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길 시작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 안은 박닌의 삼성공장 직원들, 삼성의 외주업체 사장들의 가족들이 가득했다.
다들 나이대가 있어 보였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남자가 혼자 있으니 어디서 오셨냐고 묻길래
무역회사에서 파견 나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신기해하는 눈동자들..
격리시설이 있는 하롱베이 까지 가는 길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베트남 북부의 습하고 뜨거운 열기에다가 전신방역복까지 마스크도 벗지 마라고 하니
버스 안은 찜통이었다.
대형버스에 꽉 찬 사람들, 갓난아이까지 검역복을 입혀놓으니 애기들은 더 죽을 맛이었다.
실미도부대가 탈취한 버스에서 울어재끼는 아이처럼 오히려 어른들이 미안해질 정도로 아이들은 울어댔다.
나도 속으로는 정말 울고 싶었다.
그때는 그만큼 코로나가 위험하다고 느꼈다. 베트남 정부가 아니라 전 세계가 그러했으니 누구를 탓하랴..
달리는 창문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바람으로 간신히 숨을 쉬면서 격리시설에 도착했다.
14박 15일 동안 감옥이 따로 없었다.
호텔 문 밖으로도 나가지 말라고 하니 이건 무슨 진짜 교도소였다. 가보진 않았지만 그런 기분이 아닐까..
할 게 없으니 사온 담배는 금방 동나고 격리 끝나고 하노이 가서 현장실습 때 신세 졌던 사장님에게 주기로 한
면세점에서 사 온 돔페리뇽, 모엣샹동을 까서 옆방 사장님하고 7일 차에 다 마셔버렸다.
(다행히 베란다에는 나갈 수 있어서 팔을 뻗으면 옆방과 술잔 주고받을 거리는 있었다)
옆 방 아저씨랑 참 많이 이야기도 했다.
격리하는 동안 매일 러닝셔츠에 팬티바람으로 농담이나 하던 동네아저씨 같았는데
격리가 끝나고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리무진 한대가 오더니 그 옆방 아저씨였다.
하노이 가는 거면 같이 가자고 태워준다길래 감사히 타고 하노이에서 내려서 명함을 주면서 돔페리뇽 잘 먹었다고 연락하자고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단한 회사의 대표였다.
하노이에서 마트 몇 군데 들려서 시장파악 후 호찌민행 비행기에 탔다.
첫 호찌민의 느낌은 느껴지는 더위는 하노이와 사뭇 달랐다.
동남아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딱 그 느낌.
길에 보이는 수많은 열대나무,.
향긋한 갓 내린 커피 향이 마치 내 코 옆에 놔둔 것처럼 풍겼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자유분방함,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그늘에 앉아서 코코넛 하나 먹으면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렜다.
첫 출근 후
일주일 정도 인수인계를 받았고 전임자는 떠났다.
인수인계 급하게 받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했던 직원이 눈에 들어온다.
"Xin chào
"Xin chào sir"
어리바리해 보이는 현지인 직원 1명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직원은 보기와 다르게 매우 유능한 직원이었다
재무제표를 보니까
당분기 매출 0
순익 0
???
뭐지
3년 동안 왜 매출이 없어
자본금 계좌 보여줘 봐
$18,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