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아 잘 있지? 보고 싶다.

by 발돋움

에세이집을 읽다 작자가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어디에 돌려야 하나 고민하는 내용이 나왔다.

아마도 그 일은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예비부부들은 다 고민해 봤음직한 대목일 것이다. 안면 있다고 다 들이밀었다간 결혼합니다~란 말 꼬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청첩장은 바코트 없는 고지서 취급을 당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소심하게 몇몇 분들께만 청첩장을 돌렸다간 청첩장도 없이 회사 게시판에 결혼소식만 떡하니 올렸다며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작자는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내가 그 사람 결혼식에 갔거나, 기꺼이 가고 싶다면 청첩장을 준다.'


[너는 내 결혼식에 안 올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가야지!]


에세이를 읽는 중 불현듯 17년 전 결혼 소식을 전하며, 너무 멀고 피곤한데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만류에도 담담하게 웃으며 친구가 했던말이 소환됐다. 착하고, 여리지만 강단 있었던 내 친구 수현이.


수현이를 처음 만난 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입사했던 경기도의 모 대학병원에서였다.

수현이 보다 내가 먼저 병동에 입사해 일을 시작했지만, 우린 둘 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그저 초보 간호사 였다. 링거와 주사를 놓고, 약을 타서 환자에게 투약하고, 환자를 수술실로 보내고 받으며 늘 분주하게 동동거렸지만, 그만큼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다. 같은 병실 다른 환자에게 약을 전달하기도 하고, 혈관주사를 두세 번 놓다 혈관을 터트려 고래고래 고암을 치는 환자를 두고 병실에서 쫓기 듯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금식이 기본인 복부 CT예정 환자에게 많이 드셔야 힘이 난다며 따뜻한 아침밥을 신청해 드리기도 했다.


열심히 사고를 치고, 부지런히 엉망진창이 되어가면서. 실수는 고스란히 실력이 되었고,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선배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여름철 굵은 대나무 발 같은 소나기 질타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이미 자존감은 너덜너덜한 걸래가 되었고, 내가 간호사 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란 악다구니만 남아 그저 버텨내기 위해 영혼을 출근 전 집에 고이 모셔두고 껍데기만 터덜터덜 미리 그려둔 GPS대로 병원으로 향하곤 했다.

출근 후 퇴근까지 맑음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수현이와 나는 어쩌다 같이 근무하는 날이 되면 퇴근길 인근 공원에 앉아 누가 누가 오래 우나 시합이라도 하듯 다른 사람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 콧물을 쏟아냈고, 그러다 눈물이 나지 않는 날은 오늘 나를 타깃으로 삼아 그동안 다른 곳에서 차곡차곡 쌓인 해묵은 스트레스를 탈탈 털어 자신은 깃털처럼 가벼워진 얼굴로 퇴근한 선배 간호사를 안주거리 삼아 단물이 빠지고 뭘 씹었나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되새김질을 해댔다.

그렇게 눈물이든, 험담이든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그래도 서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는 표정이 조금은 가벼워지곤 했는데....


나는 1년 반을 채우지 못하고, 집 근처 병원으로 이직을 했고, 그 친구는 NCLEX-RN(미국간호사 자격)을 준비하다 시험에 합격에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는 소식만 접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들썩일 때 친구는 어떻게 병원에서 견뎌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지금쯤이면 결혼은 했는지. 미국으로 떠난 후 소식이 끊겨 수현이에 대해선 그 무엇도 알 길이 없다. 어쩌다 뉴스 장면에 떠들썩한 외국 사건들이 들려올 때면 가슴 어딘가에서 수현이가 꼼지락거린다.

'너는 괜찮냐? 잘 살고 있냐? 나는 언제 네 결혼식 가보냐?'


브런치는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교민들도 글을 참 많이 올리시던데.

친구도 내가 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뽀얗고 갸름한 얼굴에 주근깨가 양 볼에 귀엽게 올라와 있고, 보통키에 가냘팠지만 늘 뚝심 있고 배려심도 깊어 어른스러웠던 내 친구 수현이.

언제 어디에서든 나는 너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게.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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