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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pr 04. 2023

<단편소설>영웅이 된 자, 그리고 그 후(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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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손님 괜찮으세요?"     


쓰러진 손님에게 다가가 태수는 CPR을 하며, 옆에 있는 다른 손님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다급이 요청했다. 태수는 응급조치에도 쓰러진 손님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입을 벌리고, 손을 넣어 그의 기도를 막고 있던 음식물을 빼냈다. 그제야 그 손님은 콜록 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 아까 연락한 구급차가 도착했다. 의식을 어느 정도 차린 그 손님은 응급구조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구급차에 올랐다. 태수의 빠른 판단에 의해 3분이라는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었다. 태수는 카페 안 다른 손님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태수의 선행이 지역신문을 시작으로 지상파 뉴스까지 알려졌고, 덩달아 태수도 갑작스런 인기를 실감해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갑자기 찾아왔다.      


우연히 태수가 자신의 가게의 손님을 구했다는 뉴스를 접한 기자가 그 손님에 대한 신상을 쫒던 중 , 그가 과거 몇 차례의 살인사건의 주범이었고 복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내용을 파악한 뒤, 이를 기사로 썼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살해당한 가족과 지인이 그 기자를 통해 인터뷰를 한 후속기사가 나오자, 태수를 영웅시 했던 여론이 '악마를 구한 자', ' 지옥에서 온 의사' 등등 비아냥거림으로 바뀌다가 결국 태수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그가 열심히 일궈낸 카페도 손님들의 발이 뚝 끊기며, 결국 폐업 수순을 밟아야 했다. 카페영업 마지막 날, 태수를 사지로 몰아넣은 기자가 태수의 가게를 찾았다. 태수는 그 기자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곧바로 알아봤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내가 망했으면 후속기사 쓰려고 오신거에요?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어요. 오늘 카페 마지막 날이거든요. 멀쩡한 사람 망해서 미처가는 것 좀 찍으세요. 내가 초상권 이딴 거 이야기 안 할테니 마음껏 찍으라고요"    

 

태수는 비아냥 거리며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바닥에 세차게 집어던졌다. 결국 유리잔은 깨지고, 태수의 행동에 놀란 기자는 약간 주춤했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 곳의 폐업 소식은 건너 듣고는 사과하러 왔습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내일 1면에 이런 뉴스가 나올 거 에요. '영웅을 몰락시킨 기자가 그 몰락한 영웅에게 사지가 찢겨 죽다' 그 꼴 보기 싫으면 당장 돌아가세요"     


"당연히 제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이야기를 좀 들어줄 수 있어요? 저는 기자에요.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구요"     


"내가 구한 사람이 살인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뭐가 달라지는 거죠?"     


"그거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나가세요. 당신네 기자들은 전후좌우 생각없이 써갈기면 끝이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요. 그 사람이 살인자든 말든 그냥 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을 뿐이에요. 사실 당신 원망을 많이 했어요. 날 보는 사람들도 원망하고요. 근데 나는 같은 일이 벌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구하겠어요. 그게 설령 이번과 같은 살인자일지라도요."     


태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다한 것 뿐입니다. 내게 미안하다면 오늘 있었던 일을 꼭 기사로 쓰세요."     


태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기자의 등을 떠밀며 쫒아냈다. 그리고 기분 나쁜 기자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소주 한잔을 털어 넣었다.     


다음날, 기자는 태수와의 약속대로 전날의 이야기를 '영웅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후속기사를 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태수와 그 살인마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태수는 잊혀 지는 사람이 되었다. 기자 역시 그 후속 기사를 끝으로 더 자극적인 일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제2의 태수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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