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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랍 속 깐풍기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by 레인송


딸은 저녁 식사 시간마다 순풍산부인과를 찾아본다. 벌써 6개월째다. 겨울에는 '지붕 뚫고 하이킥'과 '슬램 덩크(TV버전)'를 두 번 연거푸 정주행 하더니 봄부터는 순풍 산부인과를 찬 삼아 깔깔 데며 흥겨운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낸다. 보고 또 보는 습성이 나를 닮았다. 20여 년 전, 나 역시 즐겨보던 유일한 드라마다. 그럼에도 한때 그 드라마를 멀리 했던 기억이있다. 영규의 깐풍기와 군만두 사랑 때문이었다.




결혼하자마자 빈티지 샵에서 오래된 한국 전통장을 샀다. 초록색이어서 초록장이라고 부른다. 그 안에 앨범과 귀중한 서류. 일기장등을 보관한다. 그중 오래된 노트 세 권이 있다. 1997-1999년에 작성한 노트이다. 겉표지에 ‘나의 서랍’이라고 써 놓았듯, 그 시절 내 마음이 담겨있다. 한창 영화 공부에 빠져있을 때라 영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술술 읽어가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맨 뒷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느 날은 두 줄, 어느 날은 세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글씨가 하도 작아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니 단어들은 전부 음식 이름이었다. 날짜를 보니 첫 자취방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군만두, 깐풍기, 피자, 잡채, 김밥과 코다리 조림, 햄버거, 찐 고구마 등등. 페이지 맨 위에 ‘돈 생기면 먹고 싶은 것’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부모님의 사업실패와 IMF 그리고, 갑작스러운 자취생활이 엉킨 실타래처럼 내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빚쟁이들이 찾아올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을 따라 이천으로 갔다. 야반도주나 다름없었다. 무기력한 침잠이 수개월 이어졌다. 밥 먹을 때 말고는 하루 종일 누워 지내다 보니 패션 디자이너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66 사이즈의 몸이 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선배디자이너들은 패션 디자이너가 55 사이즈를 벗어나는 건 근무태만이라고 했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영원히 업계로 복귀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직장 생활 2년 동안 저축해 놓은 칠백만 원을 엄마에게 드리고 삼십만 원과 24인치 캐리어를 들고 첫 독립을 시작했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부탁해 볼까 싶어 연락한 실장님, 팀장님 모두 실직자 신세였다. 주머니 사정이 나쁠 때 사람들은 의류 소비부터 줄인다. 크고 작은 패션 회사들이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떤 회사에서는 급여가 밀리고, 어떤 회사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사장이 잠적을 했다. 한 번은 점심 먹으러 외출한 사이 부도가 나 그대로 집에 간 적도 있다. 죽으나 사나 내 살길이 내 손에 달렸으니 닥치는 대로 돈벌이를 해야 했다. 당시엔 눈물겨운 신파였지만 생각해 보니 나름의 행복은 늘 있었다.




신촌 기차역 부근 남성복 샵에서 7개월 동안 아르바이를 했다. 옷에 관련된 일이라 그나마 수월했다. 남성복은 경험이 없었지만 평소 중성적인 스타일을 좋아했기에 손님들에게 맞는 스타일을 권하고 코디해 주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젊은 청년들에게 전문 용어 섞어가며 몇 마디만 던져도 그들은 의심 없이 구매를 했다. 외모와 분위기에 맞게 풀착장으로 코디를 해주면 바지 하나 사러 왔어도 입혀준 옷 전부를 사갔다. 사장대신 시장 조사를 하고 바잉까지 하면서 가게 매출은 날이 갈수록 상승했다. 맞은편 샵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언제든 본업으로 가기를 갈망했다.


