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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성희 Nov 16. 2024

아주 특별한 이웃 2

홀로 가는 삶, 버팀을 넘어서는 힘

- 글 커버 사진은 오솔길님이 최근에 담으신 겨울 아침 두물머리 사진입니다-



닉네임 오솔길님.

조수미의 "LOVE IS LIKE DREAM"이 흐르는 다음 블로그'에는

그분이 담으신

흑백의 두물머리 사진

수 백 장이 올라와 있다.

아름다운 양평읍 양수리 두물머리!

그곳에는 오직 한 곳만

오래도록 담고 또 담는

두물머리를 사랑하는

진짜 사진작가가 산다.

두물머리 근처에 20년 전에 사놓으신 전원주택도 있다.


그곳 양수리에는 아버지 묘소가 있기에  그분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아마 온라인에서 만난

첫 이웃이었던 거 같다.

 

2015년 포토샵 과정을 공부하다가

사진기가 있으면

보정하기에 도움이 된다 하기에

가성비 좋은 하이앤드급

사진기를 샀다.


"주객이 전도된다"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나중에 포토샵이 쉬워지면서

사진 찍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난 주기적으로 한 가지에 꽂히는데  

이번에는 그게 사진이 되었다.

독학을 하며  곳곳을 누비며  

출사도 다니고 사진에 빠져 살았다.

카페에 가입하여 작품도 올리고 하다가 오솔길님을 알았다.

그분도 본업은 따로 있지만

사진에 매료되어 독학을 하시면서

포토 아카데미라는 카페에

전문가만큼 깊이 있는 글과

모아놓은 자료를 아낌없이 올려주셨다.


나의 첫 사진 스승님을

온라인에서 만났고,

사진의 역사, 사진가, 매뉴얼적인 사진기 작동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흑백사진의 담백함,

나와 마찬가지로

누가 담아도 예쁜 꽃사진 대신

풍경을 통한 이미지와 가치관을 담는

 비슷한 사진관을 지니셨다.

같은 장면을 담아도 풍기는 느낌이 남달랐다.

그래서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있는 거다.


첫 출사에서 만나고 보니 예상과 다른 분이었다.

깡마르고 기운이 청정한 반듯한 70대  어르신의 면모였다.

알고 보니 40대에 폐암으로 아내를 잃고,

기독교에 의지해 살아오셨다.

혹여 계모의 구박으로

자녀들이 그늘질까 싶어

재혼도 단념하고

아비만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을 혼자 감당하기로 마음먹으셨단다.

고물고물 한 세 어린것들의

투정을 받아주며

씻기고 먹이고 챙겨서 학교에 보내어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신 인격자다.

또하나 아이들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의 마지막에 곁에 묻힐 현충원 옆자리는 반드시 그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셨다.

오직 한사람 하나의 사랑으로 마무리를 원하신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분 사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우연히 초창기 블로그 사진 자료를 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고인이 되신 젊은 사모님과 어린아이들 사진이 있었다.

깊은 존경심을 품고 그분을 대했다.

 

인간은 약하고 여린 존재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에 따라

희노애락에 흔들린다.

단순한 삶에 몰두하고 가치관대로

흔들림 없이 산다해도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사람도 있다.

  분의 삶과 정신이 담긴 사진이

구구한 설명없이 그를 대변해 주고 있다.


나 역시 찍어온 내 사진을 보면

내 마음이 보였다.

날씨나 배경과 상관없이 나를 알고 싶고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야 할 길을 몰라도

절대 점술가를 찾지 마라!

폰이 아닌 진짜 카메라를 들고 마음 가는 대로 무엇이든 사진에 담아보라


글을 쓰면 글에서 그의 생활과 정신이 보이듯

노래하는 가수는 노래로 자신이 드러난다.  

사진에서도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이 읽힌다.

 

그 와중에 어느 날 아침 사건이 벌어졌다.

오솔길님이 선의로 아르헨티나에 사는 회원의 카메라를 구매해 주었는데

그분이 관세를 물지 않으려고

중고핏이 나게 조금 쓴 것처럼

손질해서 보내 달라 한 게

화근이 되었다.


받아보니 자신의 생각과 달리 낡아 보였고

신형이 아닌  애초부터 중고를 사서

보냈다고 의심을 했다.

카페에서 만난 생판 남이다 보니

오솔길 님을 거짓말 사기꾼으로 취급하고

밤새 카페에 악플로 도배를 해 놓은 거였다.


아침 일찍 카페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발견한 나는

카페장과 운영진에게 알려

글 삭제와 악플 회원 탈퇴를 요청했다.

오솔길님은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한편으로 나 역시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개인사를 공동 공간에서 문제시하여

카페 고문을 한순간에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건 아니다 싶었고

그리 조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카페장은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한다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팔은 안으로 굽어야 맞고

카페 발전에 기여한 자기 식구를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안 맞는 말을 하기에

차마 탈퇴는 못하고 활동을 줄였다.


일단  곤궁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게 맞지 불구경하듯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

하는 식의 방관은 아니라 보았기에

어디 사진학과 교수란 교육자의 행태는

아닌 거 같았다.

 만약 내게 이런 일이 닥치면 나한테도

똑같지 싶어  카페에 마음이 식었다.


자주 본다고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세상 속 이웃도 세상 밖의 사람들과 행태가 똑같다.

어디서나 못된 인간이 못된 말과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와 피해를 준다.

지내고 보면 베풀며 사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선한 이웃도 많다.


온라인이란 형체 없이 만난 인연일지라도

마음의 어깨에 기대며 서로를 공감한다.

자주 안 봐도 때마다 안부를 묻고,  

안녕과 건강을 기원한다.

각자의 감량만큼 도움을 주고받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느새 오솔김님과 9년이란 세월이

차곡차곡 흘러 지나갔다.

나는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온라인의 좋은 이웃과 소통하며 산다.


-위에 글은 사연의 당사자 오솔길님에게 공개전에 글을 보여드리고,

닉네임과 글 공개를 동의 받아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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