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논리와 철학’ 교양 수업이 드디어 끝맺을 준비를 하며 마지막 수업을 준비했다. 담당 교수는 마지막 수업에 시험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직전 시간이 이야기를 했다. 학생은 시험에 준하는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상에 앉아있다, 교수가 들어오고, 교수는 담담히 출석을 부르며 이름 뒤에 숫자를 하나 덧붙였다. 나 역시 내 이름 ‘김태수’ 뒤에 3번 이라는 번호가 부여됐다. 학생들은 뜻 모를 교수의 행동에 쉽사리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모두의 이름이 호명될 때 까지 기다렸다. 마지막 아이가 호명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교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 오늘은 내가 조금 특별한 출석체크를 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내 수업을 들어준 학생들 답게, 오늘도 아무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해주어 기쁩니다. 내가 직전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오늘 시험에 준하는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텐데요. 눈치 빠른 친구들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오늘 수업은 전체 토론 수업입니다. 그 동안 배움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내가 내는 주제에 대하여 찬반 토론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각각 학생들을 호명하면서 이름말미에 붙여준 번호는 같은 조입니다. 같은 조원끼리 약 1시간 토론 후, 다른 조원들과 토론을 진행할 겁니다. 총 조는 6개 조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조마다 성적과 학번에 고려하여 4명 씩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1조와 2조, 3조와 4조, 5조와 6조가 각각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일 겁니다. 각 조는 우선 조장을 선별하여,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 옆의 붙은 숫자의 의미를 깨닳고, 자신의 숫자에 맞는 조원을 찾기에 분주했다. 나 역시 같은 3조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3조에 배정된 김태수 입니다.”
각자 조원들이 차례로 인사를 하고, 조장을 뽑았다. 조장은 가장 나이가 많은 내가 됐다. 교수의 안내대로 조장들은 밖으로 나가, 교수가 준비한 검은 박스에 손을 넣어 주제를 골랐다. 주제는 총 세 가지 였고, 나는 그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흡연과 금연’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4조 조장과 상의 후 우리 측은 흡연에 찬성하겠다는 쪽으로 진영을 선택했다.
밖에서 결정된 사안을 조원들과 공유했다.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눈치다. 한 학기 동안 한마디도 해보지 않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들 모두 흡연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한시간 동안 흡연에 대한 좋은 점과 금연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를 박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약간의 혼란이 왔는데, 그 때 조원 중 가장 막내 영수가 대뜸 ‘형님들 담배나 하나 피면서 생각하시죠.’라고 이야기하자, 모두가 웃으며, 흡연의 좋은 점을 말하기 위해 담배부터 피자는 여론이 생기며, 나를 포함에 모두 담배를 피러 나갔다.
짧은 흡연 타임에도 여전히 논지를 박살 낼만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껏 금연하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흡연하라는 이야기는 못들 었기 때문이다. 슬쩍 4조 토론하는 것을 쳐다보니 활발한 토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까딱하다가는 4조의 주장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채 마지막 수업이 허망히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 때, 막 군대를 전역한 꾀돌이 민수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냈다.
“뭐 어렵게 생각할게 있겠습니까? 금연을 해야하는 이유는 100가지가 넘지만 흡연을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뻔합니다. 우선 금연을 해야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건강이겠죠? 두 번째로는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저기 4조가 아무리 날뛰고 생각을 모아도 위 두 개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저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 됩니다”
민수의 말을 듣고는 다른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막내 영수가 민수의 말에 힘을 보탰다.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흡연자든 아니든 모두 밖에서 미세먼지나 자동차 매연을 마시잖아요. 사실 흡연이 폐에 좋지 않다는 주장은 완벽한 무균실에서 환자에게 담배만 피우게 한 뒤 그걸 수치화 해야하는데, 그런 자료가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이제 껏 흡연과 건강에 대한 상관관계는 외부의 자극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한 체, 나온 결과물들일 거에요”
영수의 그럴 듯한 논리에, 모두가 박수를 쳤다. 3조에서 갑작스런 박수갈채가 들리자 4조 학생들이 움찔하며, 쳐다본다. 나는 조원의 이런 기세에 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부연했다.
“그럼 우선, 저들이 내새울 첫 번째 논리 ‘건강’과 관련해서는 우리 측에서 반박이 가능하겠네, 그렇다면 비흡연자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어떻게 할까?”
조언들을 골똘이 생각하다가, 민수가 다시 아이디어를 냈다.
“근데, 불쾌함이라는 감정은 상대적이지 않나요?”
나와 영수가 동의했다.
“그러니까, 이 불쾌함이라는 감정 자체는 비흡현자들의 생각일 뿐이에요. 즉, 우리 흡연자 입장에서는 비흡연자들의 그런 불쾌한 감정이 더 불쾌해지는 거죠”
“너의 주장은 비흡연자들의 그런 생각들 자체가 오히려 흡연자를 불쾌하게 한다는 의미인거지?”
“맞아요. 형님”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민철도 이번에는 민수의 말을 듣고 좀 더 부연했다.
“그러네, 흡연자의 입장을 대변해야할 우리가 비흡연자의 논리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
나는 얼마 남지않은 시간을 체크하며,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결론 내자, 우선 저들이 내세울 근거 1, ‘몸에 좋지 않기 떄문에 끊어야한다.’ 근거 2. ‘비흡연자들에게 불쾌함을 선사한다.’에 대비하여, 근거 1에는 흡연자가 건강에 좋지 못하는 이유는 흡연 뿐만아닌 다른 외생적 변수도 있을 수 있다.라는 논리로 반박하고, 근거 2에는 비흡연자가 느끼는 불쾌함 자체를 흡연자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반박하면 되겠다.”
이제 5분 남짓 남은 시간 속에서 우리 3조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 마냥 비장한 표정으로 4조의 공격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차례가 되고, 모두가 보는 앞에 단상에 마련된 책상으로 올라 토론 준비를 끝내고는 나는 얕은 한 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