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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5. 2024

5. 아프기 적당한 나이

부질없는 '만약에'의 늪


2019년 2월 27일


 아프기 적당한 나이란게 과연 있을까?
저마다 병원에 있지 않았다면 누렸을 삶의 모습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살아가고있다.

10대도, 20대도, 70대조차도..



나주에서 오셨다는 옆침대 할머니가 울고 계신다.

자식들 다 키우고 손주도 장성할 때까지 봐주시고

이제껏 뼈 빠지게 밭일하다가 조금 편해지나 싶더니

이런 몹쓸 병이 왔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봐서 따라 울었다.





 디어 VRE균 감염으로 인한 격리가 해제되고 재활병원으로 전원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재활을 잘한다고 소문난 병원이란다. 그래서 전국에서 환자들이 모인다.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각지에서. 이곳이라면 뭔가 다를까 싶어 각자의 희망을 안고 모여든다. 그러나 좀처럼 나지 않는 회복속도에, 품었던 희망만큼 절망이 된다.



 나도 그랬다.
 병원에 가서 재활만 열심히 면 곧 '그날'의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달랐다. 발병한 지 수 년지난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이게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가? 예후는 이미 수술방에서 나온 그 순간 결정되어 있었던거 아닌가?

 때때로 재활치료가 '연명치료'처럼 느껴졌다. 회복을 기대해야 치료인데, 이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기능 개선이 아닌 악화 방지를 위해 치료를 받고있는 것 같았다. 보호자며 환자 자신들조차도 '이 병은 낫지 않는 병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혼자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안낫는 병이라고 인정하는건 나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인지가 없어 내 상태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혹은 쓰러졌을 때 죽었더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다. 아니, 매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에 대한 '만약에'가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다니, 가족들이 속상해거 왜 모르겠는가. 나 자신도 가족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슬픈 것을. 하지만 그런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인지가 없는게 낫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여긴 그런 사람들 천지다.

 맞은편 침대의 할머니는 간병하는 따님에게 '하루만 산다 해도 사람답게 살다 가고 싶다'라고 하셨단다. 70넘은 할머님도 그러시는데 나라고 다를까? 나는 너무 젊어서 탈이었다.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 매순간 이대로 평생 장애를 갖고 사는게 아닐까하는 두려움과 싸운다. 평생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는 쓰러지기 직전에 누렸던 삶이 고급호텔 로비에서 주는 웰컴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누릴 만큼은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잖아. 객실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데. 맛만 보게해주고 빼앗는게 어디 있어.

 아직 해보지 못한, 내가 누렸어야 마땅한 수많은 것들이 미련의 형태로 나타나 나를 바닥에 처박았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뒤범벅되어 목을 조여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한다. 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우느라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자, 엄마가 우울증약을 복용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내가 정신과약이 필요할 만큼 마음이 아프다고?

  '조금만 더 버텨보고, 지켜보고..'

 정하는게 쉽진 않았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우울감에서 탈출할 방법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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