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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28. 2023

<단편소설>죄수와의 대화(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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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막한 비행기 안, 죄수호송을 위해 특별히 배정 받은 자리에 그와 함께 앉아 있다. 내 왼손에는 그의 도주를 우려한 수갑이 채워져 있고, 승객들이 놀라지 않도록 수갑을 천으로 덮어놨다. 다행히 승객들은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나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사건파일을 열어 그의 기록을 확인했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이었고, 초등학생 때 일본으로 건너가, 월반을 거쳐 고작 15살의 나이에 고등학교에 진학한 수재였다. 그런 그가 동급생 7명을 도끼와 망치로 처참히 살해했다. 살해 후 태연히 편의점으로 가 도시락을 사먹고, 점원의 전화를 빌려 경찰에 자수를 했다고 한다. 일본 언론은 그의 대담한 범죄방법에 대해 주목하여 연일 그와 관련한 기사로 도배를 했다. 기사 중 그의 범행에 관한 기사가 유독 많았는데, ‘그는 자신과 친한 7명의 학생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건 낸 후, 잠에 빠진 친구들을 차례차례 망치로 머리를 쳐내어 숨통을 끊고, 도끼로 시체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기로는 17살의 학생이 계획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잔인한 방식의 살인이었다.      


 일본 언론도 그가 지속적인 괴롭힘에 의한 원한 살인이라고 추측을 하였다. 일본사회에서학교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니, 사건을 이용해 국민적 쇄신을 염두하여 추측보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지인이 인터뷰에서 ‘그는 전혀 괴롭힘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살해당한 7명과는 너무 친했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전해졌고, 민망해진 언론은 더 이상 ‘그의 살해 동기’와 관련한 기사를 써내지 않았다. 결국, 그가 친구들을 살해한 동기는 영영 보도되지 않았으나 가십만 쫓는 주간지에서 이따금 그를 ‘순수악’을 동기라고 떠들어 대는 정도였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 학생 7명을 살해한 한국 소년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일본법으로 하자면 그는 사형이다. 아무리 어린나이에도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아이에게 사법부가 봐줄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조사과정에서 보인 행동들은 더 이상 그를 어린소년이라고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그를 한국으로 송환해달라는 정식 공문이 한국 대사관을 통해 일본 정부로 전달됐다. 일본 국민의 분위기는 ‘일본사람을 살해했으니, 일본에서 처리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의 송환 요청은 일본 정부에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다른 사건을 크게 키워 그를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언론 작업을 통해 한달 동안 일본사람들 뇌리에서 그를 옅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사형판결을 실제로 집행하는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내내 그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순수악’과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태우고 가는 경험은 이제껏 많은 호송업무를 했던 나 같은 베테랑도 긴장하게 했다.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고, 나는 그를 서울로 이송해야했다. 나는 긴장을 늦출 요량으로 스튜어디어스를 불러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부탁했다. 그러자 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그가 내게 이야기했다.  

    

“형사님, 저도 커피로 부탁 합니다”

“일어났구나, 커피 마시고 싶니?”

“네, 형사님”     


나는 스튜어디어스를 보며, 그의 커피도 요청했다.


“저기, 커피 한잔 더 부탁드려요”       


최대한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간단한 스몰토크를 통해 그를 짧게나마 파악할 요량으로 나는 일부러 말을 걸었다.      


“일본에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다고 들었다.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니?”

“괜찮습니다. 형사님, 그리고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뜬금없이 운이 좋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제가 운이 좋은지 궁금하시죠? 동급생을 7명이나 살해했는데, 저를 수사했던 형사님들은 저를 친근하게 대해주셨거든요. 지금 제 옆에 있는 한국 형사님도 마찬가지구요”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 느끼니 다행이다. 아직 한국에 가려면 1시간 20분 정도 남았단다, 조금 더 자는 것은 어떠니?”

“아니오, 형사님, 잠은 충분히 잤습니다. 저 화장실을 좀 다녀오고 싶은데”

“그래, 지금 가자”     


 나는 그를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비행기 화장실 특성상 둘이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오른팔에 묶여있는 수갑을 풀어주고, 그에게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하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밖에서 대기하며, 그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을까 긴장하며 앞을 지켰다. 5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나왔다. 그리고 순순히 오른쪽 손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커피와 다과가 도착해있었다. 커피 향을 맡으며, 사건파일을 들췄을 때,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형사님”

“응, 왜 그러니?”

“형사님은 친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예전 학교 수업시간에 들은 친구에 대한 정의가 생각나 그에게 이야기했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긷는 하나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는 나의 대답이 사뭇 놀라웠는지 눈이 커지며, ‘아’라고 짧은 감탄사를 밷었다.


“너가 생각해도 멋진 말이지?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친구를 정의하기에는 저 만한 표현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러네요. 형사님, 형사님은 친구에 대한 정의가 확고해서 다행이에요! 제가 만난 다른 어른들은 아무 생각들이 없었거든요. 이런 답변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형사님, 저는 친구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니?”

“친구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 너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는 나와의 대화가 재밌는지 연신 싱글벙글거린다. 이야기할 때보면 확실히 어린 아이라고 느껴졌다.      


“형사님, 그래서 제 친구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말씀드렸잖아요. 친구란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라고”

“너가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했으나, 그거랑 너가 친구들에게 한 행동이랑 연관이 되어있니?”    

 

그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유약했어요. 머리는 조금 좋았을지 모르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항상 힘들었죠. 그러다 만난 친구들이에요. 그 7명은”

“그랬구나, 그럼 너에게는 소중한 친구들 이었을 텐데..”     


나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지만, 그는 나의 상황을 고려한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 7명은 제게 용기를 주고, 싸움을 가르쳐주고, 재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죠. 하지만, 이제 저는 충분히 용기 있고, 싸움 잘하고, 스스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쓸모없어진 친구들을 없앤 것 뿐 이에요. 형사님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눈에서 광기를 보았다. 왜 그를 ‘순수악’이라고 정의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되었다.      


“너의 신념 때문에 친구들을 죽였구나”     


나는 그의 질문에 어떠한 동조도 하지 않았다.    

  

“형사님은 제가 잘못한 거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시네요?” 

“그래, 너의 신념 때문이라면 내가 해줄 이야기가 없구나”

“고마워요 형사님, 제 신념을 이해해준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해요”     

그때, 내 왼편으로 무엇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때,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사님, 저는 원래 왼손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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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어디어스가 고객이 모두 빠져나간 객실을 둘러보고 있다. 찬찬히 둘러보는 중에 형사와 죄수가 앉았던 자리에 10cm 정도의 얇은 쇠막대가 보였다. 아까 남자화장실 휴지걸이가 없어졌었는데, 그게 그들 자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스튜어디어스는 대수롭지 않게 쇠막대를 주어 남자화장실 휴지걸이에 꽂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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