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문학상 수상 후 2000년 가을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중학때쯤 부산 번호판을 붙인 차량을 가지고 전라도를 가면 주유기름을 넣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의 정치 역사를 보면, 김영삼 대통령 후 김대중 대통령으로 흘러가는 즈음에, 크게 지역감정을 느낄 일들이 2000년 부산 동아대학교 영문과를 다니던 여학생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법과 대학 남학생이 영문과를 복수 전공하며 살짝 친했는데, 그 남학생은 원래 전라도에 있는 대학에 처음 합격해서 학교를 다녔지만, 차후 동아대 법대를 추가로 합격하여 왔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전라도 학교 다니면 무사히 졸업하기 힘들다는 조언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일화도 그 여대생에게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구나였지, 그 남학생의 부모가 지역감정에 대한 너무 편견에 빠져 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상도 여학생은 나라면 그냥 처음 전라도 대학에서 전라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지역감정을 줄여 보이는 사례를 만드는 상상도 했던 것 같다.
그 여대생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 고3 때 이름이 비슷한 친구와 함께 포항공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고3 때 이과였지만 수학보다 시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공부보다 나름의 생각으로 신과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 신앙도 없으면서 그래서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신이 내놓은 자신의 운명과 판을 놓고 싸움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편도 어려운데 그런 짓을 왜 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사춘기인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그로 인해 더 이상 신과 운명에 대한 전쟁은 하지 않았다.
그때 포항공대에서 노벨상 받은 동상들을 보았고, 한국에 노벨상은 비워져 있었다. 한국에서 누가 최초로 받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었다. 그때 고3 여학생은 이 조그마한 나라에 객관적인 눈을 가진 저명한 외국인이 인정하는 한국인이이 계시다면 무조건 존경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여학생은 해운대 바이킹족이 다닌다는 해운대 여고를 다니고 있어, 결심한 것은 꼭 지키려는 이상한 기질이 있었다.
2000년 10월 13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되었다. 당시엔 지나가다 들은 것 같다. 앗 ! 이 분이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통일이 된 것도 아닌데 노벨상을 받았다느니, 노벨상 받느라 돈이 많이 들었냐느니, 등 말이 많았다. 또한 여대생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등하교가 긴 학교생활과 과외라는 아르바이트 비로 생활고를 전전했기 때문이다. 딱히 존경의 표시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대생은 어릴 때부터 사회나 역사책을 기반으로 전라도에 대한 교과서적 상상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항일운동, 5 18 민주화 운동 등을 통해 전라도 사람들은 찐 찐 찐 쩐 의리가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약자를 괴롭히는 경상도 못난 사나이이며, 이로 인해 피해 본 전라도 분들께 한 경상도 시민으로서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전학을 많이 다닌 여학생은 교과서적으로 인간은 평등하고 서로 편견 없이 친하게 지내야 하며, 쓸쓸히 혼자 길을 걷는 전라도 사람의 손을 함께 잡아주고자 하는 나름의 희한한 희망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굴의 전라도 찐 사나이이시며 사형을 받는 등의 죽을 고비를 넘겨 많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신 것으로 알았다. 또한 고문 때 너무 맞아서 다리 한쪽이 불편한 것도 알고 있었다. 한 간엔 빨갱이, 치매라는 낭설도 있었다. 또한 그 형편이 어려운 경상도 여대생에게는 혼자만의 존경을 표시할 만한 능력도 없었고, 교과서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분으로 후방 지지를 하고자 했다. 또한 이런 존경이 대통령으로 계신 분께 혜택을 얻거나 아부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싫었던 것 같다. 2000년 겨울 방학이 되기 전 동아대 컴퓨터실에서 네이버에 존경하는 분 추천이 있어, 그 경상도의 한 여대생은 아무도 모르게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서 존경한다"라고 적어 넣었고,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다가 2025년이 된 지금 밝힌다.
그 후 대학생 중 북한에 무료로 갈 사람 이름을 적어 넣는 추천통이 있었는데, 난 그때 존경 추천을 했기 때문에 포기했던 것 같다. 존경추천을 안 했다면, 이름을 적을 용기가 있었을 텐데....... 가끔 그때가 경제적 형편을 따지지 않고 적법하게 북한을 가볼 수 있었을 때가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항상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 힘들 때 나의 적이라고 생각한 곳에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힘든 사람은 정말 힘이 될 것이다고, 그 사람이 알든 아니든 우주의 기운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나도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죽을 수도 있는 적국 북한과의 대화의 장, 서구 열강과의 대화의 장, IMF때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등 모든 것은 가만히 있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에 가서 만나서 함께하자고 요청해야 하며, 서구 열강의 지도자들을 만나 부탁해야 하며, 금 모으기 또한 국민들께 어려운 시기를 말하고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도움은 비굴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고령의 나이에 불편한 신체지만, 한국의 발전을 위해 항상 당당한 마음으로 전 세계를 쩔뚝거리며 다니시는 모습이 훤했고 짠했고, 그래서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전라도 진짜 사나이 덕분에
난 신앙도 없고, 정치도 뉴스도 관심이 없었고, 빨간당도 파란당도 당 색깔도 없었으며, 좌파 우파 구별도 못하고,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 구별도 못했다. 요즘 윤대통령의 계엄령이라는 사건과 함께 건강 악화로 인생의 여유가 살짝 있어 유튜브로 여러 이야기를 보았다. 그 동안 한 시민으로 다수결로 선출된 분들께 잔잔한 존경심을 표하고 싶었다. 자세히 알게 되면 많은 분들처럼 시기상조의 비판하게 될 것 같아,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않았던 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와 연설문 등을 보면서 느꼈다. 나의 막연한 존경심은 진짜 존경심이었고, 지금 그분이 내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게 해 준 "전라도 사나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