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문을 닫고 내부수리에 들어간다는 공지가 나왔다. 아마도 연말 연초에 휴가를 내는 직원들이 많다 보니 한 해 동안 미뤄왔던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다. 더 좋은 시설로 새 단장을 하겠지만 당장 아침에 충전이 필요한 아메리카노의 부재가 걱정이다. 옆에 있던 동료와 함께 회사 근처의 다른 카페에 가 보니, 우리 회사 동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채우고 있다. 다들 부족한 카페인을 채우러 나온 모양이다.
내 기억 속에 처음 등장한 커피는 부모님이 주말 아침에 드시던 달콤한 믹스 커피다. 달달한 향이 올라오는 커피에 에이스 크래커를 같이 드시곤 했다. 애들이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하여, 다 마신 커피잔 아래 한 두 방울만 맛볼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 꼭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 커피였던 기억이다.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구분하기 시작한 건 연애를 시작한 이후였다. 이제는 제법 내가 어떤 커피맛을 좋아하는지 기호가 생겨서 새로운 곳에 가면 이런저런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곳저곳 해외를 다니다 보니 각 나라마다 다양한 커피를 맛보게 된다. 유럽에서 마시는 커피는 상당히 풍미가 깊고 진하다. 아침에 한잔을 마시면 정신 번쩍 든다. 이탈리아에 가면 동네의 작은 커피숍에서 갓 뽑은 에스프레소 한잔에 각설탕을 넣어 마시는데, 쌉쌀하고 달콤한 걸쭉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국 쪽에서의 커피는 상시 비치되어 있는 보리차 같은 느낌이다. 원두를 천천히 내려서 은은한 향과 함께 따듯함을 마신다. 여러 잔을 마셔도 부담이 없다.
한국의 커피는 차가운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뜨거운 에스프레소 샸을 넣어서 마신다. 한 번으로 부족해서 샷을 추가하기도 하기도 하고 거대한 잔에 대용량을 마시기도 한다. 차가운 냉기로 깨우고, 씁쓸한 카페인으로 한번 더 깨우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에 냉수 한 바가지를 부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아침 냉수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점심 먹은 오후에는 한번 더 충격이 필요하다. 늘 또렷하게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금세 뒤쳐지게 되는 한국의 삶을 닮은 것도 같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 동료들의 손에는 역시 한국식 커피가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