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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by 레인송


30대 초반, 한동안 친구 정윤이네 반 지하 방에서 자취를 했다. 천호동의 주택가는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여간 해서는 외부소음 차단이 거의 불가능했다. 아침이면 여기저기서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들로 늘 신경질적인 기상을 해야만 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에게 최악의 환경이었다. 가장 괴로운 소음은 앞집 아저씨의 밤새 묵은 가래 내뱉는 소리였다. “크웩, 캭! 컥컥, 크웩!”

뿐만 아니라 도마를 두드리는 칼날의 리드미컬한 소리와 비닐에 담긴 물건을 꺼낼 때 바시락 거리는 미세한 소리까지 내 귀를 자극했다.


어릴 때부터 오감이 예민했다. 민감한 청각뿐 아니라 후각도 예민해서 거슬리는 냄새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미 8살부터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동물의 냄새가 나는 음식은 전부 차단했다. 우유와 달걀마저도. 내 키가 165cm까지 자란 데 대해 엄마는 기적이라 할 만큼 편식이 심했다. 감촉을 기억하는 재주도 남달라 회사 다닐 때는 촉감만으로도 섬유의 혼용률을 맞추고는 했다. 거기다가 2.0의 시력으로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일이 취미이자 습관이 되어 보이는 것 전부에 생각을 덧입힌다. 혀의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삶은 달걀을 우연히 소금이 아닌 미원에 찍어 먹은 후 미원의 맛이 몸서리치게 싫어졌다. 엄마가 음식에 소량의 감미료만 넣어도 난리를 쳤다. 그때마다 엄마는 “혀가 귀신이네, 귀신이야” 하시며 흘겨보셨다. 나는 집에서 피곤한 스타일로 불렸다. 엄마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본인인 나 역시 남들보다 피로도가 높았다. 밤에는 유독 온몸의 감각이 동시에 들고 일어선다. 그래서 여행 말미에는 피곤에 찌들어 비타민과 정신력으로 겨우 버틴다. 낯선 냄새에도 예민해 여행길엔 늘 나의 냄새가 밴 얇은 이불과 베갯잇을 챙겨 다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민한 자신에게 불만이 컸다. 지금은 다르다. 예민함은 남들이 지나치는 작은 것에도 반응하는 능력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촉이 많다는 의미다. 촉이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보다 더 많이 보고 들을 수가 있다. 섬세한 감각은 축복이다. 촉수가 많은 사람은 감성 또한 풍부하다. 좋고 싫음의 경계선이 분명한 것도 마음에 든다. 일관적일 수 있다. 감각이 일관적이다 보니 우리 집, 모든 물건들의 컬러나 스타일은 매우 조화롭다. 10년 전에 산 물건과 최근에 산 물건이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긍정적인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곤한 삶은 예민한 자들의 숙명이다. 그냥 넘어 가지지 않는다. 직장 생활에서는 큰 장점으로 발휘되지만 생활 면면은 구태여 힘 뺄 일이 많다. 무엇보다 육아에 있어서는 내 살과 피를 좀먹는 빌런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싸우느라 남들보다 이른 40대 후반에 퇴행성관절염이 오고야 말았다.


이미 어릴 때부터 밤잠을 놓치고 새벽까지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많다. 때로는 시계의 일률적인 소리 때문에, 어떤 때는 창에 비추는 묘연한 그림자 때문에, 또 어느 때에는 전 날 혹은 오늘 본 영화 때문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우주를 그리고는 했다. 이미 8살, 9살 무렵부터 치른 환상과 생각이 혼재된 상상의 밤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기도 행복하게도 한다. 어지간해서는 한두 시간 안에 잠드는 법이 없다. 그나마 소음과 빛을 차단하면 그래도 조금 낫다. 정윤이네 집에 있는 동안은 업무강도가 셌던 회사에 다닐 때라 피곤을 무기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때를 놓치고 뒤척이다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서야 겨우 잠들면 두세 시간 눈 붙이고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나에게 잠을 부르는 최고의 묘약은 빗소리다. 평생 장마를 기다렸다. 나만이 장마철에 생기가 돌았다. 비의 축축함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친구들과 장마철에는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다. 나는 비가 오는 날 유독 친구가 만나고 싶었고, 친구들은 비가 오면 외출하려 들지 않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계절제 치르듯 우산을 살핀다. 남들은 비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내게 우산은 패션이었다. 친구들은 돈을 주고 우산을 사는 행위 자체를 납득하지 않았다. 월급날 멋들어진 우산을 사고 친구들에게 어찌나 욕을 먹었던지. 어린 시절부터 물리지 않고 비를 사랑했다. 비만 오면 더 밖으로 쏘다녔고,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빗방울 떨어지는 모양에 넋을 놓았다. 무엇보다 비 오는 날엔 잠이 잘 들었을 뿐 아니라 푹 잘 수 있었다. 소음을 잠식하는 빗소리의 밤은 천국이다.



