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꽃인 관용어를 통해 본 나는

우리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언어 : 관용어

by 부산 아낙네

참 재미없는 나의 인생은 마치 말도 못 하고 씹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누워만 있는 와상환자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분들을 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위한 실습 때 애광원 4층에서 보았다. 난 그분들께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지금 이 상태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냐? 하시겠지만 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좋은 생각은 천국과 같은 행복한 하루를 선사할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고 싶었고 말한 것 같은데. ^^ 슬퍼하지 않고 살짝 말했다. 그래서인지 밋밋한 바게트 같은 빵과 같은 내 삶에 관찰이라는 걸 통한 상상과 생각이라는 쨈(재미)을 발라 가슴으로 그 맛있는 빵을 먹으면 난 오늘도 행복을 알아간다.


대학 때 과외, 졸업 후 공부방, 이사를 하면서 교영학원을 운영했다. 때마침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되었다. 당시 용산참사 전조였고, 뉴스에서 재개발로 인한 재산보호와 인권 문제를 거론한 유명한 남자와 만난 적도 있다. 보상금 문제로 주민들에게 배신감을 느껴 힘들었지만, 그냥 다음 단계를 공부를 선택했다.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다른 소속감이 필요했다. 선택한 것은 1 법학전문대학원 2 북한학과 3 영문과였다. 북한학과를 제외한 나머지는 원서를 다 넣었지만, 타지에서 공부하려면 생산적 활동과 함께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영문과를 택했다. 나의 과거를 회상하나 지금 현재를 보면, 북한학과를 가는 게 맞는 것 같다는 후회도 살짝 된다. 당시 원서도 많이 넣고 많이도 떨어지고 또 합격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을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해운대에서 시외버스 원 큐로 갈 수 있는 서울이었고, 고시원이라는 시설이 있어 "세종대 대학원 영어영문과 번역학 전공"으로 2010년쯤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 같으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7학번 경상전문대학교 영어과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편입하여 98학번으로 동아대학교 영문학과(야간)를 졸업해서 몇 년도인지?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를 자퇴했다. 대학원 진학 전에 영국에 가고 싶었지만 비자 거절을 당했다. 나의 삶을 뒤돌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 나를 살펴보니, 난 참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삶의 체험현장을 좋아하고 자격증도 좋아하고, 필요하다는 욕구를 느끼면 편견 없이 나이와 상관없이 배운다. 그러는 동안 우리 집 가정 형편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보험도 있고, 집도 있고, 저축도 있고, 분양권도 있고........ 열심히 잘 살다 보면 운이라는 것이 와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시골 국민학교에서 도시로 올 때 난 공부가 좋았다. 공부만 잘하면 다 풀릴 줄 알았던 나의 중학시절 난 공부를 잘했지만, 고등학교로 가니 비싸진 학비도 내야 하고, 보충교재라는 것도 있고, 간식도 도시락도 2개, 여동생 남동생도 함께 다 인문계로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란 사람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무관심했고, 어머니께서 혼자 아둥바둥 공부를 잘한다고 다 풀린다는 것은 환상이란 걸 빨리 깨달았고, 나에게 점점 가난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실업계가 아닌 인문계로 갔던 고등학교 시절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힘들고 동생들은 철이 없고, 난 할 수 있는 게 없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대학을 가면 더 가난해질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멈추는 걸 배웠던 것 같다. 또한 나의 형편이 어려운 만큼 머라고 하든 난 어느 것도 안 할 것이라고, 또한 야간 자율학습이 안 맞았는지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고 싶을 두통이 있었는데 지금 그럴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는 데 할수록 가난해지고 있고, 어쨌든 이게 신의 인도라면 내 의지로 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아마도 수능시험도 반이상 찍어버리고 잤다. 알아서 하라고? 웃긴가? 삶에 대한 포기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신이 만든 운명 속에서 구르다가 죽을 거, 될 대로 돼라!!!


우연찮게 진학하게 된 버스 2번 갈아타야 하는 학교지만 1년 반만 다니고 취업이 가능한 학교 영어과였다. 진짜 삶이 싫었지만, 어렵게 우리 3남매를 키우시는 어머니의 희생에 다시 일어서 나아가기로 했다. 학교에 편입이 목표라 했지만, 마지막 학교라고 생각하고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 했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잔메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었는데, "번역학"에 대해 논문을 쓰는 것이다. 논문을 쓰다 학교 취업률도 올릴 겸 성적이 괜찮은 나는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다. 여러 문제로 약 한 달 다니다 관뒀다. 어느 날 저녁 친구가 연락이 와서 번역학 논문을 마무리했고, 학술대회 날 발표는 남자 목소리가 더 호소력이 있다 생각하고 남자 선배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결과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상금 약 300만 원을 받았던 것 같다. 난 그 상금을 나누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 나에게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교수님께 선물을 했던 것 같다. 식물이었나? 화장품이었나? 잘 기억 안 난다.


