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준비하며
-잘만 임신하던데 나만 안되는 걸까?-
신혼 생활 1년을 즐겼다. 연애시절부터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요즘 같은 저출산시대에 한명이 아닌 두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치했다. 이왕 낳기로 결심했다면 두명은 나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우리가 결혼을 하면 두명은 낳자고 했다. 출산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면서 우리는 결혼을 했고(물론 다른 요소들도 결혼에서는 배제할 수 없지만) 1년간의 신혼을 즐겼다.
신혼생활 1년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방학이 있는 나의 직장생활에 맞추어,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의 스케줄에 맞추어 길지는 않지만 짧게 짧게 여행을 다녔다. 둘다 떨어져 있는 시가와 친정의 위치 때문에 갈때마다 어디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가족스케줄들을 이행하고 우리끼리의 짧은 여행 시간도 보내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시가의 문제로 가끔은 친정의 문제로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생활패턴이 다른 우리 둘의 삶에 지치며 서로 상처를 주고 입으면서 일상을 견뎌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부분을 이해하자며 맞춰주고 성장하는 부부가 되었다.
딱 1년정도가 지나면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 30살의 나이에 들어왔을 때 슬슬 아기를 낳고 기르는 친구들이 생겼고 친구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평균 출산율을 생각하면서 주위에 아기를 낳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유독 나와 남편의 주변에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 지인들이 많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정도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있었기에 우리도 얼른 그 반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건강검진이다. 직장인 건강검진을 통해 자궁경부암 검진 같은 임부과 관련 검진들을 먼저 받았다. 나는 작년에 자궁경부암 검진을 통해 배란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난소에 작은 근종들이 보여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다행히 올해 검진에는 정상적이고 깨끗하다는 말을 들었다. 안심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보건소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산전검사도 받았다. 소변검사와 피검사가 전부이지만 이 검사들을 통해 임신 하기 전 B형 간염이나 풍진 항체가 있는지 검사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런 항체들이 없으면 아이의 성장과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보아서 미리미리 검사를 해서 아이를 가진 준비를 했다. 검사 결과 나는 둘다 항체가 없어서 주사를 맞고 주사기운이 좀 빠질 때까지, 항체가 생길 때까지 시간을 가졌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먼저 임테기를 샀다. 나는 임테기의 종류가 이렇게 많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얼리임테기, 더블체크임테기, 확인에 박한 임테기, 후한 임테기 등 임테기의 종류가 수십가지였다. 가격도 천차만별에 브랜드도 천차만별인 임테기들을 공부(?) 하면서 임테기를 구입했다. 약국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이 싸기에 무료배송에 네이버페이가 되는 상품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임테기를 찾아보면서 배테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배테기는 배란시기를 알려주는 테스트기로 생리가 끝나고 일주일 뒤 쯤 배란 시기가 될때를 기준으로 앞뒤에 소변검사를 통해 농도체크를 해서 배란이 되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테스트기였다. 배테기도 임신테스트기처럼 두줄이 선명하게 뜨면 나의 배란일이 가까워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중에서 어플을 통해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수치를 보여주고 기록해주는 테스트기를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한달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위에 보면 정말 한번만에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혼전임신을 통해 결혼을 한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나도 쉽게 아기가 생길 줄 알았다. 그래서 엽산을 먹으면서 남편과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오빠 이러다가 바로 임신되면 어떡해?"
"임신이 그렇게 쉬운 거면 너도 나도 되게. 그냥 마음 차분이 가져."
설레발을 치는 나에게 남편은 차분히 마음을 먹으라면서 다독여주었다. 다독이는 남편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너무 기대가 되었고 정말 임신이 곧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신관련 카페에 들어가서 글도 찾아보고 소위 말하는 증상놀이도 하게 되었다.
생리날짜가 다가온다. 아 역시 처음은 실패구나.
'처음이닌까 괜찮아. 다음 달에는 잘 되겠지.' 하면서 생리를 맡이하였다. 왠지 이번달의 생리기간은 약간의 실망과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짜증과 기쁨이 공존하는 기간을 보냈다.
첫 한달을 시작으로 두달, 세달이 흘렀다. 그동안 운동도 하고 글도 찾아보고 증상놀이에도 시달리면서 이번달은. 이번달은 하면서 선명한 두줄을 기다렸다. 배란 8일차에 일찍 보는 사람, 배란 14일차에 늦게 보는 사람 등 다양한 후기들을 읽어보면서 임신에 대한 희망을 놓치 못했다. 어쩌면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되지 않는 것일까? 배테기가 불량인걸까? 하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고작 3개월을 노력해보고 안된다고 생각하니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인데 안되닌까 임신을 준비한 기간까지 하면 거의 7-8개월을 기다렸으닌까 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음을 편히 먹자고 다짐을 해도 마음을 편히 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두세달만에 잘 임신하는데 왜 나는 안되는거지 하는 생각과 나의 일과 관련하여 일정에 맞추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꼭 계획 임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걸 수도 있다.
계획임신을 하면 방학기간에 임신초기를 보낼 수 있어서 안정적이고 휴직을 들어갈때도 학기를 맞출 수 있어서 기간제 선생님 구하기도 쉽고 학교에 민폐도 안 끼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컸다. 임신을 하고도 계속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회사의 일정과 무조건 맞추고 싶었다. 주위에서 내가 원하는 날짜에 임신을 한 지인들의 소식도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났다. 나도 그때 임신하고 싶었는데... 누구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데 왜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이번 가임기를 놓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달에는 술도 먹지 않고 운동도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다이어트 겸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겧 한달의 기회를 놓치다니 안타깝고 남편이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탓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달한달이 소중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하게 두줄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시약선이라는 건 줄 알았다. 나는 몇개월간 임테기를 하면서 한번도 시약선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약선이라도 보면 좋겠다 하고 바라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약선을 보는구나 하고 생가했다. 그러면서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남편과 함께 임테기를 뚤어지게 쳐다봤다.
"오빠 보여?"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일찍 깨어났다. 임테기를 아침에 해보고 '에이' 하고 실망하고 말았다. 어제 보았던 그 희마한 선은 시약선인가 보다. 남들이 다 보는 것을 내가 이제 보았을 뿐인가보다 하고 실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편하게 맥주나 마셔야하지 하고 캠핑을 가서 소맥을 말아먹었다. 그런데 왠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서 평소 같으면 계속 달렸을텐데 명절증후군인지 피곤한지 뭔지 모르겠어서 딱 두잔만 먹었다.
다음날 또 임테기를 해봤다. 희미하지만 두줄이다. 배란 10일차다. 아, 임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임테기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이틀전 임테기로 본 희미한 점 같은 자국이 아니라 확실한 두줄이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보인다는 판단과 함께 하루하루 임테기를 했다. 매일 아침 임테기와 씨름하면서 희미한 두줄이 찐한 두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찐한 두줄이 되는 것을 역전이라고 한다. 그때 가면 배란 일주일에서 10일정도 지났을 때인데 병원에 가면 아기집 운이 좋으면 난황과 심장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기다려졌다. 내 인생에 이렇게 긴 10일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