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의 고향

by 신출내기

히로는 하루에 3번 정도 산책이 필요하다. 허스키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유명한데, 9살이 넘은 나이 때문인지 어린 시절 좁은 공간에서 살았던 유기견 시절의 습관 때문인지, 앓았던 심장사상충 영향인지 그렇게 멀고 긴 시간의 산책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반짝이며 슬그머니 다가와서 나가고 싶다는 나름의 소심한 신호를 보내고, 그러면 동네 공원과 뒷산을 한동안 돌고 온다.


새벽에 출근할 때 눈이 흩날리더니 아침동안에 제법 쌓였나 보다. 주중에 산책을 담당하는 아내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겨울에 산책하다 보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아이들도 보게 되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온몸에 겹겹이 이중모를 두르고 태어난 히로는 끄떡 이 없다. 등에는 긴털이 외투처럼 덮고 있고, 엉덩이하고 허벅지에도 긴털이 방석처럼 둘러싸여 있다. 배에는 하얀 보드라운 털이 빈틈없이 내복처럼 무성하다 보니 눈밭의 냉기와 겨울의 찬바람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눈밭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히로는 겨울에 눈밭이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하얗고 검은 몸의 배색이나 두툼한 털이나 모두 무덥고 울창하고 습한 지역이나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눈 밭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아가서 덮인 눈 속을 코로 헤집어 놓다가 배를 깔고 눕기도 하고, 눈이 내려 몸을 하얗게 덮어도 전혀 추운 기색이 없다. 오히려 시원한 듯 발걸음이 가볍다. 어디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혹시 유전자에 새겨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추운 고향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닐까.


오늘 퇴근하면 같이 눈 밭을 좀 뛰어야겠다. 좋아하는 간식도 좀 챙겨가서 오래간만에 만난 시원한 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놀아주어야겠다. 어울리지 않는 대한민국 어느 연립주택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는 시베리아 출신의 허스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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