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어른이 되기 전 그때, 연한 핑크색 밴드로 묶인 이단 플라스틱 도시락은 나의 로망이었다.
그 도시락을 소유한 아이들은 나에게 단순히 이쁜 도시락을 가진 아이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취향을 기억하고 맞춰 주려는 관심, 찌그러지고 오래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닐 때 아이가 느낄 부끄러움을 해아리는 배려, 공감, 이해, 도시락을 언제든지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어른이 그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 곁에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도시락을 가진 사람 넘어 펼쳐진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도시락도 자부심을 가지고 열었다. 뚜껑을 열기 전 멈칫하다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모두 꺼내고 뚜껑을 열어 자신의 밥을 한술 뜰 때, 시선이 소원해진 틈에 조심스레 열었던 나와는 사뭇 다른 그 무엇. 무심한 듯하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당당한, 강한 자존심에서 흘러나온 시크함이 있었다. 당연히 도시락의 내용물도 달랐다. 일렬로 가지런히 누워있던 분홍소시지, 칼집을 정성스럽게 낸 비엔나, 포일컵에 이쁘게 담긴 피클, 단무지, 여러 가지 야채를 다져 넣어 도톰하게 부친 계란말이.
그것들이 그득그득 담겨있으면 여유 있어 보였고, 적당히 빈 공간이 보이면 절제되어 보였다. 머뭇거렸던 나의 도시락엔 어제도 그제도 싸왔던 시금치와 김치가 담겨있었다. 공장 잔업에 농번기까지 겹치면 엄마는 나물이며 반찬을 시간 날 때 커다란 스테인리스 볼에 한가득 장만해 놓으셨다. 이번에도 반찬이 다 동이 날 때까지 점심 반찬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며 신선도가 푹푹 떨어지는 시금치는 다 떨어질 때쯤 원래색을 점점 잃고 이파리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분홍색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은 내 반찬통에 시금치를 한번 치켜올렸다 탈탈 털고는 다시 반찬통으로 떨어트렸다. 그 아이의 표정을 차마 쳐다볼 수없어 나는 뒤틀린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든 밥만 꾸역꾸역 삼켰다. 가장 노랗게 변한 시금치만 골라골라 먹었다. 다른 아이들 반찬통에 든 소시지는 먹어 볼 수도 없다. 그런 날은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엄마에게 생트집을 잡고 고래고래 울부짖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4남매 중 제일 고집세고, 성질이 더러운 딸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급식을 먹어 도시락을 쌀일도 없고, 체험학습에도 도시락 지참하란 이야기가 잘 없다. 가끔이라도 도시락 쌀일이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고, 베이컨 말이밥을 하고, 유부초밥을 만들고, 프랑크 소시지에 칼집을 낸다. 두세 가지 과일도 먹기 좋게 썰고 과일용 포크도 동물모양으로 미리 준비해 같이 넣어준다. 도시락 싸는 포장지도 이쁜 모양이 어찌나 많은지 이것저것 구입해 사용하고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라는 편지도 잊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그때 엄마가 이쁜 도시락에다 다른 아이들처럼 소시지, 계란말이 같은 맛있는 반찬을 매일 다른 것들로 정성스럽게 싸줬더라면, 내가 도시락으로 곤혹스럽고, 당황스럽고, 비참하기까지 했던 지독한 스트레스를 점심시간마다 겪지 않았다면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김밥집에 도시락통만 들고 가 도시락 길이만큼 썰어서 넣어달라는 말을 아무렇게 않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난 구멍을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이유로 생긴 구멍들. 크기도 모양도 깊이도 각각 다른 그것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구멍을 다 채울 때까지. 구멍이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 구멍이 구멍이 아닐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