서울에 가서 번역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때 내가 쓴 논문이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학 논문"이란 것이다. 이 논문에 대해 "우와! 대단한걸"할 수도 있겠지만, 난 스승에 대한 비극을 알게 되어 좋다고 볼 수가 없다. 내가 들은 바로는 당시 4년제 보다 나은 2년제를 권장한 국가 정책이 있었고, 그때 경상전문대학이 우수학교로 선정되었고 그때 나온 논문이었는데, 참신하여 이 논문을 토대로 번역학회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내가 썼긴 썼지만, 그냥 책을 보고 놀라운 사실을 정리하고 내가 영화와 책에서 본 영어와 국어의 차이를 적었던 것 같다. 마지막은 고등학교 국어책을 인용하여 마무리했다. 그리고 책 내용을 그대로 발췌했지 팩트 체크할 능력이 안되었다. 예를 들자면 세계 대전 때 번역, 통역이 잘못 전달되어 전쟁이 커졌다는 부분은 쓰면서도 궁금했지만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 논문은 내가 가장 기여했겠지만, 지도 교수님도 계셨고 친구들 이름도 많았고 남자 선배도 있었기에 나라고 주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목받기도 싫었다. 왜냐? 난 재개발로 인해 이미 지역 주민에 대한 배신, 사법권에 대한 배신, 변호사에 대한 배신, 나의 삶에 대한 배신 등 아닌 척했지만 불신이 팽배했다. 그래서인지 석사 졸업하면 이제 그만! 땡 치자였다. 또한 나의 서울 삶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편한 삶은 아니었고 체험 삶의 현장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진리를 찾으며 살았다 보시면 됩니다. ^^ 하지만 힘겨웠기에 배신에 대한 분노가 없었고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학회도 다니고^^


지금 생각해 볼 때 세종대에서 존경할 만한 분도 보고, 좋아할 만한 분도 보았고, 성실한 분도 보았다. 난 거기서 소속감이 필요했지, 졸업장이 필요했던 게 아니기 때문인지 난 수료를 했다. 논문 심사 후 재개발 보다 더 힘들었다. 나중에 내가 연구생으로 등록된 사실을 알고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것 같다. 난 대학원 수료는 확실하지만, 아직도 연구생일 것 같다. 알아봐야겠지만........ 다시 진학? ㅎㅎ 겠냐고 어? 겠어 어? 난 부동산도 잘하고 보험도 잘하고 가르치는 것도 잘해서 이미 본 세상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단지 그때 그분들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에 대한 호기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 주제는 번역의 꽃이다. 지금껏 말한 내용은 사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삶이 이랬기에 돈이나 명예, 타인에 대한 편견보다 진리나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찾았고 그것이 기뻤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위에 내용이 길었다면 지금부터 읽는 것을 권장한다. 세종대 대학원에서 첫 수업은 24시간 종일 공부해도 지루하지 않을 교수님을 뵈었고, 그분이 나의 지도 교수님이 되셨다. 그분이 가장 잘하신 것은 나에게 제임스 조이스라는 분을 제대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특히 율리시스는 너무나 흥미로웠고 나에겐 컴퓨터 핸드폰 게임보다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지? 언어에 대해 정확히 나와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계셨다니... 또 그 사실을 이미 돌아가신 고인이 남긴 책을 통해 내가 읽고 알게 되다니... 모든 게 현실적으로 신기했다.


그 책을 연구하기 전 나는 "사자성어와 관용어의 등가성"에 관해 관심이 생겼다. 본 논제로 번역학 논문 재료로 선택된 책은 당연 율리시스였다. 그 책은 작가의 의도대로 쓰인 책이다. 독자를 겨냥하고 있는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번역학 논문으로 적합했다. 독자는 여러 명이므로 독자의 의중대로 읽힐 책이면 번역시에 여러 번역본이 나온다. 하지만 작가는 1명이기에 그 의도대로 번역한다면 진정한 번역본 1개가 나오기 때문이다. 율리시스에 나온 관용어를 찾아보니, 다행히 에피소드 16 에우마이오스에서 가장 많았고, 당시 내가 다니던 학회에서는 그 부분을 읽고 토론했다. 그래서 논문의 재료로 삼았는데, 무슨 문제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논문심사 때 어떤 여자 교수는 다른 소재를 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봐도 그 논문의 재료로는 율리시스 16장이 최고라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2021년 5월 28일 부동산으로 금전적 여유도 생기고, 블로그에 부동산 광고 외에 다른 걸 쓰고자 했다. 나도 삶에 확신이 찼는지 수료의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율리시스를 블로그에 쓰면서 다시 읽어봐도 번역의 어려움을 자아내는 문제는 관용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대화는 사투리겠지만, 일반 산문체에서 관용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그 글의 묘미가 달라진다. 직독을 해도 안되고, 의미 전달을 해도 어딘지 이상하다. 그 나라 문화에만 있는 관용어나 속담, 격언이라면 번역가는 재량을 발휘하여 독창적이어야 한다.


