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당시는 70년대 중반이라 서울도 가정 형편이 좋은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교복은 3년을 입어야 하기에 크고 길었다.
자기 몸이 하나 더 들어갈만한 포대자루만 한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니 옷이 뛰는지 사람이 뛰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뛰는 애나, 보는 애나 쳐다보며 함께 웃던 시절이었다.
여성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선머슴아 같은 아이들이 똑같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도 얼굴색만 봐도 가난한 집, 있는 집 자식이란 게 표가 났다.
그때는 그랬다.
담임은 아이들에 생김새나 냄새로 다른 말투, 다른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편애를 했다.
대다수 아이들을 더럽고 냄새나는 길거리 멍뭉이쯤으로 대했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 조차 할 수가 없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이었다.
머리 검사를 한답시고 나무 봉으로 휘적거리며 사춘기 소녀들을 기죽였다. 예고 없이 생활지도 선생님이 들이닥쳐 가방검사를 했다. 여학생들의
감추고 싶은 생리용품이 책상 위로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도대체 선생님이 뭘 찾으려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감히 묻지도 못한 채 가방을 열어 보여야 했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성과 어른에 대해 해맑게 아이의 눈높이로 관대해야 했다. 우리는 어른의 허물을 알았고, 선생님이라 그러려니 하고 순종했다.
지금처럼 여초시대가 아니니 남녀 담임이 될 확률은 반반 일 텐데 어쩐 일인지 나는 내리 여자 선생님만 담임이 되었다.
3학년이 되어도 역시 여선생님 당첨이었다.
옆 반은 남선생이었다.
중 3 아이들과 섞여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 작고 아담한 키에 얼굴은 새까맣고, 마주 쳐다보면 눈이 핑핑 돌아가는 근시용 두꺼운 안경을 쓴 소박하게 생긴 영어 과목 선생님이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 했던가!
"가장 모범 반이 되자"가 급훈일 정도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넘쳤고 열정도 대단했다.
교과 점수는 물론 합창 경연대회나 체육대회까지 좋은 성과를 내게 하려고 특별 과외활동까지 시키셨다. 더구나 중 3이란 연합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학년인데도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과 가까이 소통해야 한다고 시간을 내어 일대일 상담까지
열정과 사랑이 남다르신 특별한 담임이었다.
바로 옆 반인 우리 반은 매일 그 반에서 일어난 일이 일상의 화젯거리였다.
사실 부러워서 침을 흘리며 듣고 ,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은 모여서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었다.
살아보니까 평생 동안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이 중 3 시절 그때였던 거 같다.
우리 반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이웃 반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이 다 관심이 가고
궁금했었다.
왜 춘향이가 이몽룡과 사랑가를 부르며 첫사랑을 펼치던 게 16세인지 이해가 간다.
"반공일"이던 토요일 오후에도 영어 선생님은 반주를 녹음해 와서 빵까지 사 먹이며
합창연습을 시켰고,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하교를 했다. 심지어 합창대회 전 일요일에도 등교해서 연습하고, 사모님까지 오셔서 김밥 도시락을 나누어 먹였다고 했다.
이제 옆 교실에서 연습하는 노랫소리를 듣다 보니 우리 반도 어느새 따라 부르고 있었다.
우리 담임은 공부나 해서 연합고사나 잘 보라고 합창대회까지 포기하라고 하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회 날이 되었다. 모두 기대에 찼다.
결과는 우수상이었다. 등수가 지명되자 아이들은 선생님을 붙들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목놓아 울었다.
왜 2등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사위원인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쥐어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하도 얼싸안고 통곡을 하며 우는 바람에 누가 보면 옆 반이 우승한 거 같았다.
보는 우리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사실 열정으로 보면 최우수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나중에 발칵 뒤집힌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왕따로 따돌림받는 아이 일로 시작되었는데 그 애가 반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까지 담임에게 보고 하고 있었던 거다.
한마디로 선생이 간첩을 반에 심은 거였다. 반 아이들에 대한 사정을 잘 알았기에
아이들을 다루기가 쉬운 선생이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통제하여 반을 쉽게 이끌어 가게 된 거였다. 문제는 고자질을 시켰던 사람이 담임이란 게 충격이었다.
믿었던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배신감을 넘어 섬뜩함이 느껴졌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구나 싶었다.
비록 쌀쌀맞고 마주치면 꼬투리를 잡아 잔소리만 퍼붓는 우리 담임은 고자질쟁이 간첩까지 심을 정도는 아니었기게 적당히 무관심한 담임이 차라리 눈곱만큼은 곱게 보였다.
탈도 많고 이야기도 많고 참 즐거웠던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동창이라도 찾아볼까 뒤져보니 폐교가 되었단다.
눈물 나게 아쉽다.
친구도 찾고 싶고 선생님도 만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