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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숙 Mar 09. 2023

봉숙아 봉숙아(9)

과거

10장.  

    

무대 어둡다. 

저녁. 


마을 어귀 가로등 아래. 

봉숙이 수철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다.      


봉숙         오늘따라 마이 늦네……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철이 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얼굴이 온통 피멍에 입술이 터져 있다.

옷에도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다. 


봉숙, 그런 수철을 보며 놀란다.     


봉숙         오빠야 니 와 이카노? 세상에…… 얼굴이 이기 모꼬? 누구하고 싸웠나?


봉숙이 수철의 얼굴을 만진다. 

    

수철         아…… 아이다. 산에서 급하게 내려오다가 넘어졌는데 좀 굴렀다.


봉숙         산에서 굴렀는데 얼굴이 와 이 모양이고. 

병원에 가자. 아이다. 파출소에 가자. 

오빠야 이 잘생긴 얼굴을 죽사발을 만들어 논 

놈들은 다 깜빵에 쳐너뿌야 된다.


수철         봉숙아, 내 말 들어라! 병원에도 파출소도 아무 데도 안 간다.  


봉숙         진짜로…… 내도 아까버가 보고 싶어도 참고 아끼가 보는 오빠야 얼굴을 누가 이래…….    

 

수철, 봉숙의 손을 꼭 잡으며.    

   

수철         내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 


봉숙         있어 봐라. 내 집에 들어가가 약이라도 좀 갖고 나오께. 


수철         봉숙아. 


봉숙         그냥 놔두면 덧난다. 약이라도.


수철         니 내 믿나? 


봉숙         오빠야, 도대체 뭔 일이고?


수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믿어야 한다.


봉숙         진짜로 오빠야 집에 무슨 일 있나? 아부지도 그라고…… 무슨 일이…….


수철         누가 뭐라 카더라도 니는 내만 믿으면 된다.


봉숙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 오빠야 니 말만 믿는다. 걱정하지 마라. 금방 갔다 오께. 


수철         카면 됐다. 내 간다…….


봉숙         오빠야!     


수철 몇 걸음 떼다 다시 와서 봉숙을 와락 껴안는다.      


봉숙         오빠야…….     


수철의 어깨가 들썩이며 참았던 울음을 쏟아낸다.   

  

수철         흑…… 흑.


봉숙         오빠야 니…….      


봉숙,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우는 수철을 말없이 토닥인다. 

그런 봉숙의 품에 안겨 한참을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낸다. 


무대 어두워지고 사이렌 소리 요란스럽게 들린다.

사람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    

 

여자 목소리1    뭔 일이고. 


여자 목소리2    산에서 사람이 죽었다 카네.


여자 목소리1    아이고 이기 다 뭔 일이고.      



암전. 





11장. 


     

어두운 무대 봉숙에게 핀 조명.      


봉숙         모성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모성애를 들이밀면서 엄마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모성애는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만큼이나, 

때론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 엄마를 향한 

아이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가끔은 변질된 

모성애를 뛰어넘기도 한다. 수철 오빠의 엄마를 

향한 사랑은 맹목적이었고 필사적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 허공으로 손을 내민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은 처절하게 혼자임을 체감케 

할 뿐이다. 내민 손이 툭 하고 떨어지고 체념한 

아이는 끝도 없는 벼랑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생명은 처음 눈을 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바로

그 근원, 자궁 속 강렬한 심장 소리를 가진

작은 태아로 돌아간다.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공간 속으로……. 

뱀골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 태풍은 

어느 순간 오빠네로 불어닥쳤고 

오빠는 피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그 바람을 

견딜 뿐 손가락 하나 저항하지 않았다.

무혐의로 오빠가 풀려나고 사건은 자살로 

종결이 되었다.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입에 

올리지도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을엔 암묵적인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오빠네는 야반도주를 했다.

 계절이 바뀌고 어느 날 오빠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오빠가 침묵을 선택한 이유를……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바로 엄마를 위한 자식의 맹목적이고

필사적인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두운 무대 목소리만 들린다.


(입영열차 안)     



수철         가께…….


봉숙         오빠야…… 다 잊고 가라. 


수철         밥 잘 챙기 묵고 건강 조심해라.


봉숙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니나 몸 안 축나게…… 

잘 챙기 묵고…… 

사고 치지 말고……

안에 일만 신경 써라. 


수철         어. 


봉숙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 이래 잠깐 보이 주고 가노

…… 니는 내 안 보고 싶었나

…… 오빠야

…… 내 이 악물고 공부해가 서울 갈 끼다.

여기를 뜰거란 말이다. 

편지 쓰께…… 

꼭 답장해라.     

          

수철         봉숙아.      


(기차 소리)    

 

봉숙         뭐라꼬.


수철         내 기다리지 마라.


봉숙         안 들린다. 뭐라 캤노.     


기차가 움직인다. 수철 손을 흔들며.     


수철 목소리 사랑한다…… 봉숙아…… 

가시나무새는 죽어도 나는 살아남을 끼다. 

살아서 지킬 거다…….     


봉숙, 떠나는 기차를 따라 달리며 소리친다.     


봉숙        오빠야, 꼭 답장해라!

 오빠야, 사랑한다! 


(멍하니 서서)


……


건강해라. 

보고 싶을 끼다…….   

   

기차 움직이는 소리.



암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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