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by 발돋움

밑이 넓은 냄비에 무와 감자, 양파를 깔고, 속을 털고 국물을 꼭 짠 김치와 목살을 올린 후 다시물을 자작하게 붇고 40분 이상 중간 불에 끓인다. 뭉근하게 끓인 김치가 원래 줄기 색깔에서 투명하게 바뀌면 불을 끄고 쭉쭉 찢어 한 숟갈 크게 픈 갖지은 밥 위에 올려 먹는걸 나는 좋아한다. 김치찜은 밥도둑이다.

40분의 시간은 허투루 지나지 않았다. 아삭한 김치 줄기는 어느새 부드러운 찜이 되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늘 함께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우리는 출근 시간, 퇴근시간 동안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를 하고, 식사를 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사람을 만난다. 하루하루 1분 1초를 허비하면 안 될 것 같은 시간도 물 흐르듯 그냥 흘려보내야 할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듯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힘들어도 쉬지 않고 앞을 보고 달리기만 하다 멈추지 못하고, 이내 망가져 버리는 것은 자동차 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쉬는 법을 몰라서 멈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게 쉬면 뒤쳐지고, 나만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에 감히 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달렸다면, 그래서 지금 있는 나의 자리에 나 말고 껍데기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좀 쉬어가도 된다. 그래도 된다.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충전'이니까. 내가 편해질 때까지, 내 속에 내가 다시 가득 차오를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베란다에 특별관리를 했던 시든 화분에서 오늘 아침 새싹을 발견했다.

이 친구도 휴식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활기차기 위해 한껏 움츠리는 시간.

너무 대견해 한참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게임하고, 유튜브만 보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도 생각한다.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 일 뿐이고, 서로 거리만 멀어질 테니... 기다려 보기로...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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