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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중독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by 레인송

12살 봄, 늘 성적이 나빴지만 그 해 중간고사는 특히 더 엉망이었다.

엄마는 특단의 조치로 TV를 장롱 꼭대기로 유배를 보냈다. 나를 대신해 죄 없는 TV가 벌을 받았다. 몇 주 후 TV는 유배생활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TV를 켜니 마침 주말마다 기다리던 영화 프로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제목이 '신비의 여인'이다. 익숙한 얼굴인 슈퍼맨의 히어로'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이다. 그리고 아주 예쁜 여자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예쁜 배우는 '제인 세이모어'였다.


몇 년 후, 비디오 대여점에서 발견한 영화의 제목은'사랑의 은하수'였고 다시 몇 년 후, '정 은임의 FM 영화음악'에서 소개한 이영화의 원제는'Somewhere in Time'이었다. OST 때문에 영화에 더 강하게 끌렸는데 음악 감독이 무려 '존 베리'다. 007 시리즈 다수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 '늑대와 춤을' '미드나잇 카우보이'등 그래미와 아카데미를 석권한 최고의 작곡가답게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OST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덕분에 영화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극작가 지망생 리처드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들른 오래된 호텔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리고 그림 속의 그녀가 얼마 전 스치듯 만난 노파임을 깨닫는다. 그녀(노파)가 리처드에게 던진 한마디 “내게 돌아와“. 마치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처럼 리처드는 그녀에게 집착하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성공한 과학자를 찾아간다. 리처드는 결국 시간여행에 성공하고 과거로 가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운명처럼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여느 영화처럼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나타나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이별은 리처드의 어이없는 실수로 비롯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절대 가져가서는 안 될 현세의 물건을 실수로 꺼내는 순간 리처드는 현실로 되돌아오고 만 것이다. 리처드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 순간 공포에 휩싸인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다시 돼돌아가려 안간힘을 쓰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밤낮없이 식음도 끓은 체 시간여행을 하기 위한 자기 최면에 빠져있다 결국 숨을 거둔다.






영화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환상과 상상, 현실의 경계선을 지워버리는 경험을 그때 처음 한 것 같다. 리처드처럼 말이다. 리처드가 그랬듯, 나 역시 상상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내 바람과 이상향을 실존한다고 느끼려 애썼고 상상하는 그 시간이 주는 기쁨에 몰입했다. 상상은 늘 구체적이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 나의 밤을 삼켰다. 점점 잠이 줄기 시작했다. 확고한 자기 암시는 환상을 낳고 만다. 어둠 속에서의 무한한 상상으로 잠을 놓치기 시작한 때는 훨씬 이전부터였지만, 상상으로 설계한 나만의 세상을 내 삶의 또 다른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인 계기는 그 영화의 영향임이 확실하다.

현실에서의 감촉과 상상 안에서의 감촉이 나에게 같은 값이 되어버린 것이다.


잠들기 전 상상 없이 보낸 밤이 아마도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던 몇 번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새벽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고 어느 날은 전날밤의 상상 다음 이야기가 급해 밤을 보채기도 했다. 때때로, 몇 해 전 밤의 상상이 실제 일어난 과거의 일처럼 혼동이 되기도 했다.


영화의 잔상이 남들보다 오래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 보니 영화 한 편 제대로 걸렸다가는 몇 날 며칠 밤잠을 반납해야만 한다. 영화 속 수많은 캐릭터들이 내 영혼을 드나들었다. ‘Somewhere in Time'의 리처드가 내게 현존하는 삶, 이면의 또 다른 삶 하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듯이, 수없이 많은 영상 속 가상의 세계는 눈만 감으면 드나들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제공해 주었다. 상상 속에서의 삶이 폭주할 때면 현실은 멈춘 듯 제자리였다. 30대가 넘어서까지 철이 안 든 이유이기도 한 반면 버티고 살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1995년 여름, 그의 TV 미니시리즈 작품 '트윈 픽스' 전부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져왔다.

이틀 밤을 꼬박 세가며 시리즈 전편을 몰아본 후 다시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가 그의 다른 작품 '블루벨벳'과 '이레이저 헤드'를 가져와 다시 영화 보기에 빠져들었다. '스필버그'의 판타지가 파스텔 톤이라면 '데이비드 린치'식 판타지는 오색창연하게 시작하고는 곧 뒤죽박죽 섞여 결국 심연의 색을 띤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의 인연은 10살, 11살 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에서 장사를 시작한 부모님은 우리가 잠든 심야 시간에 오시거나 그 마저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면 못 오시는 날도 많았다. 그날도 부모님이 안 계시던 주말 저녁이었다. 즐겨보던 토요명화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이불을 펴고 언니와 나란히 앉아 영화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엘리펀트 맨’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흑백의 영상은 축축하고 차갑고 무거웠다. 보는 내내 긴장이 되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공포물도 아닌데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니는 그새 잠이 들었다. 어디서든 등만 갖다 대면 잠이 드는 언니가 어릴 때부터 부러웠다.


어둡고 음침한 밤, 광활한 들판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공포와는 별개로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인공에게 닥친 잔혹한 외로움이 내 가슴 뜨거운 곳에 파고들었다. 세상에 철저히 혼자인 운명이라니. 오로지 나만이 그의 고독한 운명에 탄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 지점이 어린 나에게 큰 공포였다. 더 큰 공포는 음악이었다. 무서운 형벌인 고독을 운명으로 타고난 기형의 인간 ‘존 매릭’의 삶 그 자체가 음악으로 형상화된 듯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는 선율에 전율과 공포가 동시에 흘렀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기구한 그의 운명과 음악이 머릿속에서 울렁거리며 내 속을 힘들게 했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저주였다. 그 영화는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영화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된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영화 잡지에 소개된 바로는 영화 주인공 ‘존 매릭’이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를 알게 되었다.


영화‘트윈픽스’는 한 달 여동안 내 꿈속을 지배했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밤을 무려 한 달 이상 보내게 되었다. 하얀 늑대와 화려한 줄무늬의 옷을 입은 난쟁이, 붉은 동굴에서의 끝없는 낙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추적이 밤마다 계속되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다른 작품은 몰라도 ‘트윈픽스’와 ‘블루벨벳’‘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미스터리 하고 음산한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숭배할 때,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이제 막 첫 번째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난 후였다. 지금 그의 작품을 본다면 그렇게까지 빠져들지 못할 것 같다.




가끔 미련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영화와 음악에 그렇게까지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현실주의자가 됐을까?

상상 없는 밤을 보냈다면 불면증이 없었을까?

상상 속 꾸며낸 이야기를 그저 상상으로 남겼더라면 나는 더 현명한 삶을 살았을까?

시네필이 된답시고 쏟아부은 열정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사회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뒀을까?

그렇다면 영화와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


Space Oddity … David Bowie

Ticket To The Moon … Electric Light Orchestra

Sing … Bl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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