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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5. 2024

4-1. 나의 장애를 소개합니다

뇌졸중 생존자, 그 무게에 대하여


 뇌졸중 생존자.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돌아왔으니 '축복'이어야 마땅한데, 벌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

 돌아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장애와 같이 돌아왔다.


 외상은 전혀 없는 뇌졸중이지만 그야말로 전신에, 아니 신체를 넘어 보이지 않는 언어나 인지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발병 , 나에게 나타났던 양상들을 소개해 본다.





1. 오른쪽 편마비


 오른쪽 몸을 사용 못한다는 것

= 허리를 세워 앉지 못한다는 것

  (팔, 다리뿐만 아니라 오른쪽 몸통 근육 전체를 못쓴다)

= 노래를 못 부른다는 것(복근도 반쪽이므로)

= 걷지 못한다는 것

= 젓가락질을 못한다는 것(나는 철저한 오른손잡이였다)

= 양손이 필요한 활동 일체를 못한다는 것

= 왼팔에 머리카락이 붙어서 간지러운 뗄 수가 없는 것..()



 오른쪽 몸은 나에게 짐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왼쪽 몸으로 끌고 다녀야 하는 짐덩이 그 자체. 팔 드는 게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그냥 얌전히 '짐'으로서의 역할만 해줘도 좋으련만, 힘 좀 쓰려고 하면 오른쪽 팔, 다리가 제멋대로 뻗쳐대고 오그라든다. 물에 빠져 발버둥치는 사람 안고 헤엄치는게 같은 무게의 사물 안고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는게 이런거 아닐까. 몸의 반쪽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움직여야 되는데 안움직인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면 되는지를 아예 모르겠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책을 보면 ,
'까만건 글씨요, 하얀건 종이구나.' 할텐데, 내 지금 상태가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수동적 움직임은 느낄 수있는데, 움직임을 이해해서 따라할수는 없는. 영어 알파벳은 알아서 소리 내 읽을 순 있는데, 의미를 모르니 이해할 수 없는..?
 내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 발병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라는 것밖에는.

 손이 어디 있는지 알고,
남이 움직여주면 움직이는 것도 느껴지는데
스스로 움직여보라하면 도무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기가 막힌건 왼쪽으로는 아무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그나마 지금은 고유수용성 감각이 많이 좋아져서 손이 어디있는지는 아는데, 그것도 부족할 적엔 더 절망스러웠다.
  내 뇌에서 오른쪽은 아예 없는데,
오른손이 어디있지도 안보면 모르는데 오른을 움직이라니..

앞을 못 보는 사람한테 책 읽으라고 하는 수준의 난감함.



 예전에 어떤 환자분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못하니까 답답해하는 치료사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선생님 손톱 움직여봐요. 손가락 말고 손톱만. 아니면 머리카락만 움직여보던가."


 깔깔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맞어맞어. 내 머릿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위가 아닌데  어떻게 움직인단 말인가.

(사실 박수는 못 치고 무릎을 쳤다. 박수도 양손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2. 언어장애(실어증), 인지저하


 좌뇌의 많은 부분이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발병 초반에는 언어장애가 다소 동반되었다.


 내게는 두개골을 닫기 전 한달정도의 기억이 없는데, 그 기간에도 조각조각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다. 말을 단답형 대답밖에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생각을 글로 써 보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생각을 써보라는 말을 이해했고, 하고싶은 말을 떠올렸으나, 언어의 형태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를 쓰고 싶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른 글자를 쓰고 있었다. '흰난 나난'? 이게 뭐란 말인가. 문자이되 언어가 아니었다.

  나는 잘 안되자 그냥 펜을 놓아버렸다. 인지능력 역시 부족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이유이다. 내 성격에 의도와 다른 것을 썼으면 몇번이고 다시 시도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면 생각이 없었나? 알 수 없다.


 일상 대화가 얼추 가능해지고 난 후에도 문자를 읽는 것, 전화를 하는 것은 좀 더 오래 걸렸다. 분명 눈앞의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자를 말하거나 책을 읽거나 전화를 하면 더듬거린다. '이제는 문제없다.'라고 느낀 게 수술한 지 1년반정도 되어서인 것 같다.


동생과 치킨시키는 연습, 숫자 읽는 연습한 흔적






다행인걸까


 내 차트에는 출혈 관련 진단명이 세 개(ICH, IVH, SAH) 적혀있다.

 심한거란다. 여기 재활병원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중 하나정도만 갖고있다나.
 나를 본 어떤 물리치료학과 교수님은 '내가 본 이 케이스 환자 중 상태가 제일 좋다. 신경과 의사가 럭키걸이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말씀하셨었다.

 '럭키'라고..   나는 그저 어렴풋이 웃었다.
 다행인건가.

 만으로 스물다섯, 이렇게 살아야 할 날이 얼마나 길게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다행인건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기분이 이럴까. 어디까지 신체 기능이 회복될지, 얼마나 걸릴지, 아니 회복이 되기는 할 지, 보장도 기약도 없다.



  여느 질병들이 다 그렇겠지만, 뇌질환도 경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부위를 다쳤어도 천차만별이다.
 뇌졸중 예후를 '1/3법칙'이라 한단다. 셋 중 하나는 아무 장애도 없이 발병 후에도 잘 살아가고, 하나는 후유 장애가 생기며, 나머지는 사망한다고.
 후유 장애도 얼마나 다쳤는가, 얼마나 적절한 치료를 받았는가, 얼마나 노력했는가 등에 따라 예후가 다르니 도무지 끝을 장담할 수가 없다.

 환자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옛날같았음 꼼짝없이 단명하는건데 현대 의술이 숨은 붙여놨고, 그런데 마비같은 후유장애는 수술로 고치지 못하니 어정쩡해서 살아있는걸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내 상태는, 성공과 실패 사이 그 어디쯤.

 실패가 아님에 감사해야 하는가, 성공이 아님에 낙담해야 하는가.



 영화나 드라마 보기보다 게임하는게 좋고,

 미술관 가는 것보단 그림 그리는걸 좋아했고,

 음악 듣는 것보다 악기연주하는게 좋았다.

 일도 열심히했다. 매사 빠릿빠릿하게 먼저 달려가서 해놓는,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날아다니는, 그런 직원이었다고 자부한다.
 그 모든 것이 어렵게 된 지금, 아직도 삶의 낙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감이 확실히 안온다. 포기가 안된다.


 내 머릿속에서 오른쪽 운동기능을 담당하던 뇌세포는 출혈과 함께 녹아내렸다. 파괴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부터의 재활은, 잠깐 어디 갔던 것을 돌아오게 하는 개념이 아니라 다른 뇌세포들이 그 기능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나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나는 언제, 살아있는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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