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우성을 잠재우는 정리.

by 발돋움

물건을 찾기 위해 책상 맨 아래 서랍장을 무심코 열 때마다.

느슨해진 팔찌 연결 부위를 조이려고 비즈 공구를 찾을 때도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비즈보관함.

'한 번은 정리해야 하는데 '

볼 때마다 다짐하며 식탁 귀퉁이에 떨어진 라면 면발 마냥 마음을 찝찝하게 만드는 그 녀석을 오늘 드디어 책상 위에 펼쳤다.

색깔, 모양, 소재가 재각각인 녀석들은 헤어핀, 팔찌, 반지, 브로치들을 만들 때마다 조금씩 사모아 쓰이고 남은 것들로 뒤 섞여 있다.


흑인, 백인, 황인처럼.

비정규직, 정규직, 특수업무직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무관심한 것들처럼.

한 곳에 다 섞여 있지만, 재각각인체로. 모두 다르지만, 한 공간에서 부둥켜안은 채로.

오랜 시간을 서로 치대며 살아왔어도 섞이기는커녕 더욱 또렷하게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 시끄러운 녀석들을 오늘 모두 잠재워줄 참이다.


오랜만에 스탠드를 밝히고, 보관함을 다 꺼내 책상 위로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낚싯줄을 대체 몇 개나 사 모은 건지. 원양어선을 타도 되겠네...'

대여섯 개나 되는 낚싯줄이 감긴 롤을 쌓아 놓고, 삭아서 탄성을 잃은 우레탄줄이며, 녹슨 T핀, 핀대, 리본공예용으로 모아놓은 조각의 리본들을 버리는 봉지에 옮겨 담는다.


쓰일 것과 버릴 것. 사용가능한 것과 무용한 것.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람마다 참 다르게 보는 부분이다.

수많은 누름볼, 마감장식, 링고리와 반구멍 캡등을 보면서 회사동료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네 집엔 이런 게 왜 있어?"

어떤 이에게는 무슨 용도인지도 모를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유용한 것이 된다. 나에게서 버려진다고 이 녀석들이 모두 가치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쓰레기봉지로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슬쩍 미안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정리는 필요하니까.


마지막으로 마구 섞인 비즈를 보관해던 밀폐용기 뚜껑에 모두 쏟아부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분리하며 통에 옮겨 담았다.

검은색 주판알 비즈, 진주, 자개, 크리스털 비즈, 백수정, 오팔 칩스, 시드비즈...

와글와글 모여있는 비즈를 하나하나 골라 같은 종류끼리 모아 담는다. 검은색 주판알 하나에 검은색 헤어핀, 진주 하나에 진주팔찌, 오팔칩스를 손가락으로 모으며 열쇠고리를 만들었던 기억 속을 천천히 걸어본다.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만들었더라.

만들 때 어떤 부분에서 애를 먹었었지?

열쇠고리가 터지면서 바닥에 흩어지는 바람에 원석을 몇 개 찾지도 못했었는데...


볕 좋은 날 마루 끝에 앉아 돋보기를 코끝까지 내려쓴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상한 콩알을 골라내듯. 나도 그렇게 한참이나 비즈를 고르고 고르며 추억에 잠겼다. 작고 반짝이는 영롱한 비즈들은 같은 종류끼리 모아 두니 더 빛이 났다.

서로 모여 다투듯 아우성이던 비즈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았다. 이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듯 출발선에서 눈을 반짝이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