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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대가 그립다!

by 페이지 성희

이은주 (1980.11.16 ~ 2005.2.22)

올해는 24살에 저 세상으로 떠난 지 20주기가 된다. 언제나 스물하고 네 살로 남아있다니.


늘 그녀의 몰입 연기가 좋았다.

어떤 배역이든 그녀가 맡으면 그녀 자신이 되었다.


가끔씩 생각이 나면 그녀의 영화를 꺼내 본다.


<송어>에서 처음 그녀를 알고 <주홍글씨>로 영원히 이별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매혹되고 사랑했다.

안타깝게 요절한 여배우들만 내 마음엔 남았다.

인생의 사계절을 다보내기도 전에 너무 일찍 피었다 가버린 여자... 그리고.... 배우.

활짝 핀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게 만든 그녀를 잊지 못한다. 아니, 잊지 않는다.


알베르 까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말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고...


그녀로 인해 죽음이란 숙제가 잊고 있던

봄밤의 꽃내음으로 공간을 채우고

그녀의 20주기 . 한 편의 시, 이 노래 가사가

장미 가시에 찔린 아픔으로 마음에 박힌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키타 히로무-

(작사, 작곡-아마자라시의 보컬)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갈매기가 부둣가에서 울었기 때문이야.

파도를 따라 떠오르곤 사라지는

과거도 쪼아 먹고 날아가다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생일에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

나뭇잎 사이로 햇살에 얕은 잠에 들면

죽은 곤충과 함께 흙이 될 수 있을까.


박하사탕, 항구의 등대

높은 아치형 다리, 버려진 자전거

나무로 지어진 역의 난로 앞에서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마음


오늘은 마치 어제와 같이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꾸어야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마음이 텅 비어 버렸기 때문이야.

분명 채워지길 바라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신발끈이 풀렸기 때문이야.

고쳐 매는 건 서툴기 때문이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소년이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야.

침대 위에 엎드려 있어.

그날의 나에게 미안하다며


컴퓨터의 희미한 빛

윗방의 사람 사는 소리들

인터폰의 차임벨 소리

귀를 틀어막는 새장 속의 소년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다다미 여섯 장의 단칸방의 돈키호테

어차피 그 끝은 추할 뿐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차가운 사람이라고 불렸기 때문이야.

사랑받고 싶다고 울고 있는 것은

사람의 따스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네가 아름답게 웃고 있어서야

죽는 일에만 얽매이는 것은

분명 살아가는 것에 너무 진지하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직 너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너 같은 사람이 태어난 세상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



-시를 읽다 보니 글쓴이는 아마도 죽으려고 유서를 쓰다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버린 듯하다. -




<송어>에서 <주홍글씨>까지 그녀가 남긴 작품들


<송어, 1999, 박종원감독>

-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연과 욕망-

첫 영화 데뷔작 <송어>에서 강수연 배우와 나란히 해도 존재감이 밀리지 않고 눈에 띄었다.

저 신인배우 누구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은주를 알게 되었다.

가녀리고 선이 곱고 뽀얀 그녀!

얼핏 평범한 듯 보여도 스크린에서는 달랐다. 스크린의 여왕 강수연 곁에서 강수연만큼 빛났다.

내 남자였던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오, 수정!, 2000년. 홍상수 감독>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이라 말하면 사랑일까!

흑백이어서 더욱 강렬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사랑이란 관념과 기억에 대한 영화다.

타인의 일상을 관음하는 홍상수표 네 번째 이야기다.

늘 그러하듯 젊고 매력적인 한 여성을 차지하려는 겉만 번지르르한 지식인의 허울과 집요한 욕망, 질투와 지질함과 그들이 추앙하는 관념의 허상을 그린다.

두 남자 사이에서 이쪽저쪽을 교묘하게 오가며 순수한 얼굴로 속내를 감추는 여주인공의 연기에 주목한다.

흑백의 화면은 인물의 행동, 대사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사랑인가 아닌가 그들의 진심을 들여다보는데 효과적이다.

진심이라고 믿는 남자, 여자의 본심을 끝없이 의심하다가 말 한마디에 풀려버리는 바보 같은 순정. 사랑과 욕망을 의심하는 여자.

결국 애매모호한 끝이 되어버린 종말.

이은주는 여주인공 이름대로 수정 같은 매력만 뇌리에 남겼다.


흑백의 포스터는 누가 사랑하는가를 묻는다.
내 여자가 되길 고대하며 이미 선배의 여자인지 의심하다



<연애소설, 2002, 이한 감독>

- 내 마음속의 사랑은 처음부터 너였어!-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다가간 건 너와 나, 우리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야.

친구(손예진)를 위해 그 애가 좋아하는 너를 포기해야 했어, 꾹꾹 내 마음을 마음 안에 넣어도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 우정과 사랑, 모두 지키고 싶었던 우리 셋의 여름날 햇빛처럼 찬란한 이야기. 너희 모두를 사랑해. 아주 많이!

이은주의 보이쉬한 매력, 그 시절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다.

셋이어도 둘은 사랑했다
언제나 우릴 웃게헌 너
사랑과, 우정을 위한 여름날 추억 한 스푼!



<태극기 휘날리며, 2004, 강제규 감독>

-전쟁이 바꾼 인간의 운명과 형제의 비극-

영신(이은주)은 진태(장동건)의 약혼녀로 두 형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인물이지만 억울에게 피살당하는 역할이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라도 형제에게

따뜻한 오누이의 정을 느끼는 해주며 미래에 희망을 품게 한다.

그녀의 죽음으로 형제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하며 서로에게 총을 겨누기까지 하며 비극으로 치닿는다.

이은주의 등장은 짧지만 형제가 달라지게 만든 도화선이 되고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겪으며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회귀의 기준이 된다.




<번지 점프를 하다 , 2001, 김대승 감독>

-다시 태어나 사랑한다면, 언제나 너일 거야 -


다시 태어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당신일 겁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은주 배우의 대표작이다.

여자가 가장 아름답게 꽃피는 20대 시절에 첫사랑을 만나 그와 사랑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사랑이 영원하냐고, 환생이 있을까? 궁금하면 이 영화가 답이 되지 않을까?

이은주 배우가 가장 이은주다웠던 영화다.


처음 너를 만난 이 순간! 오늘을 기다렸던거야.
우리 사랑의 시작은 내가 먼저였어
난 , 늘 너를 자켜보고 았었어

황금빛 노을 속 왈츠 씬! 이 영화의 백미다.

Jumping Of Their Own Walz Scene

환생으로 널 다시 만나 예전처럼 사랑할거야.



<주홍글씨, 2004, 변혁 감독>

- 숨겨진 욕망, 도덕의 회색지대에 파묻힌 남녀의 비극적 종말-

<주홍글씨>는 이은주 배우에게는 너무 파격적이다.

24세 여배우가 소화하기에 적절치 않은 영화였다.

전라 노출의 애정신과 감정선이 복잡하게 뒤얽혀있는 불륜녀 역할에 여고시절부터 이어온

절친(불륜남의 아내)과의 특별한 관계까지

왜 이런 역할을 선택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무엇보다 영화룰 보고 나면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한마디로 불쾌하고 어둡고 나쁜 영화다.

영화에 몰입하여 광기로 변한 이은주의 눈빛, 연기가 오히려 소름 끼친다. 배우가 작품으로 학대받았구나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이게 뭐라고 젊은 여배우를 이다지도 극한으로 몰아 버렸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은주 재즈바 노래 신만 보고 만다. 가장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Only When I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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