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9살 무렵, 큰 이모 댁에서 셋방살이를 할 때였다. 아직 귀가 전인 사촌 언니의 방에서 뒹굴 거리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에 온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REO Speedwagon의 'In your Letter'라는 곡이었다. 가수와 제목을 듣기 위해 라디오 스피커에 귀를 바짝 붙이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때부터 눈 뜨면 라디오를 켰고 자기 전까지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4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음악과 나는 단짝이 되었다.
아이들 모두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릴 때 나는 팝송을 흥얼거렸다.
국민학교 5학년 운동회 때, 체육부장이었던 나는 반 대결 댄스 대회 곡으로 팝송을 선택했다. 전영록의 ‘종이학’과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양분화된 가운데 우리 반만 유일하게 팝송에 맞춰 춤을 추었다. 우리 반은 The Nolans의 ‘Sexy Music'으로 흥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그날 이후 학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exy, sexy'를 중얼거리는 바람에 담임선생님께서는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영어를 전공하신 젊은 선생님은 오히려 획기적인 선곡이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동네 레코드가게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성지였다. 돈만 생기면 달려갔다. 아니다, 돈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엄마의 호주머니와 지갑을 호시탐탐 노렸다. 물론, 나는 지금 엄마의 지갑에 그 몇십 배를 넣어드린다.
내 품에 들어온 첫 앨범은 1981년 봄, 11살 꼬마의 귀를 홀린 Men at Work의 앨범 ‘Business as Usual'이다. 나만 듣기 아까울 정도로 그 앨범을 사랑했다. 같은 반 반장 녀석의 생일 파티 초대에 어떤 선물을 가져갈까 고심한 끝에 그 앨범을 선물하기로 했다. 선물 받은 친구도 그 자리의 다른 친구들도 잘못 배달된 택배 물건 보듯 시큰둥했었다. 중학생이 되어 독서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반장은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 친구 역시 팝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독서실 쉼터에서 한참 동안 팝을 찬양했다. Men at Work의 ‘Down Under’의 도입부는 너무도 매혹적이라 듣는 순간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친구의 꿈의 시작이 내가 선물한 그 앨범 때문이리라 확신하며 혼자 으쓱했다.
어릴 때는 그저 좋으면 물리도록 들었다. 지금은 노래 속에 녹아있는 시간을 더해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시절이 묻어난 노래는 들어도, 들어도 어째 물리는 법이 없다. 영화 ‘Back to the future'의 주인공 마티에게 타임머신 ’Delorean'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 시절 노래들이 곧 타임머신이나 다름이 없다.
추억의 노래는 그 시절을 재생시킨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눈 내리는 밤, 텅 빈 놀이터를 서성이며 휴대용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신디 로퍼의 ‘All through the Night’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미로운 기분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첫눈에 반한 소년을 만난 듯 머리 위에서 빛나는 은하수가 차르르 떨어지며 온몸을 감쌌다. 그때의 기분은 이내 잊었지만 우연히 다시 그 곡을 들었을 때, 수 십 년 전 놀이터에서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이 곡을 들을 때면 내 머리 위로 은하수가 흩뿌려지는 기분에 휩싸인다. 한 겨울밤 놀이터의 공기와 눈의 촉감이 되살아나고, 노래에 취한 황홀경에 추운 것도 잊은 채 하염없이 놀이터를 맴돌던 소녀가 내 앞에 있다.
‘Chicago'의 노래에도 작은 추억이 들어있다. 부모님의 귀가도 늦고 언니도 없던 4학년 어느 가을밤, 친구의 전학소식에 헛헛한 마음을 라면으로 달랬다. Chicago의 노래 'If You Leave Me Now'를 들으며 홀로 먹던 뜨거운 라면과 곧 꺼질듯 희미한 조도의 형광등이 곧 내마음이었다. 시카고의 곡을 들을때 마다 흐려진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덕분에 8개월의 짧은 우정이었음에도 그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잊지 못한다.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영화 내용이 주제음악을 들으면 불현듯 생각나듯 말이다.
