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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내나는하루 Dec 12. 2023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고 나서

내가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기분부전 장애를 겪는 작가의 정신과 상담 얘기가 주이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의사와의 대화를 녹취 후 그대로 활자로 편집한 책이다.


어찌 보다 보면, ‘이게 책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적당한 소재와 작가의 사고나 생각 등이 정리된 것이 책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신과 의사와 작가의 대화를 그대로 시나리오 식으로 편집만 했는데, 이상하게 읽다 보면 내 얘기가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내 얘기인 것 같은 문장은 수십 번씩 되돌리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1권의 책 표지에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라는 문장을 봤을 때, ‘아 그때 내가 힘들었었구나, 저거 내 얘기네’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때 당시의 허전함이 나의 성취욕이나 끝도 없는 욕심 때문인 줄 알았다. 근데 ‘내가 마음이 힘들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로는 내가 짠했고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구열이 강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항상 학업에 열중했어야 했다. 중, 고등학생 시절 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서 잠깐 자유를 만끽한 뒤에도 고시를 준비했어야 했다.


고시 패배의 쓴 맛을 몇 차례 겪은 후, 몇 년 간의 칩거 생활과 눈칫밥 생활을 거치고 계약직과 중소기업을 전전하다가 다시 백수가 됐었다. 또다시 고시를 준비한 후에 지금은 그 취업 시장이라는 곳에서 탈출하여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안정적인 직장과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계속되는 불면증 때문에 ‘메니에르’라는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마음이 공허하니 잠을 못 자고 그러니 어지럽고 이런 무한 반복적인 삶이 지속되었다.


두 달간에 병가를 내고 각종 병원의 이비인후과에서 받는 약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심리상담을 시작했었다. 그 후에는 다행히도 마음이 편하니 잠이 잘 왔고 메니에르는 잠시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다.


공허감, 끝도 없는 허전함에 빠져 나는 항상 뭔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성취에 목마른 사람 같다. 항상 학업 성취만 강요받다가 막상 성취의 끝을 봐 버리니 인생이 허무해져 버렸다.


막상 취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판타스틱한 삶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었고 생활은 안정되었으나 마음이 허전한 건 여전하고 아주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매일 잠이 안 왔다. 몸은 피곤한데, 눈은 감고는 있는데 잠이 안 온다. 계속되는 허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루 8시간 열심히 일은 했는데 성취감도 없고 행복감도 없고 이 알 수 없는 허무감은 무언지 계속 생각했다. 열심히 달려서 100미터 완주 선에 도달했는데, 막상 와보니 별게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공허감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 없는 거 찾지 말고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공허감에 집중하지 않고, 이제 더 이상 고시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긍정적인 시선과 새로운 취미 생활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 운동을 해서 몸을 많이 피곤하게 해 잠에 곯아떨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느슨함과 권태로움은 안정감으로 치환시켜 버리고, 이른 아침 운동은 세로토닌 분비에 활용하도록 한다.


사실 요즘 아침 운동이 어려워져서 조금 부끄럽기는 하다. 날씨가 추워지고 해가 늦게 뜨면서 아침 운동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기상 시간이 좀 늦어져도 깊은 잠을 자기 위한 방안이라는 핑계를 좀 갖다 대 보자. 나는 나를 긍정하고 칭찬해야 하니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다 읽고 맨 뒤 커버에 적힌 문장들을 몇 개 읽어봤다. “페이지를 못 넘기고 머무르게 된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내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라 부끄러웠지만 개운하기도 했다, 받자마자 한숨에 읽어버렸다, 너무 내 일기장이 아닌가 싶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평균적인 인간들이 대체로 느끼는 감정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현대인의 적당한 우울감, 공허감 등이 모두에게 있는 것 같아서.


공허감과 우울감을 가진 대한민국 평균적인 인간들이 또 나와 같이 밤잠을 설치거나 혹은 오늘은 잘 자고 내일을 또 보내겠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좀 덜한 공허감을 느끼면서 편안한 밤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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