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튼네 사람들"을 보고
드라마 전성시대가 있었다.
예전에는 라디오에서
국내 인기 작가의 소설을
연속극으로 들려주었다.
성우들이 배역을 정해 요즘의
보이는 라디오 이상으로
연기력이 리얼해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명품배우 나문희 님도
성우로 시작해 훌륭한
연기자가 되신 배우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는
여고 시절 방학 때가 되면 라디오
소설 드라마를 즐겨 들었다.
아침 10시 뉴스 후에 기나긴
광고가 끝나면 나의 귀는 철부지
당나귀 귀처럼 팔랑춤을 췄다.
고 1 겨울 방학 때는
조해일 작가의 "겨울여자"였다.
영화에서는 장미희 배우였지만
내 머릿속의 주인공은
6월의 만개한 장미의
그녀가 아니다. 마음에 점찍어 둔
주인공을 상상하며 라디오 스피커
앞에서 하나하나 장면을 떠올렸다
70년대에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며 우리나라는
TV 드라마 시대가 열렸다.
외화는 미국 드라마가 많았다.
주말 저녁시간에는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세계 제2차 대전중에 전투 이야기인
<컴뱃>을 방영했다.
시그널 음악이 들리면 가슴이 뛰었다.
전투는 언제나 미군의 승리여도
독일군의 전투모와 장교복은
폼나고 멋져서 독일의 승리였다.
수요일에는 <보난자>다.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의리와 용기로 똘똘 뭉친
아버지와 세 형제가 무뢰한 악당과 맞서는
용감무쌍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저 멀리 황야에서 황토 먼지를 날리며
말과 함께 나타나는 네 사람이
경쾌한 말말굽에 맞추어 등장하던
전주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밖에 <도망자>, <소머즈>, <헐크>
<육백만 불의 사나이>, <헐크>, <전격 제트 작전> 등등이 있다.
그때는 뭐든 신박하고 흥미진진한 소재에
폭력 영화여도 덜 폭력적이었고
무엇보다 마음 따뜻하고 정의로운
멋진 주인공이라서 좋았다.
연령 제한도 없었고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보기에 더 재미있어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월튼네 사람들>도
명작 중에 명작 드라마다.
일요일 오전에 방영해서
매주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전날 본 걸로
친구들과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의 대화에 끼고 싶어
밥은 굶어도 꼭 보아야 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CBS방송에서 210부작으로
방영했던걸 한국 방송에서도
보여주었다.
<월튼네 사람들>은 미국 버지니아주
블루리지 산맥 자락에 있는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조부모, 부모, 사남 삼녀 칠 남매,
11명의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산다.
예전에 우리나라도 7 식구, 10 식구
그 이상인 집들도 많았다.
다들 넉넉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월튼네처럼 밥상머리 교육으로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월튼네는 다복하고 시끌벅적한
대가족인 만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당연히 일도 많고 탈도 많다.
희로애락을 담은 미국판 인간극장이다.
일곱 빛깔 각각의 색으로 빛나는
끈끈한 삶의 이야기다.
2차 대전과 대공황이란
어려운 시기를 기독교 가치관과
깊은 가족애로 모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살아간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어른들이
각자 개성이 다양한
가족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살피며
보듬고 아껴주는 가슴 따뜻한 드라마다.
큰아들인 존보이가 일기 형식으로 쓴 가족 이야기를 내레이션으로 극이 전개해 나간다.
살아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힘도
가족애 속에서 자란다는 걸
세상의 중심이
나와 내 가족에게 있다는 걸
어린 시절 텔레비전 드라마가
가르쳐 주었던 거 같다.
그 시절 TV나 라디오가
학교이고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 되었다.
요즘 케이블 tv 히트 방송에서
<월튼네 사람들> 시리즈를
매일 한편씩 보여주는데
저녁 시간에 이걸 보는 재미로
소소한 루틴이 되었다.
오늘은 "여정"편이었다.
이웃집 매건 아주머니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결혼기념일에 결혼식을 올렸던
바닷가로 가는 일이었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돌아가신 후
30년 동안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했고, 바다 여행도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운전을 해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혼자서라도 가보려고 마음먹는다.
아주머니는 지병인 심장병을 앓고 있다.
오랫동안 운전도 거의 하지 않아서
차는 멈추어 있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있었다.
할머니 심부름을 온 존 보이에게
차를 고쳐달라고 부탁을 한다.
주치의는 아주머니가 혼자
운전을 해서 먼 길을
다녀오는 일은 무리라고 말린다.
심장병이 무리한 여행으로 악화되면
혹여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고심 끝에
존 보이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하지만 존 보이는
첫 댄스파티에 가려고
새 바지를 사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파트너인 새침데기 낸시에게
애걸복걸하여 간신히 허락을
받아낸 직후라 들떠 있었다.
더구나 대망의 파티 날짜가
바로 아주머니의 결혼기념일인걸
알고 망설인다.
존 보이는 16세답지 않게
의젓하고 속이 깊은 소년이었다.
아주머니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르는 바다 여행에
동행해 주기로 하고
아쉽지만 댄스파티를 포기한다.
오래전 매건 아가씨는 고향인
스코틀랜드를 떠나 약혼자와 함께
미국행 이민선에 올랐다.
부푼 꿈을 안고 희망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하던 배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
배가 부두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함께 고향을 떠났던 이민자들이었다. 모두 자신의 앞날인듯 축복해 주었다.
배의 선장은 두 사람의 앞날을 축하하며 50달러짜리 금화를 선물로 주었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소중한 금화를 쓰지 않고
평생 간직했다.
30년 전 남편이 죽기 전까지 두 사람은 결혼기념일이 되면 바닷가에 와서
서로를 위한 이 날을 축하했다.
그리고 시내에 고급식당에서
최고급 음식도 먹고 함께 춤도 추며
기념일을 보냈다.
세월이 흐르니 거리도 변했고
예전의 식당도 사라져 버렸다.
매건 아주머니와 존 보이
두 사람은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손님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가 울리고 있었다.
존 보이는 매건 아주머니에게
피아노 음률에 맞춰 춤을 추자고
손을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잠시 망설이다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존보이의 손을 잡는다.
그때였다. 아주머니 눈앞에 낯익은
한 사람이 스르르 나타났다.
죽은 남편 콧수염 신사 마이클이었다.
그는 예전처럼 사랑스러운 미소로
아내를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환영이라도 좋았다. 잠깐이라도
행복했던 그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신나게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머니가
기절하신다. 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아프시다는 걸 몰랐기에 당황해한다.
이렇게 바닷가 여행은 끝나 버리고
아주머니는 영영 자리에 눕고 만다.
의사에게 존 보이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존 보이를 보자
환하게 웃으시며 그에게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사람의 삶에도 누구나 기억할 역사가 있다.
그게 결혼식이다. 요즘은 "결기"라 한다.
우리 부부는 전통혼례를 올리는
"한국의 집"에서 결혼식을 했다.
평생 한번 하는 결혼식을
특별한 장소에서 올리고 싶었는데
학과 선배님의 전통혼례를 보고
마음에 저장했던 장소였다.
신랑은 사모관대 입고
각시는 녹의홍상에 원삼 입고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서로 맞절 올리며 혼인했다.
살면서 좋은 날, 기쁜 날이
수없이 다가왔어도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평생 기억에 남는 기쁜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만이었다.
나는 결혼식 날이 잊을 수 없이
참으로 기쁘고 좋았다.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이 기억하는
내 삶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매건 아주머니가 마지막
결혼기념일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 함을 나는 이해한다.
함께 할 그이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준다 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평생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