음악은 내 삶의 배경 음악이 되어준 셈이다.
신디 로퍼의 의 곡 ‘Time after Time’처럼 나이 들면서 오히려 더 끌리는 노래가 있다. 캐나다 가수 코리 하트의 ‘Never Surrender’와 토토의 ‘Lea’, 커팅 크루의 ‘I've been in love before’, 필 콜린즈의 ‘Do you remember’ 'Groovy Kind Of Love',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Don't Answer Me’ 'Time' 그리고 10cc의 'I'm Not In Love'등 셀 수 없이 많은 곡이 그렇다. 듣다 보면 이 노래들은 한민족처럼 닮았다. 추억을 소환시키는 신통한 묘약을 만드는 민족. 나는 수시로 그 묘약을 삼키고 그리웠던 시간을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영혼 깊은 곳에 서서히 사라진 소멸 직전의 그리움들을.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영화 ‘Ghost Story’에는 애인을 두고 떠날 수 없어 유령이 된 주인공 C가 있다.
어느 날 앞집 창문을 통해 자신과 같은 모습의 유령과 마주한다. 그가 C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누구를요?”
“기억이 안 나요.”
앞집 유령은 어쩌면 영겁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왜 기다리는지 조차 잊을 만큼의 긴 시간.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앞집 유령이 다시 C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안 오려나 봐요”
깨닫는 순간 그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갈 수 없어 유령이 되었지만 그녀가 집을 떠나자 하염없이 애인을 기다리며 자신의 흔적에 집착하다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진다.
주인을 잃은 기다림은 결국 연기처럼 증발하고 만다.
한때, 나의 지난 시간들 역시 버려진 유령처럼 외로이 떠돌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휘몰아치던 20대, 30대를 거치는 동안 나 자신의 이야기는 긴 침묵의 시간 속에 갇혀버렸다. 부정하고 싶은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매장해 버렸다. 마치 없었던 존재처럼 잊었지만 버젓이 살아있던 지난날의 나를 어쩌면 음악이 되살아나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배경 음악이 있는 한 영화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벗이자, 안식처였으며, 낙원이고 구원자였다. 힘든 시간을 지날 때면 더 큰 힘을 발휘해 나를 지켜냈다. IMF가 시작된 1997년 겨울, 왕 가위 감독의 영화 ‘Happy Together'의 OST는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20대 중반, 부모님의 사업 부도와 IMF라는 국가 위기는 사회 초년생에게 고달픈 삶을 안겨주었다. 빈털터리로 시작한 자취 생활과 맞물린 불안한 사회는 내 영혼을 사정없이 비틀고 흔들어댔다. 다니는 회사마다 몇 개월 못 버티고 부도가 났고, 월급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재취업마저도 힘들었다. 그저 닥치는 대로 벌어가며 하루하루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만했다. 음악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의 영혼을 실어 날랐다.
OST의 첫 번째 트랙인 Caetano veloso의 ‘Waterfall cucurrucucu Paloma'를 들을 때면 나는 이구아수 폭포 앞에 서서 머리가 젖은 채 오지 않는 보영(장국영)을 기다렸다. 그뿐인가. 위대한 예술가 ’Astor Piazzolla‘가 만든 천상의 탱고를 숨 쉬듯 원 없이 들이마셨다. 오늘과 같을 내일의 좌절도 음악 속에서 천천히 익숙해졌다. 덕분에 잠시나마 행복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CD player와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를 위로하는 몇 개의 CD가 전부였다.
음악은 여전히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이자 재산이다.
어쩌면, 죽기 직전 나의 유일한 재산이 가족과 함께 음악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일부가 담긴 음악.
Music ... John Miles
Listen to The Music ... The Doobie Brothers
We all for in Love Sometimes … Elton John
One Lonely Night … REO Speedw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