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로 인해 더욱 밝아진 빛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아직도 품고 사는 나.

by 발돋움

주말오후를 오랜만에 혼자 보냈다.


신랑은 열정 넘치는 축구인으로 일요일의 모든 낮시간을 잔디 위에서 불살랐고,

둘째는 일주일에 한 번 게임하는 날이라 새벽부터 새로 산 헤드셋의 감을 만끽하며 현란한 손동작을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서 선보이고 있었으며,

첫째는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게임 여파로 본인이 가장 포근해하는 내 침대, 내 베개를 끌어안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요즘 새롭게 일상의 루틴이 된 근력요가를 한 시간 동안 정주행하며 열을 올린 뒤, 땀을 식힐 겸 TV를 켰다.

이리저리 돌리던 채널버튼은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고정됐다. 화면엔 11세 사회적 소통장애를 가진 아이의 일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버스 내 어르신에게 막말을 하고, 급식 배식에도 순서를 지키지 않고 끼어들며 아이 들고 부딪히고, 느닷없이 엄마를 밀치고 화를 내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우... 어쩜 좋냐..."

같은 부모 입장에서 안타까움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 아이가 그렇다면 어땠을까?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지며, 아이교육이 막막했을 부모가 더욱 가슴 아팠다. 지쳐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려 버릴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머니와 아이의 실랑이가 이어지자 아버지가 나타났다.


친척아이가 방문하여 아이의 물건을 만지려고 하자 만지지 못하게 막아서는 아이를 보며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내가 이상해?"

"안 키우고 말지."

"그만하자 너 그렇게 살아 아빤 너 포기할 거야"

아이의 등을 후려치고, 주위 물건을 던질 듯 들어 올리고, 친척어른이 막아서는 상황에서도 고성과 위협이 이어졌다.


나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손으로 얼굴을 막아도, 눈물이, 콧물이, 꺼이꺼이 울음소리가 손가락을 비집고 흘러나와 조용한 거실을 가득 매웠다. 그때 나는 어느새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의 위협에 장롱 속으로 숨어버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장롱 어둠 속에서 극도의 공포감에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장롱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11살 아이로.


자신의 환경을 탓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경제적 어려움, 부모님의 불화, 폭력적 환경, 소외, 차별.

어느새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비슷한 상황만 연출돼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폭발하는 눈물샘을 막을 길이 없어진다. 그러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는 것은 그림자와의 전투라고 했던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써 그림자를 표출하지 않고 승화시키는 것.

마치. 창조적이긴커녕 미쳤다고 치부해 버린 부모로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 고흐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그 그림자를 승화시켰듯.


나는 과연 그럴만한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었던가?

나는 그림자를 딛고 더 밝은 빛을 발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눈물이 잦아든 나는 조용히..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고, 볕이 따뜻하게 찾아드는 거실에 혼자 앉아 한참을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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