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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18. 2022

모든 일하는 임산부에게 #8주차

뱃속 눈치

 회사에 임신 사실을 밝히는 일은 쿵쾅거린다. 그래도 혹시 잘못되어도 말을 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말고 얼른 회사에 밝히자고 마음을 먹어본다. 어제 병원에서 받은 임신 확인증을 잘 챙기고 아침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매일 가는 출근길이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다. 아마 걱정과 염려로 얼룩져서 그런 것 같다. 확실하지만 불안한 이 시기에 이 사실을 말해도 될까 하는 생각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가 하는 걱정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걱정으로 뒤엉켜버린 머리는 걱정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회사에 도착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컴퓨터를 켜고 환기를 시작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회사에 도착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는 어제 엉망으로 하고 간 책상을 물티슈로 한번 닦는 일이다. 요즘은 물티슈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서 그냥 걸레를 빨아서 닦을까 하다가 귀찮다는 생각에 물티슈를 사용하고 만다.

 책상을 깨끗하게 닦고 메신저로 관리자분들의 자리를 확인한다. 오늘 출장을 가신 분과 말씀드려야 할 분들이 있어 이왕 오늘 말하기로 결심한 거 빨리 말하기로 결심한다. 아침에 찾아오는 학생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한 다음 종이 치고 얼른 교무실로 자리를 옮긴다. 마침 복도에서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나의 임신 사실을 밝히고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모성보호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교감선생님의 축하인사와 복무를 위해 교무실에 가서 다시 한번 교무부장님과도 상의를 한다. 다행히 나의 예상보다 축하를 해주시며 환영을 해주신다. 다행이다. 혹여나 학교일에 피해가 돼서 쓰지 못하게 눈치를 주는 분들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환하게 웃으며 축하와 당연히 써야지 하는 말씀에 밤새 고민하였던 나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눈치는 보이지만 아기와 나를 위해 눈치를 보지 않고 모성보호시간을 쓰자고 다시 한번 굳게 마음을 먹어본다.

 가야 하는 현장체험학습도 담당부장님께 임신 사실을 밝히며 조심스럽게 장거리로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고 밝힌다. 다행히 잘 이해를 해주신다. 다행이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모성보호시간은 매일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기로 했다. 일이 있으면 조절을 해서 쓰지만 아마 나는 대부분의 날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치를 보지 말고 쓰기로 했다. 비교과인 나를 보면서 뒤에서 조금은 시기의 눈길을 보내실지라도 어쩔 수 없다. 병원에서 피고임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의 작은 염려이지만 아기는 내가 생각하는 주수보다 조금은 더디게 자라고 있다. 유산방지 주사를 맞고 있고 입덧도 없고 증상도 심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너무 된다. 최대한 집에 가서 누워있기로 결심한다. 12주까지는 최대한 잘 누워있고 조심하면 피고임은 없어진다고 하니 무조건 아이와 나를 생각하기로 한다. 

 모성보호시간을 쓰기로 결심해서 한 시간 일찍 회사를 나왔다. 오후의 가을 햇살이 이렇게 뜨거웠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집에 가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는 것을 알지만 우선은 남편에서 모든 것을 전가하고 제일 먼저 씻고 눕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씻고 침대에 누워 아기에게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건넨다. 내가 많이 누워있지 못할지라도 잘 버텨달라고, 잘 자라 달라고, 너는 내가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거라고 아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나에게도 주문을 건다.


 모성보호시간은 일반 회사에는 임신 초기인 12주까지, 공무원들은 임신 전기 간 쓸 수 있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회사에 전 기간 쓸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리니 '그랬나?' 하는 반응도 있었다. 세상 좋아졌다는 분도 계셨고 부럽다는 분과 축하의 말과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셨다. 다행히 좋은 직장에서 모두의 이해를 받으며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운이 좋은 것이다. 쓰기 전까지 솔직히 못 쓰는 분들도 계실 텐데 내가 매일매일 쓰며 뒤에서 뒷말이 나올까 너무 걱정이 되고 일부러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같은 직종의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수십 번 모성보호시간을 검색했다. 글들과 댓글들을 읽으면서 말하기 전에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친한 동료분께도 물어보면서 걱정과 염려로 무엇보다 사서 하는 눈치로 걱정이 눈덩이 같았다. 그런데 막상 말하고 보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이게 옳은 것이가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저출산 국가라고 하는데 내가 검색해 본 모성보호시간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조금은 걱정되는 정도였다. 왜 임신을 한 것이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을까? 축하보다는 걱정과 염려와(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눈치를 받는 상황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 온 걸까? 우리 사회는 과연 아이를 바라고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는 라테 아빠들이 있다고 들었다. 아이를 낳으면 육아시간을 써서 일찍 퇴근을 해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아이를 위한 직장 어린이집이 엄청 많이 설치가 되어 있다. 우리는 아침에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 동동 거린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 특히 집값과 물가가 비싼 우리나라에서 맞벌이 부부에게, 어린 손자를 봐줄 어린이 없는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아이가 돌이 되지 않아도 아마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퇴근이 빨라서 그나마 혜택을 보는 편이지만 다른 일반 사기업에는 아이를 등 하원 시키는 일만으로 세상이 너무 벅찰 것 같다. 우리는 언제쯤 모성보호시간과 육아시간을 눈치 보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배 속에서부터 눈치를 보고 태어나야 하는 아이가 아닌 눈치보다는 사랑과 관심과 기쁨을 누구보다 크게 받는 아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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