하네, 그럼 바로 출발하자! 그런데 너 짐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돌아다니다가 출출할까봐 주전부리 좀 만들어 봤어요! 이따 먹어요 선배"

"나는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고마워 미진아 혹시 오늘 늦게 끝나면 내가 저녁 사줄게"

"좋아요 선배!"     


 미진과 태수는 목적지 인 서오릉으로 출발했다.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태수가 초등학생 6년 내내 봄소풍으로 간 곳이라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미진이 챙겨온 계란과 사이다를 마시며, 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달려 서오릉에 도착했다. 날씨는 막바지 봄날씨라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따듯했다. 그 둘은 서오릉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레포트에 사용할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서서 사진을 찍다 보니 둘은 지쳐, 미진이 가져온 돗자리를 피고 앉아, 김밥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선배, 오늘 날씨가 꽤 덥네요. 바람이 분다고는 하지만 너무 습한 것 같아요"

"너도 그러니? 비가 오려나. 정말 바람이 습하네, 그나저나 니가 오늘 만들어온 음식 정말 맛있다. 이거 준비하려면 일찍 일어났어야 했을 텐데 너무 고마워 미진아"

"아니에요. 선배 원래 이런거 만드는 거 좋아해서, 제가 좋아서 만든 거에요. 오히려 선배가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해요!"     


 그 둘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고에 없던 빗방울에 놀라 빠르게 짐을 챙겨 이름 모를 한옥건물의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굵은 빗방울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는지 계속 내렸다. 태수는 추위에 떠는 미진을 바라보며,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었다. 태수의 손길이 미진의 어깨에 닿았을 때, 미진은 태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태수와 처음만난 학과 행사날을 떠올리며 태수에게 이야기했다.      


“선배 그때도 이렇게 벗어주시더니, 오늘도 벗어주시네요. 너무 따듯해요 감사합니다”

“내가 너한테 옷을 벗어준 적이 있었어? 어쩌지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혹시 언제야?”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날은 첫 학과 회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수 십명의 신입생이 한데모여 선배님들이 주는 술을 마셨죠. 저도 그 중 하나였고요. 그날 술을 너무 마셔서, 가게 밖 계단에 잠시 앉아있었어요. 저는 인사불성상태였는데, 우연히 그 곳을 지나간 선배가 제게 ‘너 괜찮아? 않춥니?’ 이러면서 옷을 벗어주셨어요”

“아, 기억났어. 걔가 너 였구나, 그날 심지어 추운날이었는데 니가 밖에서 외투하나 걸치지 않고 있어서 얼마나 놀랐었다고, 진작말하지 그랬어”     


태수는 신이난 듯이 이야기했다.      


“선배”

“응? 미진아”

“혹시, ‘호우지시절’이라는 말 아세요?”

“처음 듣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좋은 비는 때를 맞춰 내린다는 말이에요!”  

   

말을 마친 미진은 태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미진의 행동에 태수도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미진을 안아주며, 그녀에게 나지막히 이야기했다.     


“좋은 말이네, 지금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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