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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l 29. 2024

나의 페르소나

삶의 모양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 이후 라틴어로 섞이며 사람 (Person)/인격, 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고, 심리학 용어가 되었다. 분석심리학적으로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 의무 등을 따르는 것이라 하며, 자신의 본성을 감추거나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사회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곱씹어서 자신을 좋은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본성과는 다른 가면을 써서 연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간이라면 각자에게 페르소나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에게도 페르소나가 있고, 나의 페르소나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았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나의 페르소나를 깨닫게 되었다. 나의 페르소나는 밝은 사람, 잘 웃는 사람, 사교성 좋고 붙임성 좋은 활발한 사람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미 바깥에서 밝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조차도 이것이 페르소나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가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실제로 밝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러한 나의 페르소나로 인해 나의 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나는 남들이 듣기 좋은 말을 잘한다. 막말로, 사탕발림을 잘하는 편이다. 남들의 비위도 꽤 잘 맞춘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계속 두고 살다 보니 비위 잘 맞추고 입에 발린 소리를 잘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렇게 타인에게 예쁜 말,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붙임성 있고 밝고 긍정적이라고 불리는 내가, 혼자 있을 때면 우울증 환자가 되곤 했다. 자주 불안하고 우울했다. 혼자 눈물을 가득 쏟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 남한테는 좋은 사람인 내가 결국 나 자신한테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미 나의 이러한 페르소나가 만들어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 결국 나를 이런 나의 페르소나 안에 가두고 살아오다 뒤늦게 자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만) 좋은 사람이니까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며.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 어울릴 때 화가 나도 마음껏 화내보고 슬퍼도 마음껏 슬퍼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사실 나의 어린아이가 이제는 내 안에서 더는 슬퍼하지 않고 행복해진 줄 알았는데, 그저 나는 계속해서 나의 어린아이를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로. 그저 모른 채 살고 싶어서 모른 척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늘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고, 내가 정의하는 나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아닐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조금만 실수해도 자신을 옭아매고 채찍질하며, 타인이 나에게 하는 부정적인 들과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여전히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완전히 솔직해지진 못하더라도, 나에게만큼은 정말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솔직하지 못한 나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버겁다. 나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나는 나에게 질질 끌려다닌다. 나는 자꾸 체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내 속을 꽉 막았다. 소화에도 과정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나는 이 과정을 모조리 생략했고,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기쁨과 행복만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감정들만 고집하기 바빴다. 그러니 남겨진 부정적인 감정들은 오갈 데 없이 차곡차곡 내 안에서 쌓일 뿐이었다. 나는 계속 회피하고, 도망치고, 또 회피하고, 또 도망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해소되지 못해 막혀버린 나의 감정들이 나에게 묻는다. 실로 기쁜지, 웃고 있는지, 행복한지. 벼랑 끝까지 내몰린 우리도 좀 봐달라고 애원하고, 나에게 끊임없이 사정한다. 그리고 방치가 계속되면 나도 언젠가는 너희와 함께 벼랑 끝으로 내몰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갇히고 말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막힌 너희들을 다 보내줄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 잘 살아낼 것이다. 벼랑 끝이 아닌 평지를 밟고, 내가 진실로 나 자신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나와 손을 잡고, 어깨동무하고, 서로를 토닥여주며 걷고, 달려야 할 때는 달리고, 쉬어가고 싶을 때는 쉬면서, 그렇게 잘 살자. 잘 지내자. 나의 어린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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