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무대 어둡다.
저녁.
마을 어귀 낡은 가로등 아래 봉숙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봉숙 (노래를 흥얼거린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철,
뒤에서 봉숙의 눈을 가린다.
봉숙 아, 이기 뭐꼬 유치하게.
수철 가스나 무드 없게…… 수철 씨~ 해 봐라.
봉숙 아 됐다. 장난 고만 쳐라.
수철 어허! 수철 씨!
봉숙 수철 씨가 얼어 죽었다.
손을 내려놓으며.
수철 그래 얼어 죽은 수철 씨라도 좋다.
봉숙 내한테 그 말이 그래 듣고 싶나.
수철 니 가시나무새라고 들어봤나.
봉숙 생뚱맞기는…… 일생에 딱 한 번 우는 전설의 새 아이가.
수철 어.
봉숙 가시나무새는 와 갑자기.
수철 가시나무새는 둥지를 떠나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다가 젤로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으면
몸을 날리고 죽어삔다.
봉숙 죽어가믄서 세상에서 젤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카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죽냔
말이다.
수철 와~ 동심을 그냥 한방에 깨네.
봉숙 오빠야 니도 생각을 해 봐라.
노래하고 목숨하고 뭐가 더 중요하노.
가가 생각이 짧은 기 맞제.
수철 가슴 아프고 뭐 슬프고 그런 걸 니는 꼭 그래 넘길라 카더라.
봉숙 행복하고 좋은 것만 생각해도 모지랄 판에
그런 걸로 감정 소모,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다.
수철 가시나무새는 바로 우리 인생이다.
아픔이나 고통 없이 쉽게 이룰 수 있는 기 한 개도
없다. 그래 힘들고 아파야 진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기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장미꽃 맹크로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나면 사랑이 더 소중해지고
그때사 깨닫는 거 그기 사랑이다.
봉숙 오빠야 니 사랑한다는 말을 뭐 그래
어렵게 돌리가 하노. 됐고, 그냥 사랑한다
한마디면 된다. 나도 이제 그 말 들을 때 됐다.
(애교를 떨며)
수철 씨~~.
수철 니 뭐 잘못 뭇나. 와 이카노.
봉숙 듣고 싶다매 수철 씨. 나도 듣고 싶다꼬.
수철 기억해라. 힘들 때는 가시나무새를 기억하라고.
봉숙 가시나무새고 뭐고 됐다. 나는 그냥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사랑하믄서 적당히 살란다.
수철 (웃음) 풉,
정신건강에는 그기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봉숙 오늘따라 요상한 얘기나 하고,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한데이.
아줌마 지나간다. 얼큰하게 취한 상태.
아줌마 봉숙이 아이가.
니 여서 뭐 하노?
어? 그 남학생이네…… 둘이…… 수상하대이.
봉숙 무슨 소리라요. 한잔하신 거 같은데 얼른 들어가시소.
아줌마 그래 내 오늘 막걸리 딱 한 잔!~은 아니고
한 빙…… 헤헤 세 빙 마씻다.
기분이 더러버가…… 봉숙아……
남자는 다 늑대라 캐째. 느그 아부지 빼고.
봉숙 도둑이라 캤는데예.
아줌마 늑대가 도둑이고 도둑이 늑댄 기라……
쪼깐한 기 그러믄 그런 줄 알지……
남자는 다 늑대고 도둑이다 이 말이다.
언제는 내를 꽃…… 그 장미꽃 맹크로 이쁘다
이쁘다 카디, 인제는 꽃은 개뿔 무식한 여편네,
집 지키는 똥개 새끼보다 못한 년이라꼬 구박하는데……
봉숙아 내가 이래 산다…….
봉숙 마이 취하셨네예.
아줌마 취하기는 개뿔…… 니도 내를 무시하는 기가?
봉숙 아 그기 아이고. (수철이 말린다)
아줌마 그란디 그 놈팽이가 요새 부쩍 뻔질나게
어데를 드다든다 카든데…… 어데더라……
여편 네가 돈을 벌어다 주면 그걸 쪼개고 쪼개고
아끼가 알뜰살뜰 살림 살 생각을 해야지.
하늘같은 서방 알기를 지 발톱에 때만도 못하게 생각한다꼬
그래 씨부리싸티 이게 말이 되냐꼬……
지는 입이고 내는 주둥이여?
난도 코피를 마실 줄 안다 말이여.
맞네 맞어. 커피…… 인제 생각난다. 다방……
내를 장미꽃 맹크로 이쁘다 카디
장미다방이여 거시기……
장미다방.
수철 (당황해하며)
아주머니 많이 취하신 거 같은데……
조심히 들어가시소. 봉숙아 니도 늦었다.
얼른 들어가라
봉숙의 팔을 잡아끈다.
봉숙 오빠야.
수철과 봉숙 퇴장.
아줌마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퇴장.
무대 어두워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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