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네 Oct 25. 2024

3-1. 대머리의 일기




 어릴 때 한번쯤은 해본 상상.

 일상생활 도중 병약미 넘치게 쓰러져 실려가는 장면.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채 병원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는 가녀린 (미)소녀. 상상 속에선 내가 가을동화의 송혜교였고, 천국의 계단의 최지우였다. , 상상은 자유니까.

 내 상상이 너무 디테일했던 나머지 현실이 된걸까, 나는 정말로 병원침대에 누워있었다.

 상상과 치명적인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머리에 큰 수술자국이 있는 대머리였다는 것이다. 상상 속 ()소녀는 길고 검은 생머리의 소유자였는데. 나는 그냥.. 머머리.


 친구며 동기들이 면회를 오겠다는데 극구 사절했다. 장애를 가진 내 몸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머리 때문이었다.
 '내가 머리수술을 해서, 빡빡이야. 나 머리 좀 기르면 와.'
 머리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머리카락이 자랄 때쯤 되면, 내 마비된 몸도 다 돌아올거라고. 그때 되면 친구들의 문병을 받으며 송혜교 코스프레를 하다가 퇴원을 기다리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점점 흐르는데, 내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그나마 움직임이 나와도 예전같지 않다.

 내가 왜..

 나한테 왜..






 스물일곱, 만으로 스물다섯. 내가 생각해도 나의 '지금'이 예쁘고 반짝반짝했다.

 회사에 취직하고 경제적 여유도 어느정도 생겼겠다, 상황이 허락하는 내에서 즐기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쓰러진 날 다음 주에 보라카이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비키니를 입고 화이트비치를 산책했어야 하는 그 시간, 나는 환자복을 입고 의식도 없이 병원에 누워있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했던가. 나는 비교적 나의 젊음의 가치를 알고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시간 가는게 소중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직무적 성장을 이루고 싶었고, 기타도 잘 치고 싶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었다. 게임도 하고싶은게 많았고, 보드댄싱에 꽂혀 스케이트보드 강습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열망들이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짐작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이전 05화 3. 나는 인생을 손절하고 싶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