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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친구든 연인이든 인간관계든 쉽지 않은 삶

by 졸리

#시절인연 #우행시


학창 시절 소심한 나와 달리, 친구에게 인기 많고 활발했던 친구 A가 부러웠다. 나 또한 저런 A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A 주변에 맴돌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A의 이사로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매주 성당에서 만났기에 우리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나의 주변인 중에 A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족만큼이나 소중했고, 귀한 관계라 생각했다.


정말 변치 않을 거 같았던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매일 30분 이상 통화하며 사소한 일상까지 공유했었다. 그러면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었을 때 A가 나를 멀리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생겨서 저러나 보다 생각했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A는 예전과 달랐다. 나를 홀대했다. 만나자고 청해도 거절당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등 피하는 게 느껴졌다. 서운했지만 서운하다고 말하면 더 멀어질 거 같아 애써 참았다.


A와 친한 다른 친구를 불러 물어보았다. 고맙게도 그 친구는 나에게 이유를 말해주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 사치를 부리는 내가 낯설어서 멀리하게 되었다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 "내가 사치를 부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르겠어"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A가 나를 멀리하는 정당한 이유를 찾는 거로만 보였다. 이렇게 불편한 감정으로 2년을 참고 지냈다. 그러다가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이 생겼을 때, A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매몰차게 버렸다.


내가 힘든 순간에 옆에 있어 주길 바랐던 친구였는데, 쌀쌀맞게 나를 대했을 때 힘듦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일이 진정되었을 때 A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청했다. 정이 많은 성격 탓에 멀어진 관계에 오해가 있으면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A는 나를 냉대했다. 그만 이 관계를 놓아야만 했다. 무척이나 자책하며, 외롭게 지냈다.


그렇게 5년이 흐른 지금, 우리 관계가 멀어진 건 A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닌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A와 나의 아버지는 같은 회사를 다녔는데 A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A의 아버지는 갑작스레 직장을 그만두게 되셨다. 아버지 회사는 학자금 지원이 되기 때문에 대출 및 생활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A는 상황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안 하는 나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는 게 A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나 또한 최근에 아버지가 퇴직하고 보니 A의 마음이 미어질 듯 공감이 되었고, 그 당시 A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거에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A가 당시에 느꼈던 '사치'가 어떤 건지도 이해되었고, A의 아버지가 퇴직했을 당시 A가 나에게 털어 놓지 않고 혼자 많이 힘들어했고, 울었던 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어떤 위로의 말을 내가 한다고 해도 A에게 절대 위로의 말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혼자 삼켰던 거 같다. 지금의 내가 그러는 것처럼..


친구든 연인이든 동료든, 이유 모르게 갑자기 멀어질 때가 있다. 그 이유를 말하는 스스로가 구차하게 느껴져서 삼킬 수도 있을 것이고..

친하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친해도 이야기 하기 조심스러운 게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상대의 모든 것을 알려는 자세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서운함을 느낄 필요도 없고..


억지로 관계를 이으려고 노력했던 지난 과거, 차라리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 관계를 가볍게 생각했더라면 내가 덜 상처를 받았을 텐데, 어떻게 해서든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곁에 두고 싶은 욕심에 그랬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탓했기에 당시 무척 괴로웠고, 사람에게 마음을 오픈하는 거에 지레 겁먹게 되었다. 문득 그때를 생각하면 A를 원망하는 감정이 들 때도 있지만, 상황 탓을 하고 그 상황이 직접 되어보니 A의 행동도 너그러이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가 힘들거나 기쁘거나 항상 응원할게. 혹시라도 A가 이 글을 읽게 되면 언제나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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