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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Nov 22. 2023

폐쇄병동 앞에서 뒤돌아서며...

바닥 타일을 내려다보며 발을 일렬로 가지런히 모아 본다. 그러다 앞코를 아예 타일 앞선에 대고 한치도 틀리지 않겠다는 듯 몇 번이나 발을 앞뒤로 번갈아 뛰어가며 열을 맞춰본다. 그러다가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덜 답답할까 했는데 눈앞ㅇ; 깜깜하니 주위 소리는 더 선명해지고, 뒤죽박죽 엉킨 머릿속 생각은 뒤죽박죽인 모양을 오히려 더 또렷이 그려내었다. 한숨을 몰아 쉬며 눈을 떴을 때 엑스레이 실에서 동생이 아버지를 부축해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 

9시 반. 아침 조회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사이 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왜? 무슨 일인데 말해바 얼른.]

잠시 뜸을 들인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정말 웬만하면 누나들한테 얘기 안 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나 어제 한숨도 못 잤어. 아빠가...]

다 들어보지 않아도 아빠 이야기라면 뻔하다. 목구멍이 턱 막히며 숨통이 조여 온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먼저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폐쇄병동에 넣자고 했지!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알아봤는데, 가족 2명은 동의가 있어야 입원이 된다고 해서. 나 이제 하루도 더는 못 버티겠어.]

[알았어. 있어바. 내가 회사 일 좀 정리하고 전화할게]

오늘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급하게 더듬었다. 교육이 3시에 있고... 나머지는 얼추 내일로 미뤄도 될 것 같다.

각 팀에 교육 미실시 협조를 구하고, 급하게 휴가를 낸 후 친정집으로 향했다.

그 사이 아침부터 만취상태인 아빠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을 다녀오며 길바닥을 몇 번이나 굴러 댔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낙엽이며 풀 부스러기를 뒤집어쓰고 거실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 병원 가게]

[병원도 다 필요 없어. 내가 병원을 안 가봤냐?]

[필요 없는지 있는지는 아빠가 판단하는 게 아니야 일어나]


비적거리는 아빠를 태우고 나와 남동생은 급하게 연락해서 달려온 둘째 언니와 함께 인근 도시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치료해 봐야 소용없다. 내가 너희들 이만큼 키워 놨으면 이제 나는 없어도 되지 않냐. 엄마가 아픈 것도 다 내 책임이다. 너희 엄마가 제일 불쌍하다. 병원 가는 내내 아빠는 혼자 계속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고, 삼 남매는 말이 없었다. 

병원은 신경정신과 의사 6명이 진료하며 폐쇄병동과 일반 병동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예약하지 않고 당일접수했지만 진료는 빨리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알콜리즘이 많이 심하셔서요]

[술을 많이 드신다. 하루에 얼마나 드시나요?]

[피쳐 맥주 2병에 소주 3병을 섞어서 하루종일 쉬지 않고 계속 드십니다.]

[아.. 그리고 또 다른 증상은 있으신가요?]

나는 봇물 터진 듯 아빠의 상태에 대해 쏟아 놓기 시작했다.

[알콜리즘, 알콜성 기억력 저하, 치매 증상도 같이 있습니다. 분노조절장애로 손에 잡히는 건 다 때려 부수고, 의처증으로 엄마가 안 보이면 무조건 바람났다고 찾아다니고, 또 우울증이 심해서 자살시도도 많이 하고, 죽겠다는 말은 아예 입에 달고 살고, 망상장애도 있으신지 엉뚱한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증상에 대해 쏟아 놓자 남동생도 거들었다.

[우리 가족만 괴롭히면 그만인데, 이제 옆집사람들한테 까지 찾아가서 민폐를 끼치니까 도저히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동생과 내가 쏟아 내는 이야기에 대답 없이 타이핑 소리만 내던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가 미워 죽네요.]

아빠가 미워 죽는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주위사람들이 우리 가족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가 그러한 평판이 두려워 평생 아빠를 옆에 두고 곪아 터질 때까지 두고 봤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자신만 생각하고 산 사람이었다. 자신이 먹는 술값은 하루 몇십만 원도 아깝지 않지만, 주춤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말로 학습지 사야 한다는 딸에겐 기분 좋게 손에 쥐어주는 적 없이 바닥에 돈을 뿌리며 쓸데없는데 돈을 쓴다는 욕까지 잊지 않고 덛붙였던 사람이었다. 엄마를 죽이겠다고 시칼을 들고 나와 예전 집 마당을 엄마와 나뒹굴었던 날은 삐삐 확인을 위해 공중전화기 앞 길게 줄 선 아이들 사이에서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목소리로 생사를 확인해야 수업시간에 선생님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물건을 때려 부수고 엄마를 때리고, 욕하고.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는 수업시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선생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 사람은 뭐가 좋아 저렇게 웃을까? 나도 저렇게 웃을 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게, 지금 까지 참고 참았는데, 견디고 또 견뎠는데, 아빠를 그래도 사랑해야 하는 걸까? 미워하면 안 되는 걸까? 적어도 의료인이라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가족들의 심중을 먼저 파악해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군요]라는 말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걸까? 아빠 때문에 누구 하나가 죽어나가야, 그 정도는 되어야 아빠를 미워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일까? 


[저희는 지금 아빠를 입원시키는 이 시기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예. 예]

나는 의사에게 최대한 정중히 고르고 고른 말을 했다. 저런 아빠에게서 나온 자식이 다 그렇지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한 나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옷도 최대한 정장스럽게 입었다. 누가 봐도 반듯해 보이고 싶었다. 주차조차 칸밖을 절대 벗어나지 않게 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런 나의 말뜻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했던가 혹은 차분한 나의 말투에서 억눌린 무언가를 느낀 건가. 의사는 힐끔 눈치를 살피더니 대충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입원 사항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동의 입원이 아니면 입원 용납이 안 돼 과한 행동을 할시에는 억제대를 사용할 수 있다. 행동이 과하면 안정제를 줄 수 있는데, 그러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걷다가 넘어질 수 있다 등 이런저런 사항. 

의사에게 설명을 듣고,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입원계 앞으로 갔다. 

[입원은 가족 2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어느 분이 하시겠어요?]

남동생이 먼저 서명을 했고, 나머지 한 명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동그랗게 뜬 원무과 직원의 눈빛이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얼마나 학수고대했던 아빠의 부재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두 발짝 앞 원무과 데스크가 만리는 되는가 싶다. 손가락은 서로 손톱을 비벼 데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적당한지 판단도 서 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있는 나를 보고 둘째 언니가 먼저 나섰다. 

[제가 서명하겠습니다.]


엑스레이실을 나온 아빠를 부축하고 6층 병동으로 오르기 위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입을 앙다물고 나는 이야기했다.

[아빠 병동에 들어가도 울지 마.]

남동생도 언니도 말이 없었다. 병동에 도착하자 안전요원과 간호사가 병동문을 열쇠로 열고 아빠를 먼저 들여보내고 뒤따라 들어가더니 말없이 문을 잠갔다. 철컥.

병동 문 옆 유리창을 통해 비틀비틀 걸으며 병동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정의내리기란 여간 곤혼스런운일이 아니다. 

여든이 다된 나이에 폐쇄 병동 신세를 지게된 아빠가 불쌍했던가? 드디어 불안하지 않게 잠 잘수 있게된 엄마에 대한 안도였나?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힘듦에 대한 보상이 이제야 이뤄졌다는 기쁨이었나? 그래도 아빤데 가족끼리 합심해 병동에 집어 넣은 나자신에 대한 분노였나?

분명한건 끝까지 자식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아빠라는 존재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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