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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15. 2024

부부의 세계.

이해할 수 없는 남과 여

집 나간 목소리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머리는 하루종일 딩딩거리고, 기관지에 들러붙은 가래를 밀어 올리려면 단전에서부터 힘을 줘 몇 번의 기침을 연달아해야만 한다. 콧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시시 때때로 줄줄 흘러내리고, 목은 또 왜 이리 칼칼한지.

감기가 제대로 들었다. 다행히 열은 오르지 않아 주말 동안 약 먹고 푹 쉬기로 했다.

아침에 대충 빵조각 하나를 먹고 항생제가 든 약을 삼켰다. 그리곤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아이들도 엄마가 아픈 걸 알고 대충 아침을 알아서 때우는 눈치다. 11시쯤 신랑이 주말 늦잠을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감기 걸렸어?]

[응] 

[나도 머리가 띵하네]


12시쯤 TV 소리며 아이들이 거실에서 치대는 게 힘들어 안방 침대로 들어갔다. 


[방에서 쉬게?]

[응]

[그래, 들어가서 좀 자.]


그렇게 방에서 잠이 들고 문뜩 눈을 뜨니 2시였다. 배도 슬슬 고파왔고, 약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밥을 먹고 자라거나, 일어나서 뭐 좀 먹어야 약을 먹지 않겠냐 거나 하는 소리가 없다. 그저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만 저 멀리서 쓸데없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좀 허탈했다. 나는 배우자로, 엄마로, 거기다 간호사 인 죄로, 가족들이 감기하나만 걸려도 밥하고, 약 챙기고,  열나면 닦기고, 계속 옆에서 열체크하고 지켜보고 보살폈는데, 정작 나를 보살필 사람은 이 집에 아무도 없다. 손가락이 베어 밴드를 붙여도 밴드를 턱으로 고정해 가며 내가 손수. 몸이 안 좋아 약을 챙겨도 내가 직접. 나는 아파도 밥은 해놓고 아파야 하나. 이러다 내가 아파서 쓸모없어지면 이 가족들은 바로 양로원에 나를 처박아 버리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자 울화가 치밀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밥통을 여니 밥이 없다. 냉장고를 여니 반찬도 마땅치 않다. 쌀을 박박 씻어 밥통에 앉히고, 장 봐둔 시금치를 꺼내 밑동을 쓱쓱 자르고, 냄비에 물을 올렸다.


[애들 아침 늦게 먹어서 지금 밥 먹으면 저녁에 밥 못 먹어~ 지금 밥 안 먹여도 돼~]

[내가 먹을 거야 내가! 나 배고파! 나 약 먹어야 된다고!]


하며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맨날 가족들이나 먹이려고 밥 하는 사람인 줄 아나? 나도 밥 먹을 줄 알고 남이 챙겨주는 것도 먹고 싶다고! 하며 이미 질러버린 발악에 살을 더보텔까 하다가 참았다. 말을 말자. 내가 무슨 말을 더해...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신랑은 한숨을 쉬며 원래 있던 소파로 다시 되돌아가 버렸다. 미안해한다거나, 내가 한 말에 생각을 더해볼 기색도 없다. 그저 성질내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라 나는 더 억울하다 못해 외로웠고, 나물을 무치고 있는 내가 측은해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새로 지은 밥과 반찬을 식탁에 펼쳐놓고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밥알이 모래 같이 까칠 거려 잘 넘어가지지 않았다. 밥을 몇 숟갈 뜨다 말고 점심약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다시 침대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한숨 자고 났더니 4시다. 온몸이 땀에 폭 졌었다. 한결 증상이 가벼워져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더니 이제 신랑이 안방 침대로 들어갔다. 


[왜 피곤해?]

[아침부터 머리 아프다고 했잖아. 나 잘 꺼야]


하.... 

그래, 원래 나는 아프면 안 되고 다른 가족들이 아픈 게 맞지.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프냐...  그렇게 거실에 삐대고 있다가 아이들과 저녁 먹으려고 배달 앱으로 족발을 시켰다.


[밥 먹고 자. 그래야 약을 먹지]

[밥 안 먹어. 지금 먹으면 토할 것 같아. ]


하루종일 굶은 신랑은 저녁도 금식 선언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저녁을 먹고 다 치우고 나니 신랑이 안방에서 나왔다. 툭탁거리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그릇에 시리얼을 신경질 적으로 들이부었다.


[밥 먹으라니까 계란찜해놨어. 밤이랑 같이 먹어.]

[밥 안 먹는다고 했잖아. 괜히 깨워가지고 잠이 아예 깨버렸다고! 지금 깨면 다시 어떻게 자!]


대뜸 화를 낸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 아픈 사람은 무조건 끼니를 먹이고, 약을 먹여야 한다는 나와 그냥 자게 내버려 두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큰 차이. 자신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내가 아프다고 하니 챙겨줄 여력이 없는데 내가 짜증을 내서 신랑도 서운했던 건지. 신랑 입장에서 아픈 나에게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푹 자게 해 주는 게 큰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마음을 몰라줘 뿔이 난 건지. 암튼 뿔도 외뿔이 아니라 쌍뿔이 났다.


결혼 초기에 서로 정말 다르다고 느낀 점은 다퉜을 때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자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스타일이라 대화가 안 된다 싶으면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 주의였고, 신랑은 서로 오해도 풀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이 오냐고 채근했다. 


남자와 여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연애 4년에 같이 산지는 18년. 도합 22년을 알고 지내음에도 아직도 조율할 구석이 남아 있으니 아마 죽을 때까지 서로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목소리에 풀이 죽고 힘이 없으면 덜컥 걱정부터 앞서니, 이런 게 아이러니한 부부의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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