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생일인데 미역국 끓여 묵어라."
생일이면 엄마가 전화해서 늘~ 하는 멘트다.
엄마가 애 낳은 날인데 왜 내가 미역국을 먹어야 하나...
40년 넘게 살면서 미역국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지만. 머리는 궁금해하는 체로 손은 벌써 커다란 냄비를 집어든다.
2리터 정도 물을 냄비에 채워 넣고 멸치, 다시마, 말린 양파를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낸다.
그사이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산더미처럼 쌓인 싱크대 설거지거리를 처리한다.
마누라이자 엄마인 나의 생일인데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들은 달라는 선물은 고사하고, 하나 가득 설거지만 안겨 주고 신랑은 회식을, 첫째는 수학여행을, 둘째는 사과로 탕우루를 만들겠다고 주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 방으로 쏙 사라졌다.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끈적한 설탕얼룩을 행주로 문질러 닦고 있는데...
갑자기 열없는 눈물이 핑 돈다. 코끝이 징징거린다. 미간이 일그러진다.
내 생일에 미역국을 내손으로 끓여 먹었던 게 하루이틀일이었던가?
퇴근하고 천근만근 몸으로 집에 오자마자 저녁 밥 하기 전 쌓인 설거지 처리가 어제오늘 일이었나?
그럼에도 오늘은 왠지 가슴 한구석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내 몸에 든 것들이 모두 모래알처럼 빠져나간 듯 허전하고, 공허해서 내가 꼭 속이 텅 빈 공갈빵만 같다.
내 가슴은 텅 빈 속을 기어이 눈물로 채울 작정인 모양이다.
멸치 육수 건더기를 건져내고, 볼에 부어 놓은 후 불린 미역을 참기름과 마늘을 넣고 달달 볶다가도 훌쩍.
육수를 넣고, 멸치액젓으로 간을 보면서도 훌쩍.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두 숟갈 퍼 넣으면서도 또 훌쩍.
이번 미역국은 간을 보지 않아도 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