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생활 - 메모하기
나는 왜 요즘 그때보다 잘 메모하지 않을까?
메모는 글 쓰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들 한다. 김영하 씨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생활의 언어를 모은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나 같은 경우에 강박적으로 메모하게 된 때는 대략 3년 전으로, 윤성희 작가의 소설 《베개를 베다》를 읽고 나서였다. 그전부터도 책 초서나 짤막한 메모를 즐겨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현실의 사소한 순간을 담아내는 윤성희 씨의 표현력에 나도 어떤 순간도 흘려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마음에 드는 포켓 노트를 사서 강박적으로 메모했다. 가장 많이 쓴 건 읽어야 할 책이다. 수업 시간에 추천받은 소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 ‘서울대 추천도서 100선’과 같이 기관의 권위가 권하는 책 등등. 같이 글 쓰는 친구들 중에서 영화 애호가가 많아서 그들이 권해준 영화 제목도 되는대로 메모해 두었다. Bing 같은 검색 엔진에서 알려주는 기념일도 주요 메모 거리 중에 하나다. ‘세계 시의 날’이 3월 21일이라는 사실을 소설이나 수필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흥미를 끌었으니 적어둔다. 특이한 간판 이름이나 사건도 적는다. 해방촌 쪽으로 걸어가다가 만난 ‘평생 늙지 않는 연구소’라는 간판, 도서관 앞마당 앞에서 본 주판을 든 아이 같은. 물론 이렇게까지 특이한 것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대개 ‘특이함’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라, 특이한 것을 기록하는 일은 어느새 하루를 훑어보는 기록을 남기는 식으로 변해갔다. ‘오늘은 악몽으로 시작했다. 그 악몽은...’ 같은 식이다. 글감을 건지는 일은 어느새 뒷전이다. 대신 내가 나를 장악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 글쓰기란 내가 나와 딱 붙어 있지 않고 나를 조망하는 행위인데, 하루에 기억나는 일들을 다 기록한다면 자기 자신을 더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달까.
마치 (믿진 않지만) ‘전생처럼’ 아득한 일이다.
나는 왜 요즘 그때보다 잘 메모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그게 소명의식이든 말 그대로 자의식이든간에) 자의식이 강해져서 생긴 폐해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메모는 소재 찾기가 아니라 반쯤은 일기처럼 적던 것이라 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 쓰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의식하면서 신선한 것들만 적으려고 하니 메모가 적어진다. 이럴 때 나는 스스로 고갈된다고 느끼는데, 생각과 체험이 풍성해져서 글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도 어떻게 글로 담아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며 강박에 빠지는 바람에, 무엇이든 그 자체로 음미하거나 경험으로서 쌓아두지 못한다. 입력보다 출력이 더 많다. 비슷한 경우를 타인에게서 본다면 나르시시즘이라 판단했을 것이기에, 스스로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아, 제발. 뭔가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글 쓰려고 개요 짜는 습관 좀 버려. 어차피 생각이 익지도 않은 거 구린 얘기 밖에 안 나올 거라고. 일단 알아봐. 일단 읽어. 글감인지 판단하면서 메모하지 말고 그냥 메모해. 판단 중지야.
당분간은 이렇게 스스로와 부대끼면서 메모할 수밖에 없다. 심란한 중에 기록하는 건 그나마 상황이 낫다. 나는 작년엔 포켓노트를 거의 쓰지 못했는데, 여성가족부 폐지, 반공 투쟁 같은 극우적 구호를 내세운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게 결정적이었다. 뭔가를 붙잡아서 관찰하고 글로 만들어내는 일에는 기본적인 컨디션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약간은 알고 있어서인지,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기록도 글도 남기기 어려운 상태로 한 해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