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 편관, 편인과 함께 하는 삶>
K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도 있고 오빠가 둘이나 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형제들과 10살, 9살, 7살 터울이다. 얼핏 나이차가 크니 늦둥이 막내는 사랑만 받고 컸으리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형제 누구 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멀리 타국에서 떨어져서 산다.
사랑은 교류다. 사랑은 한쪽이 더함과 덜함이 있다 해도 알고 보면 기브와 테이크의 관계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해서는 이어가지 못한다.
K는 늘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말이면 무사통과인 모친의 그늘만 믿고 집안에 작은 독재자다. 뭐든 자신이 옳고 정당하다며 거침없이 선 넘는 말과 행동을 한다. 뭐든 탐나는 것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하고 빌려간 물건도
결코 돌려주지 않는다.
다툼이 생기면 언제나 어머니가 등장한다. 형제간의 문제를 그들이 풀게 내버려 두어야 함에도 K가 잘못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저 막내니까 이해하고 감싸주라 한다.
그러나 집 밖에서 K는 다르다. 친구들이나 선배에게는 깍듯하다. 자신이 이롭거나 필요해서 또는 평판이 나쁘면 손해라는 걸 아니까 조심하고 예의도 바르다.
집에서 안하무인의 태도와 너무도 차이가 난다.
본인은 손위 형제들에게 사랑도 챙김도 받지 못한 이유를 그들 탓으로 여기지만 사실 근본 원인은 그녀 자신에게 있었다.
K는 50대가 되면서 명리학을 공부하며 원인이 자신의 사주에 있음을 알게
되었으나 쉽게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사주 천간에 상관, 편인, 편관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기보다 남의 외면이나 그들의 잘못이나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핀잔을 주거나 뜯어고치려고 하며 말로
상처를 준다. 상대를 위한 일침은 조언이며 선의의 마음이지 비난과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때 상대의 형편이나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선 상관이 있는 경우를 보자
상관은 일지의 내가 도와주는 나와 다른 음양의 오행을 말한다. 나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발산하는데 저돌적이며 도전적인 에너지다.
단어 그 자체로 관(권위, 윗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뜻도 있다.
만약 상관이 지지에 있는 경우에는 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의 격랑이 들쑥날쑥
오르내린다.
상관은 행동 양식이다. 상대가 어설프거나 미흡하면 생각을 입으로 뱉고 상대에게 비수를 날려 버린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아랫사람이 이처럼 상관이 있는 경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윗사람은 공격을 받으며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로 힘들게 된다.
편인을 보자. 편인은 나를 도와주는 오행을 말한다.
편인은 생각이고 사상이다. 관념이며 사고방식이다, 이게 지지에 있으면 상대를 이해하고 헤아려 주려고 한다.
그런데 천간에 나오면 내가 아닌 타인이
타깃이 된다. 상대의 부족한 부분이나 사고방식이 못마땅하다.
상대의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비판적이고 틀에 얽매이는 것도 싫어한다.
편인 자체는 외골수를 뜻한다.
편인은 주체가 나 자신이다. 그러하기에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내 눈에만 옳은 거다.
만약 천간에 편인과 상관이 있다면 눈치 백 단이다. 자신의 실속을 먼저 챙길 줄 안다.
척 보면 안다. 특히 단점을 보면 바로 짚어 낸다. 그래서 삐딱하게 지적질을 하는 거다.
상관의 말발, 편인의 생각에 자기만의 사상이 합쳐진 기질은 상대에게 강하게 표출된다.
우리가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런 말까지 내뱉어 버린다.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아 버리고 멘털까지 붕괴시킨다.
편관을 보자. 편관은 나를 제어하는 기운이라
나 자신을 통제한다.
편관은 예의, 도덕, 명분, 남들 앞에 보이는
내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편관은 명예를 뜻하기 때문이다.
나의 틀이 명확하다. 이렇게 편관이 지지에 있으면 자신을 잘 컨트롤한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함부로 말을 잘 내뱉지 않는다.
어디에 자리에 자리하고 있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편관이 천간에 나타나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한다.
내 말을 따르라고 은근히 압박하게 된다.
옳고 그름의 지적질을 한다.
만약 이 상관, 편인, 편관 이 셋이 천간에 있어 드러난다면 심각하다.
알고 보면 이런 사람은 어려서부터 깊은 상처가 많다.
상처의 흔적은 세상을 삐딱하게 보게 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이미 내 안에 상처로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한다.
내가 그러하기에 상대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들의 마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타깝게 사랑의 결핍이 있다.
사랑받지 못한 나를 나 역시 사랑하고 있지 않고 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내가 나를 의심하고 스스로 나를 힘들게 속박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기에
나의 모순된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보이는 거다.
사실 나의 모순된 마음도 알고 보면
내 모습이다. 이런 사람들은 비난보다
치유가 필요하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궁극의 목적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거다.
내가 부족한 거를 모르기에 남을 욕하고 비난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사주를 보면 각각 타고난 오행이
과한 것도 부족하거나 없는 것도 있다.
즉 완벽한 사주는 없다 했다.
내가 나를 안다면 누구를 탓하고 누구한테
평가질이나 지적질을 하며 모욕을 주지 못한다.
내가 공부가 되었다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되고 존중하게 된다.
명리학이 제대로 공부가 되면 상대를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상관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자신이 상관이 있다는 걸 안다면 그래서 내가 이러는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힘든 게 사라지게 된다.
편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이 많이 치우쳐진 사람이다. 따라서 불만과 불평이 많고 걱정도 많다
편관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나의 틀을 깨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사실 틀이란 좁은 생각, 좁은 의미라고 본다.
우주 자연은 틀이 없다. 이 틀을 벗어나야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맞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을 전환하려 애써야 하고 좁은 틀을 넓은 이해와 범위로 이해하고 받아들여가야 한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꾸어야 한다.
남을 탓하기보다 그럴 수 있어 그럴 상황이면 어쩔 수 없었겠네라며 이해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모든 원인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존중하지 않아서 오는 거라고 보면 된다.
내가 나를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 또한 나를 그리 생각하며 서로가 너그럽게 바라보게 된다.
모든 문제가 결핍에서 온다는 걸 알고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치유해 보기를,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