신촌에는 극장이 많았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힘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연속 세 편을 상영하는 심야 영화를 주로 즐겼다. 그곳에서 영화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음흉한 심야 커플의 얄딱꾸리 한 애정행각을 보며 손가락질하며 키득 거리는 재미도 솔솔 했다. 연대 앞 좁다란 골목의 '오늘의 책'에서 운영하는 '지하 틈새'에서 미개봉 영화들을 보는 기쁨도 컸다. 가게 손님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었다. 순진한 몇몇 친구들이 만남을 요청하기도 하고 커피를 사 오기도 했는데 그중 소년 테가 덜 벗겨진 쪼매난 녀석은 편지를 들고 매일 찾아왔다. 갓 스무 살이 지난 6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영화 보러 갈 건데 따라가겠냐고 물으니 좋단다. 소년과 그의 친구를 데리고 오책으로 갔다. 고대하던 '기타노 다케시'감독 영화전을 하고 있다. '키즈 리턴'과 '모두 하고 있습니까?'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가 연속 상영한다. 좋다고 따라온 녀석들은 몸을 베베 꼬며 지루해하더니 한편을 미처 못 보고 나가버렸다. 6살의 장벽보다 취향의 벽이 컸다. 그즈음 전 직장 동료가 마산에서 올라와 의기투합해 오책과 가까운 곳에 옥탑방을 구해 함께 지내기도 했다. 하루는 나의 지인이 , 하루는 동료의 지인이 찾아와 밥과 술을 사주었다. 신촌의 옷 가게에서 7개월을 보내고 궁여지책으로 스키복 회사에 입사를 했다. 알고 보니 회사는 한 때 주먹이었던 조직원들이 개과천선 해보겠노라 만든 회사였고 사장은 논현동 일대를 주름잡던 형님이었다. 두 달 후, 온갖 핑계 끝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시사 영어사에서 영어 회화 카세트테이프 판매를 할 때가 가장 곤욕이었다. 영어 까막눈인 애가 영어 회화 카세트를 팔고 있으니 사려는 사람도 웃고 나도 웃고, 그러다 친구가 되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간 사람도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던 손님은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가였다. 영화의 촬영기법과 감독에게 관심이 많았던 터라 물건 팔았음 그만인 것을 꼬치꼬치 많은 질문을 던졌다. 며칠 후 그분과 종로 반줄에서 만나 인터뷰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었다. 훗날, 그분의 소개로 사진을 전공한 친구까지 끌어들여 짧은 프로젝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울다 잠드는 밤이 아닌 밤보다 많았지만 어느 공간, 어느 환경에서도 나답게 살아졌으니 그 또한 내 복이다.

좋아하는 일이 지난한 세월을 밀어내고 결국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취방에 가구는 없었지만 낡은 티브이가 있었다. 순풍 산부인과는 그 시절 나의 자양강장제였다. 온 하루를 아무리 심각하게 보냈어도 웃고 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시청 금지를 결심한 까닭은 먹는 장면이 많아서였다. 배 부른 상태였어도 혀 밑으로 침이 고였다. 거의 매회 깐풍기와 맛있는 음식을 보채는 식탐 많은 영규가 꼴 보기 싫었다. 철저히 채식주의였음에도 다시 좋은 직장에 취직해 첫 월급을 타면 깐풍기에 군만두부터 사 먹으리라 마음먹었다.


3년간 힘들게 버틴 것 같다. 떠돌이 신세 끝에 제대로 된 회사에 입사를 했다. 다행히 연봉 상승이 비교적 빠른 직종이라 더 나은 환경의 집으로 이사도 했다. 첫 월급 타는 날, 퇴근길에 깐풍기 대신 친구들과 잠실 'COCOS'에 갔다. 딱 굶어 죽겠다 싶을 만큼 힘들 때마다 나타나 나를 먹여 살린 친구들에게 한 턱 크게 쏘고 싶었다.




노트'나의 서랍' 속에는 먹고 싶은 음식 말고도 황당한 단편 소설이 씌어있었다. 첫 자취방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작은 농협은행이 보였다. 그 은행이 소설의 배경이다. 내용은 뻔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은행을 털고 섬으로 도망가는 내용이다. 놀기 좋고 멋 내기 좋을 20대, 나에게 그 시절은 참 모질다. 일기를 읽다 눈물, 콧물 훔치며 그 시절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없이 사는 애 치고 신수가 멀쩡하니 반짝반짝하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멋은 잃지 않아야 진정한 패션디자이너임을 실천했다.


그 시절은 두고두고 나에게는 암묵적인 자학의 시간이었다. 한때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막살았던 나를 떠올리면 뒷목이 서늘해질 정도로 내가 미웠었다. 다시 꺼내어 읽고, 쓰고, 들여다보며 그동안 닫아 두었던 인생의 한 장면 속의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다정한 말을 해주고 싶어 졌다.

‘용하다, 용해. 용케 잘 버텼다’


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이야기들이 엮여 비로소 ‘나’라는 사람하나가 되었다. 패치워크 이불처럼 말이다. 작은 조각보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음식 이름들이 어쩌면 나를 살린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다만 음식 이름이라 그렇지만, 그 사소한 바람이 나를 밀어 더 나은 삶으로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딸이 며칠 곡끼를 끓은 채 앓아누워있다. 소파에 축 늘어져 TV를 보고 있던 딸이 묻는다.

"엄마, 아귀찜이 모야?"

"왜?"

"영규가 지금 먹고 있는데 궁금해서"

"생선인데 콩나물 넣고 달짝지근 매콤하게 조림한 거야, 엄마는 싫어해서 너네 이모랑 할머니가 엄마 몰래 먹으러 다녔지"

"나 저거 먹어 볼래"

"지금?"

"응"


영규의 식탐이 사람을 두 번 살린다.


Everyone Adores You ... Matt Maitese

Even The Night Better ... Air Supply

No Suprise ... Radio Head

A Groovy Kind A Love … Phil Collins

Eternal Flame … The Ba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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