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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5. 2024

3. 나는 인생을 손절하고 싶은 걸까.

복원술 후 VRE 감염, 결국 이른 퇴원


복원술 후 격리병동으로 이동되다.

2018년 12월 28일
갑자기 VRE(항생제내성균) 감염돼서 격리한대ㅜ.. 정말 VRE균만 아니길 바랐는데... 격리되면 면역력도 떨어지고 재활도 늦어지니까 그게 걱정이야ㅠㅠ
 몸에 줄 제거하는게 좋대서 소변줄 제거하고 기저귀찼어.
 별 일 없을거야. 재활은 내가 배워서 해주고. 우리가 옆에서 더 케어할게. 걱정마 언니♡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항생제 내성균). 말그대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을 말한다. 이 균 자체는 인체에 별 영향을 안끼치는데, 다른 강력한 균들이 이 성질을 복사하게되면 항생제가 안듣는 골때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있어 VRE 감염자들을 격리해놓는다.

 나는 두개골 복원수술 회복 중 이 균에 감염되었고, 한창 초기재활을 집중적으로 받아야하는 시기에 재활치료실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다른 재활 집중 병원으로 전원하지도 못한채 격리되어있었다. 재활치료실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물리치료사가 찾아와 침상에서 10분 관절운동(ROM) 해주는게 하루에 받을 수있는 처치의 전부였다.



 할 수있는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기간동안에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잤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눈으로는 원활히 읽는데 소리내어 읽으려고하면 더듬거렸다.  중얼중얼 책읽기 연습만 했다.


 이 무렵부터 밀려있던 카톡 답장을 하나, 둘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언어가 그려지는데 막상 자판으로 치려니 어렵다. 웃긴건, 말로 하라고하면 된다. 그걸 문자로 옮기려면 또 버벅인다.

 아니, 이걸 왜못해?!?! 나 자신이 겪고 있지만 기가 차고 코가 찬다.






 일상 대화는 비교적 빨리 가능하게 되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나 대화가 어눌했다. 나 이제 어떻게 살지. 이런 고차원적이고 구체적인 고민은 잘 안했던 것 같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하나? 그냥 때때로 슬픔이 울컥 솟구쳤고,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울고, 또 울었다.


2018년 12월 30일 <발병 34일째>
 요새 언니가 눈물을 보이는 일이 많아졌어. 하루에 짧게 너덧번은 우는 것 같아. 그래도 잘 이겨내려고 해서 너무 다행이고 기뻐.
 화장실을 스스로 가고싶어해서 얼른 서는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


 VRE 양성이 한번 나오면 연속으로 3번 음성이 나오기 전까지는 격리되어있어야 한다. 감염자는 음성 확인서 없이는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 검사는 일주일에 한번. 2주동안 양성이 나오다가 이후 3번의 음성이 나오기까지 5주정도 재활병원 입원을 못하고 있었다.

 잘먹고 잘싸서 면역력이 올라가면 자연히 사라질거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두개골 닫은 뒤에 연하(삼킴)가 회복되어서 콧줄을 통해 영양식을 식도로 넘기던것을 관두고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진짜 핵노맛. 모든 반찬이며 밥이 다 곱게곱게 갈려서 나오는데, 밥투정을 잘 안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진짜 못먹겠더라. 반찬은 거들떠도 안보고 밥미음에 간장만 뿌려서 먹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일반식으로 전환하고, 물도 사레들리지 않고 삼킬수 있게되었다.

 양성이 두번 나온 뒤에는 그냥 퇴원을 했다. 병원에 VRE균이 제일 많고, 무엇보다 감염자끼리 모아서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감염자들 모아놓고 균이 빨리 없어지기를 기다리는건 좀..





퇴원 후 내가 살던 자취방으로


 제 몸도 못가누는 중증환자인 채로 일반적인 승용차에 태운다는건 불가능했다. 사설 구급차를 불러 이동침대에 실려나갔다.

 수술 후 처음 마시는 바깥 공기. 애석하게도 나는 또다시 구급차 신세였다.

 사실 나같은 환자가 집에서 생활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많다. 나의 이른 퇴원을 위해 가족들이 준비를 많이했다. 당장 집 화장실 문턱조차 못넘어가서 간이 변기를 마련해  한복판에서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내 자취방은 원룸이었다.) 소변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하는 일이 있은 후로는 기저귀를 찼다.

 그래도 나이 스물여덟의 말만한 처녀인데, 이런 생활이 어찌 만족스러웠을까. 창피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했지만, 내게는 '편마비'와 사투를 벌이는 것만으로도 벅차 이런 쪽팔림은 그저 순간의 감정으로 치부해버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퇴원하면서는 집으로 간단한 출장운동을 불러 간단히 몸쓰는 법을 배웠다. 동생은 메모해가며 듣다가 끝나고 나면 나와 함께 배운걸 반복한다. 쉬고 있을 때면 내 오른손이 굳지 않도록 쉴새없이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주고 주무르고있다. 동생이 점점 치료사가 되어간다.





 집에 와서도 할 수있는건 없었다. 내가 예전에 쓰던 침대는 굴러떨어질까봐 병원에서 쓰던것과 같은 난간이 있는 침대를 대여해서 썼다.

 그 침대에 기대앉아서 하루를 보냈다. 스카이캐슬이 인기리에 방영중인 때였는데, 나도 애청자였다. 보다보면 자연히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나의 상황을 비교했다. 저 사람이 더 불행할까, 내가 더 불행할까, 재보면서. 저 사람은 자살했는데 나는 막상 죽으려니 무섭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득보다 실이 더 많을것같다면. 아니, 득이 언젠가 우위에 올 날이 있을지언정 실낱같은 가능성가지고 지금의 상실을 감내할 이유와 의지가 없다면, 그야말로 '손절'할 타이밍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을 그만 손절하고 싶어하는건가.


 '아니, 창가까지는 걸어갈 수 있어야 뛰어내리든가하지.'


 두려워서 입 밖으로도 못내면서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허세가득한 생각만 줄곧 했다. 그러나 사실 알고 있었다.

 살고싶은지는 확답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죽고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어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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