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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05. 2022

모든 일하는 임산부에게 # 5주차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갑작스럽게 알게 된 임신이 아니라 배란 10일 차부터 꾸준히 임테기를 했다. 임테기의 선명한 두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리고 그때 그 두줄을 봤을 때의 기쁨이란...


 내가 너무 간절히 바라서 사실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확인하니 얼떨떨한 기분과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일단 임테기만 꾸준히 했다.

 맘스홀릭 카페에 하루에 수십 번씩 드나들면서 임테기 선명도를 체크하는 방에서 나의 임테기 색과 비교했다. 어떤 사람보다 기간에 비해 잘 찐해지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사람들은 잘 찐해지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느린 것 같지? 통증이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나타는데 혹시.. 자궁외 임신은 아닐까? 정상적인 반응일까 등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지금 가면 어차피 피검사밖에 하지 못하고 피검사 이후에 기다리면서 얼마나 초조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을 가는 것을 미뤘다. 사실 생리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 바로 가고 싶었지만 산부인과 예약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미 내가 가고 싶은 시간, 요일에는 예약자가 가득 차있었다.

 나는 일하는 임산부다. 그래서 조퇴를 쓰는 것도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미리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막 함부로 아무 시간에 갈 수 없었다. 물론 회사에서는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지만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일단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오전 제일 첫 타임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 병원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고민을 많이 해서 시간대를 고르고 싶었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그냥 일정을 고려해서 월요일 아침에 빨리 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 시간으로 골랐다. 내가 가려는 병원에 유명하다는 산부인과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그 선생님들의 예약이 다 차 있기도 하고 고를 여유 따위는 나에게 없다.


 병원을 기다리면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임테기와 내가 잘하고 있나, 혹시 내가 조심해야 하는데 조심하지 않아서 애가 잘 못되면 어떡하지 등 온갖 걱정들이 나를 뒤덮었다. 사실 원래 걱정이 많은 타입이기도 하지만 애가 생겼다고 하니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임신을 바랐지만 막상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주수별로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한다. 5주 차에는 어떤지, 6주 차에는 어떤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주수별로 먹어야 하는 영영제가 따로 있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유명하고 가성비 높은 영영제를 2개월 치 구입해 주문을 해본다. 69,900원. 내가 먹고 있는 영양제들을 먹어도 되는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정확하게 나오는 정보가 없다. 아깝지만 일단은 주문한 영양제를 기다리며 엽산만 챙겨 먹었다. 

 벌써부터 아기를 키우는데 임신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 부부의 월급으로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일 년 전부터, 신혼 초부터 아기 적금이란 이름으로 50만 원씩 부어놓았다. 처음에 병원 갈 때 들어가는 비용은 임신 바우처 100만 원으로 일단 하고, 단체보험을 통해 보험비 청구가 가능하다는데 이런, 나는 이번년도 단체보험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비에 영양제비에 뭐 더 들어가지를 생각하며 조금은 잠을 설쳤다.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살이 찐 상태로 임신을 하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점심을 가볍게 먹고 저녁을 무겁게 먹는 편이다. 저녁을 포기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느라 살이 많이 쪄 올 4월부터 가볍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샐러드도 먹고 먹는 양을 줄이면서 살을 빼려고 했는데 결국 살을 빼는 데는 실패했다. 살이 찐 상태로 임신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입덧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기에 차라리 입덧을 해서 조금이라도 살이 빠진 채로 임신 초기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무식하고도 용감한 말에 남편은

 "너 입덧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나, 그냥 잘 먹고 잘 쉬어~ 살 걱정하지 마. 좀 찌면 어때?"

 라고 말을 덧붙여 주었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살이 찌는 건, 임신으로 몸이 변하는 건 나다.


 입덧도 그 어느 것도 없는 채로 5주가 흘러가고 있다. 아무 증상도 없으니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잘 자라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지만 꾹 참았다.

 드디어 병원을 가는 월요일 아침이다.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병원 2곳 중에 고민했고 진료비 처방을 할 때 합리적으로 잘해준다는 병원을 골랐다. 차가 밀리지 않을 때는 20분. 차가 밀릴 때는 3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일부러 아침 일찍 시간을 잡았는데, 이런 아침 출근시간에 나의 생각보다 차가 더 밀린다.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5주 후반이 되어 가는데 아기 난황을 볼 수 있을까? 심장소리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온갖 고민을 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몸무게와 혈압을 잰다. 너무 살찐 상태라 몸무게 재는 것이 싫었고 혈압은 생각보다 너무 낮게 나온 것 같아 걱정이 되어 다시 한번 측정을 했지만 여전히 낮게 나온다. 그래도 일단 그냥 적어서 제출을 해본다. 

 접수하는 간호사님께서 처음 임신이냐고 물어보고 몇 번 방 앞에 가서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찍 왔는데도 5분이 지나자 병원 소파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미 만삭인 임산부도, 아기를 낳은 임산부도, 초기인 임산부도 남편이랑 함께 온 사람, 혼자 온 사람 등 온갖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될 엄마, 된 엄마. 모두 엄마. 엄마가 된다는 것이 갑자기 무서웠다.

 

 제일 처음으로 예약해서 나의 이름이 불렸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건강검진받을 때처럼 들어가서 속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다. 부인과 검진을 받을 때마다 항상 굴욕 의자에 앉아질초음파를 하는 것이 싫었다. 하얀색의 몽둥이 같은 것이 내 질 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뭔가 너무 이상하고 싫었다. 차가웠다.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해서 심호흡을 해본다. 후후 내뱉고 사실 별거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 본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도와주시고 담당 선생님께서 와서 나의 질안 초음파를 보여준다.

 질안 초음파는 검은색에 흰색 줄 같은 것이 가느다라 하게 나 있다. 자궁근종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예전 검진의 말이 생각나면서 조금은 겁이 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빠르게 확인을 하며 

 "여기 아기집 있네요. 축하합니다. "

 라는 말을 건넨다. 막상 들을 때는 아무렇지 않고 아무것도 안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얼른 내려왔다.

 의사 선생님과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내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5주 정도로 보이고 7mm의 작은 아기집이라고 한다. 아직 심장소리나 난황을 보이지 않고 나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5주 후반인 줄 알았는데 5주 초반인 것 같다. 임신 확인서를 요청했지만 아직 아기집뿐이라서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말씀해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진료실을 나와 초음파 사진을 한번 본다. 7mm. 조금 느낌이 이상했다. 아, 내가 임신이 맞구나 하는 생각과 두려움. 그리고 난황과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못 보고 들었다는 조금의 실망감.


 사실 몇 주 차에 얼마만 한 크기가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돌아가는 차에서 엄청 검색을 해보고 9주 차까지 난황과 심장소리를 늦게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살짝 피고임이 있다는 말을 해주셨지만 그 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셔서 혹시나 하고 피고임에 대해서도 찾아본다. 피고임이 아기집을 밀어낼 수도 있기에 조심하고 최대한 눕눕을 하라는 글을 본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갑자기 불안감이 확 몰려온다.


 오후에 다시 출근을 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제 병원에서 확인한 아기집을 가진 임산부다. 10일 뒤에 확실히 심장소리까지 듣고 싶어 병원을 예약하고 다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야한다. 그 동안 온갖 글을 찾아보며 불안해 할 나는 일하는 임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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