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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9. 2023

죄책감을 생각하는 하루

매일 유산균을 먹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라고 하면 좀 부담스럽고 그냥 버티고 싶었달까.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하루를 잘 견뎌내고 싶다. 잠자는 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이 요동쳐서 피곤한 건 지긋지긋하다. 좀 괜찮아지려면 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을 피해야 한다.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나태해진 상태에 적절한 긴장감 부여. “밤에 야식시키면 죄책감 들어. 몸에 안 좋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죄책감’을 말하면 불편하다. 건강 관리는 경쟁적인 다이어트와 종이 한 장 차이가 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건강’이라는 단어가 가정하는 정상성은 상당수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굳이 건강을 위해 죄책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나. 이 정도가 불편함의 원인이 되는 걸까. 아니, 생각해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      


야식을 먹을 때에야 죄책감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게 사실 좀 더 불편하다.      

서점에 가서 신간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모든 책들이 비명을 지른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존감을 낮추지 말고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죄책감과 죄의식 같은 것들은 집어던지라고 말이다. 듣기 좋은 소리지만 띠지와 표지에 쓰인 강압적인 권고가 가뜩이나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죄책감 갖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기세. 그래서인지 요새 죄책감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온종일 자신을 탓하고 죄책감에 침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나. 다만 그렇다 해도 생활에서 죄의식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 생각 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제어할 장치가 없어지는 것은 끔찍하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넘어갈 때 벌어지는 상황은 그나마 직접적으로 연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때로는 내가 관여되지 않은 과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점 근처에 있는 유명 카페가 당당하게 본점을 ‘노키즈존’이라고 공언하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담담하게 조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노키즈존을 ‘핫플레이스’의 새로운 톤 앤 매너로 인정했다. 그 앞에서 당당하게 있을 자신이 없다. 당당하고 떳떳하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물론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을 거고 때로는 행복하겠지만 그게 내가 원한 좋은 삶은 아닌데.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치유, ‘러브마이셀프’ 같은 것들이 안 되는 정의와 미덕을 빨리 포기해서 얻어지는 거라면 일종의 기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 죄책감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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