2021년 11월 1일 나의 블로그에 보면, 관용어란 두 단어가 모여, 일반적으로 쓰는 언어 외에 관습에 의해 다른 숨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미역국을 먹다"는 1. eat the seaweed soup(생일이라서 미역국 먹다) 2.fail the exam(시험에서 미역국 먹다, 시험에서 떨어지다) 둘 다로 사용된다. 관용어는 2번에 해당되며 미역의 미끄러운 성질을 우리 문화가 담긴 관용어를 이해 못 하면, 시험 날 그냥 미역국을 먹은 것이다. 아마 한국은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사실에 고정관념이 있다면, 시험 날은 수험자의 생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완전 다른 해석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지식으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한다는 것이 무섭지 않나요?


에피소드 9에 나오는 간단한 영어 "two birds with one stone"을 내가 알고 있던 번역서(김종건, 김성숙)는 모두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적혀 있다. 아마 나도 일석이조라고 하지 싶으다. 하지만 언어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다. 왜냐 설명하면 글이 길어지고 재미도 없다. 영어의 내용과 음가 일석이조는 맞지 않지만, 일석이조를 한자로 고쳐 의미를 새겨보면 똑같이 "돌 한 개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가 된다. 이건 한자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중국문화에도 있고, 영어로 볼 때 미국 영국 문화에도 있는 것 같다. 아마 한자를 함께 쓰다가 남북 분단이 된 북한도 같은 문화가 있을 것 같다. 뜻은 한 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로, 우리의 삶에서 머리 좋은 인간들이 "이왕 하는 일 두 탕을 노릴 때" 쓰는 말이다.


실제 바구니를 나무 막대로 세워두고, 바구니 안에 새 모이(새의 먹이)를 넣어둔다. 새들이 바구니 안에 들어올 때, 멀리서 지켜보던 아이가 돌을 던져 나무 막대를 쓰러 뜨려 새들을 잡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단연 미국 영국 중국 한국만 있겠는가? 배고파서 참새구이를 먹어야 하는 문화에서는 아마도 다 있지 않을까 한다. 관용어를 보면서, 우리가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지라도 "같은 행위로 같은 생각으로 만든 언어"의 내용물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같은 관용어라 주장하지만, 다르다. 음가도 다르다. 같은 것 같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완전 다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모나게 굴면 당연히 남에게 욕을 받게 된다. 사실이다. 그런데 모나지 않은 돌이 어딨냐? 실제 돌은 둥근 게 있겠지만, 인간은 다 모가 있다. 위에 장황한 글을 봐라. 나도 얼마나 많은 모가 있으며, 도플갱어나 쌍둥이도 형태만 같지 영혼은 달라 서로 모가 있는 돌들이다. 가장 유사한 가족과 나를 봐라. 닮았지만 서로 언쟁이 있고 모난 돌이다. 인간 중에 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예수도 모가 있어 유대인에게 미움을 받았다. 석가모니도 모가 있어 보리수나무 밑에서 단식을 했다 본다.


같은 관용어를 찾자면 "The nail that sticks up gets hammered down." 튀어나온 못이 망치로 맞아 들어간다. 못처럼 나온 모를 영어권에서는 망치로 모를 없앤다. 강압적이다. 비참하다. 모가 난 것은 미움을 받는다는 진리이므로 동양과 서양 문화권에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관용어"가 존재를 안다. 또한 우리는 누구나 모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 어째야겠는가? 완벽한 인간이 있다 할 수 있는가? 거짓말 한번 하지 않은 인간이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양심에 가책을 느껴보지 않은 인간 있는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있었던 일일 뿐인지 도덕이나 윤리, 양심의 잣대로는 모두 죄인이다. 어째야 하는가?


종교가 달라서, 인종이 달라서, 성이 달라서, 장애인이라서, 이혼 가정이라서, 홀어머니 홀아버지가 키워서, 가난해서, 똑똑해서, 이민자라서 등등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말자. 자신의 스펙이 완벽해서 남보다 우월하다 여기지 마라. 우월 자체가 모다. 그 모를 이해하자! 그 모 나타났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그 모가 쓸데없다면 그 모에게 가서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자. 그럼 그 모는 수용하고 모두를 위해 태도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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