외조부모님과 살던 집은 오래된 한옥 집이었다. 비가 오면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일순간 모든 감각이 빗소리에 집중되는 기분도 좋았고, 마당에 떨어지는 빗물과 흙이 만나 빚어내는 냄새도 좋았다. 할머니는 아무리 날이 더워도 비가 이삼일 지속되는 날에는 꿉꿉해 못 살겠다 하시며 방에 군불을 때셨다.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눈꺼풀에 땀이 맺혔다. 쪽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굵은 물줄기를 쳐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땅에 부딪히며 흩어지는 물의 모양을 쫒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파트에 살기 전, 모든 집에서의 빗소리는 웅장했다. 소리뿐 아니라 빗물과 대지가 조향 한 향기가 진동하면 쾌쾌한 낡은 집 냄새도 사라졌다.

비오는 파리가 좋아서 우기에 떠났다. 두번이나


10살 무렵, 엄마는 인천에서 장사를 하셨다. 강동구에서 인천으로 출근하려면 새벽 동이 뜨기 전에 집을 나서야 했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오셨다. 일주일에 엄마 얼굴을 보는 날은 주말을 제외하면 고작 이삼일 정도였다. 엄마를 기다리느라 밤잠을 이겨낸 것일 수도 있다. 주말이면 엄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엄마와 나들이를 간다거나 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앞산 약수터가 전부였다.


마을 어귀, 짙은 초록의 미나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계절, 엄마가 한낮에 집에 오셨다. 진귀한 날이었다. 우리 자매는 그 사실 하나로도 매우 들떴다.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시장에 가셨다. 난생처음 우비와 장화가 생겼다. 체크무늬의 우비와 노란색 장화였다. 엄마와 우리 자매는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갔다. 여름비가 막 시작하려던 그날, 엄마와 함께 걷던 미나리 밭 신작로 위에서 어린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쁜 아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효자동의 어느 카페에서 새아빠를 기다렸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들이마신 커피 향이 숨구멍을 타고 뇌에 닿자마자 아찔할 만큼 현기증이 났다. 엄마는 코코아를 주문해 주셨다. 서울 시내 다방에서 코코아라니 이런 호사가 없었다. 아주머니가 고운 쟁반에 놓인 찻잔을 내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던 그 순간 나는 귀족이나 된 듯 환상에 빠졌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스러운 다방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이미 드라마 여주인공이었다. 아빠가 오자 우리는 자리를 옮겨 경양식 집으로 갔다. 돈가스를 주문하자 빵과 함께 노란 수프가 먼저 나왔다. 빵도 귀한 시절이었지만 스프라는 요리는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접시를 들고 핥았다. 엄마는 이후 내가 아프거나, 혹은 이모가 내 머리를 잘못 잘라 펑펑 울었던 날에도 노란 수프를 끓여주셨다.


엄마가 낮에 집에 왔을 때부터 그날은 특별했다. 생애 첫 우비와 장화를 신고 빗속을 걷던 순간은 꿈만 같았다. 네온 불빛에 더 반짝였던 빗속의 도시가 두고두고 생각났다. 왜 그날은 다른 때와 예외였을까?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가족들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처럼 그들에게도 특별했던 순간으로 남아있을까?




엄마의 부재로 우리 자매는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성향과 성격이 다른 탓에 그만큼 다툼도 많았다. 어지간하면 언니와 나는 통하지 못하고 엇나갔다. 잘 놀다가도 늘 싸움으로 치닫기 때문에 한, 두 달 말도 안 하고 못 본 척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날은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밤이었다. 굵은 빗소리가 창을 넘어 아파트 4층의 집안까지 타고 들어왔다. 빗소리를 듣자마자 며칠 전 드라마에서 본 샤워장면이 떠올랐다. 샤워는 우리 자매의 로망이었다. 아파트였지만 통에 물을 받아 세숫대야에 씻던 시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달랐다. 가늘고 부드러운 물줄기를 맞으며 우아하게 씻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 자매는 샤워를 꿈꿔왔다. 생전 마음 맞는 일이 없던 자매는 문 밖의 저 비야 말로 샤워기에서 내뿜는 바로 그 물줄기와 흡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통했다. 우리는 지체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어제 사다 주신 리본 달린 블라우스를 굳이 꺼내 입고서 말이다. 비는 시야를 가릴 만큼 굵고 일정한 간격으로 내렸다. 언니와 나는 온몸으로 비를 맞이했다. 아파트 단지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외쳤다.

