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경숙 Mar 09. 2023

봉숙아 봉숙아(10)

과거

12장.

      

어두운 밤.

수철의 엄마가 논두렁을 지나 산으로 들어간다. 


수철이 몰래 엄마 뒤를 밟는다.  


산으로 올라간 엄마는 오래된 버려진 움막으로 들어간다. 

한참이 지나 엄마가 나오고 산을 내려간다. 


몰래 지켜보던 수철이 그대로 움막으로 돌진한다. 

셔츠를 풀어 헤치고 담배를 태우던 김씨는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김씨         니…… 니는 

수철이 아이가…….     


다짜고짜 수철이 김씨를 덮치며 주먹을 날린다.

두 사람 넘어지고 티격태격 싸움이 벌어진다.    

 

수철         (악을 쓴다) 죽이 삔다. 다 죽이 삔다꼬!


김씨         들어봐라! 들어보라꼬……

억!

(수철의 주먹이 김씨의 얼굴에 내리꽂힌다.)     

 

수철이 주먹을 들어 다시 내리치려 하자.     


김씨         너거 어메가 좋아서 만나는 기다!


수철         닥치라! 그 더러운 입으로 우리 어메 들먹이지 마라!



수철이 다시 주먹을 날리고.


김씨         억!             

 

수철         가정이 있는 새끼가 어데 할 짓이 없어가.     

 

김씨 일어나 수철에게 주먹을 날린다. 

     

김씨         이 호로자식!     


다시 주먹을 날린다. 


수철의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흐른다.


김씨         은혜를 웬수로 갚는 새끼, 너거 식구 도와주는 내한테 뭐 하는 짓이고!


수철         개소리하지 마라!     


주먹이 오고 간다.      


김씨         개소리?

니 공납금을 여지껏 누가 대 줬는데…….


수철         다 필요 없다. 다 필요 없다꼬!

니 죽이고 나도 죽이 삘 끼다.    

 

주먹이 오고 가고 피가 터지고 얼굴이 엉망이 된다.


수철, 옆에 나뒹구는 나무막대를 집어 들고 

김씨를 향해 허공을 한 번 크게 휘두른다.      


김씨         미친 새끼!      


수철을 피해 도망가는 김씨.      


수철         (김씨를 향해 소리친다) 

거기 서, 개새끼야!     


수철이 쫓아간다. 


산으로 산으로 도망가는 김씨와 계속 쫓아가는 수철.


언덕배기 정상.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김씨. 

바로 뒤따라온 수철. 


헉헉거린다.    

  

김씨         헉헉…… 

니…… 내한테 이카면 안 되는 거……

모르나.


수철         개소리…… 헉헉…… 

집어치라!


김씨         니 막말로…… 너거 어메가 수절과부도

아이고…… 카고 

어데……

내만 만나고 다닜나.


수철         닥치라!


김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거를……

와 니만 모른 척하노. 

너거 어메가 만나고 다니는 놈팽이가 몇인지 아나?

…… 내가 사람이 좋아가 그런 너거 어메를 

다 감싸 주고 만나 주고 하는 거를

고맙게 생각해야……. 


수철         닥치라꼬! 


허공으로 나무막대를 휘두른다. 

피하다 김씨가 넘어지고 넘어진 자리에 돌덩이가 있다. 

김씨가 돌덩이를 집어 들고 위협한다


김씨        이 새끼가 그래 덤비라. 

확! 오냐오냐해 줬디……

내가 임마.  걸레 같은 년을 거둬 주고지 자식 

공납금까지 갖다 바칬으마 고마운 줄 알아야지.

아, 아…… 맞다 지 자식은 아니 제. 

아이고, 내가 괜한 얘길 꺼냈나.

아이다 니도 좀 있으모 성인인데 알 건 알아야제. 

니 너거 아부지가 바람이 나가 집 나간 건 알고 있나?      


수철 당황해한다.  

   

김씨        하이고, 몰랐는갑네. 이를 우짜꼬…… 

니 니가 어메어메하고 부르는 그 어메가 

친어메가 아니란 것도 몰랐을 낀데……. 

 

수철         뭐라꼬? 죽이 삔다!! 

(나무막대를 휘두르고 김씨가 피한다)


김씨        씨부렁새끼가! 닥치라! 

니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 되나. 내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뱀골마을에 니가 어메라고 부르는 년 치마 속을 

안 거쳐 간 놈이 있는 줄 아나? 

그놈 찾는 기 한양 바닥에서 김 서방 찾는 거보다 

더 어렵다.        


수철         악!


(비명을 지르며 김씨에게 달려든다)     


김씨, 수철을 향해 돌을 크게 휘두르며 내리치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바닥에 똬리를 튼 뱀을 보지 못하고

밟고 미끄러져 뒤로 벌러덩 나자빠진다. 


넘어진 김씨가 뱀을 발견한다.    

  

김씨         뱀…… 

어…… 

어…… 

    

놀라서 뒤로 피하려다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김씨의 외마디 비명.    

 

무대 어두워지고 봉숙에게 핀 조명.    

 

봉숙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뱀골마을의 추악한 진실은 김씨의 죽음과 장미다방

그리고 어느 여학생의 진술로 연결고리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무게가 얼마인지 모른다. 

오빠가 감당해야 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비밀…… 

뱀골마을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침묵이 무겁게 정체 모를 두려움으로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계절이 몇 바퀴를 도는 동안 오지 않는 오빠의

답장을 기다리며 편지를 쓰고 또 쓰며

인연의 끄나풀을 놓지 않으려 했다. 결국

오빠에게선 답장이 없었고, 

나는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다.

나는 믿는다. 

누가 뭐라 해도 믿어 달라던  오빠의 말을. 

그게 뭐가 되었든…… 

야반도주를 하고 오빠에게서 날아온 편지엔

오빠의 진심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수철 목소리  봉숙아,

말도 없이 이렇게 떠나온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세상의 도덕이 무너지고 믿었던 가치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에도 

언제나 맑은 영혼으로 내 곁에 있어 주는 니가

있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그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덕대다 겨우 정신을 차려 하늘을 본다.

그간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마주하는 것들이 진실일까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은 지옥 끝까지 

나를 끌어내리고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바람난 지아비를 내치고 그가 낳아 온 자식을

거두며 그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가여운 여자가 우리 엄마란 사람이더라. 

봉숙아 가시나무새 기억나나.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러 피를 흘리며 

어떤 새소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는…… 

나는 우리 엄마가 가시나무새 같다.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구덩인 줄 알면서 

스스로 들어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위해. 

비뚤어진 희생이고 모성애라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하면 그건 다 내가 맞을 끼다. 

더 이상 널 당당하게 볼 수 없을 것 같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다시는 널 보지 않을 용기 또한 없다. 

아직까지 아니 앞으로도 모든 것이 짊어질 수 

없을 만큼 힘이 들겠지만 감당해야 하는 것 

또한 내 몫이라 생각한다. 

나 입영할 거다. 

나와 줄래. 

27일 7시 

역. 

기다릴게.      


봉숙, 핀 조명 아래 서 있다. 

    

봉숙        편지를 아프게 써 내려가는 

오빠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찢기고 생채기 난 가여운 영혼은 자신을 길러 준

여인을 고통으로 감싸 안았다. 

엄마라는 큰 산이 되어 준 여인을 위해 평생을 

바치리라 결심하면서…….  


암전.  



<계속>   

이전 09화 봉숙아 봉숙아(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