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을 좋아한다.
빳빳한 책장, 깨끗한 종이, 처음 접하는 내용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마주할 때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보다 글의 내용이 더 소중히 읽힌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조금 더 성장한다는 느낌.
그것을 만끽하며 펼친 106 페이지.
어느 비행곤충의 것인지 모를 노르끼끼, 푸르뎅뎅, 거무죽죽한 대충 1cm 지름의 사체가 책갈피 사이 짓이겨져 있었다.
새책인데...
일순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새책을 새책이 아니게 만들어버린 이 오물. 당장 지워버리자는 심산으로 지우개를 꺼내 들었다. 지우개를 책갈피에 대고 힘 있게 문질러본다. 벅벅벅
지우개밥을 향해 입에 힘을 주워 후 불어내고, 책을 세워 책 등을 바닥으로 톡톡 쳐본다.
지우개밥이 고스란히 책상으로 떨어진다. 종이 위로 말라붙어 있던 날곤충의 마른 사채조직도 같이 떨어져 손끝에 느껴지는 입체감은 없었지만, 그것이 자리했던 자리에 남은 색은 농도만 살짝 옅어진 째 그대로였다.
몇 해 전 길에서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출근길 도로에서 스친 적이 있다. 당일 사고를 당한 듯 주위로 흘러나온 붉은 선혈과 너저분하게 흘러내린 내부 조직들과는 대조되는 풍성한 전신의 털이 도로 가장자리에서 자동차가 일으킨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음날 그 길을 지날 때는 양이 줄고 힘이 빠진 털이 주검주위를 서성였고, 원래의 색인 체다치즈 색깔에서 더욱 진해진 부후 덩어리가 뭉쳐져 있길래. 아 어제 그 고양이. 하고 또 지나쳤다.
그 다음 다음 날은 조그만 흙더미 주위로 털이 군데군데 주위로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다음날은 덩어리의 조각이 형편없이 작아졌고, 어느 순간은 도로의 껌자국처럼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었다.
자국. 흔적.
기억되고 싶은 자의 처절한 몸부림.
106페이지를 읽고 107페이지로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다음에 다시 이 책이 읽힐 날 106페이지에서는 찌푸려지지 않은 미간을 기대하며.
그 흔적을 이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