“샤워다!”

“샤워다, 샤워!”

작고 단출한 기억이지만 왜일까 싶을 만큼 그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첫 샤워의 경험이기도 했고 여전히 데면데면한 관계인 언니와의 좋았던 유일한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빗소리는 불안을 침식한다. 불면의 밤은 기분 좋은 상상보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걱정을 줄 세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잘 사용하면 창의적이기도 하지만, 벌어지지도 않은 불행의 날들을 미리 예습하기도 한다. 정교한 상상은 일종의 창작작업과도 같아서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동이 텄다. 비가 오는 밤엔 그 피곤한 일과가 일시 중단 된다. 빗소리는 모든 어둡고 축축한 생각들을 깎아버린다. 물결이 바위를 서서히 침식하듯 말이다. 이쯤 되니 비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온도와 습도 상관없이 비가 오면 창문을 크게 열어젖힌다. 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큰 불행은 빗소리가 소거되는 것이다. 간밤에 비가 온 줄도 모르고 지나친 아침에는 억울해 땅을 칠 노릇이다. 그나마 지금 사는 집은 베란다 배수관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비와 짝꿍인 우산에 집착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산에서 멋을 찾는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도 안 되는 사람이 되고는 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유독 우산이 많았다. 우산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에 거의 매해 우산 두세 개정도는 새로 장만해야만 했다. 엄마의 일터인 남대문에는 우산 도매점이 많았다. 엄마는 장마철마다 예쁜 우산을 사 오셨다. 가장 마음에 드는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기 위해 언니보다 먼저 일어나 집을 나섰다. 나는 검정 우산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냥 검정이 아니고 검정 바탕에 그림이 있거나 패턴이 있어야 한다. 그 시절, 우산 브랜드 중에는 ‘협립 우산’이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했다. 고2 여름, 나에게는 평생 가장 아름다웠던 우산이 있었다. 협립의 신상품이었던 우산은 검정 바탕에 화려하고 이국적인 큰 꽃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화가 ‘프리다 칼로’를 닮은 우산이었다. 꽃문양은 우아했고 유려한 곡선의 나무 손잡이는 젠틀했다. 여름 내내 그 우산을 들고 다녔다. 아무도 내 우산에 관심이 없었을지라도 아랑곳없이 나는 우산 하나 때문에 멋쟁이의 기분이 났다. 지금 들고 다니는 우산 또한 아무 우산이 아니다. 검은색 바탕에 아이보리색 도트 무늬가 있는 가볍고 날렵한 우산이다. 손잡이는 우드 재질이고 우산 커버에 끈이 있어 어깨에 멜 수도 있다. 우산 전문 브랜드에서 샀다. 장화도 아무거나 신지 않는다. 영국의 장화 전문 브랜드 제품이고 벌써 14년째 사용하고 있다. 딸의 장화도 디자인에 신중을 기해 사주었다. 다행히도 딸은 어릴 때부터 장화 신는 것을 좋아했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으면 우산을 안 써서 좋고 물웅덩이에 실컷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봄 날씨는 사계절의 파편들을 모아 놓은 듯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겨울이 끝나기는 할까 싶더니 갑자기 해가 쨍쨍한 날이 수일 지속되어 겨울옷들을 집어넣으면 다시 눈보라가 쳤다. 어제는 눈 쌓인 산이 지척인데 오늘은 기온이 영상 20도를 넘는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벚꽃이 사이좋게 앞 다퉈 피더니 절정의 벚꽃 위로 또다시 눈이 쌓인다. 느닷없는 날씨의 변심 덕분에 강풍을 동반한 봄비도 여러 번 내려주었다. 더욱이 반가운 소식은 장마가 예년보다 빨리 온다고 한다. 이른 장마 소식에 지인들 모두 같은 한숨을 내쉰다. 또 나만 들뜨고 행복한가 보다.

나에겐 휴식의 시간이고 사색의 공간이 되는 비의 계절이 오면 딸과 함께 낯선 곳으로 나들이를 가야겠다. 좋아하는 우산을 사이좋게 나눠 쓰고 낯선 길을 걷는 설렘이 내 딸의 기억에도 오래오래 머물길 바라며.


2025.04



Perfect Day ... Lou Reed

Rain and Tears … Aphrodite's Child

Easy … Commodores

Rain … Uriah 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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