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생활 - 아이디어

아이디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by 김남희

‘영감’이라는 말은 느끼하다. 감상적이고 자의식 과잉이다. 신의 계시를 읊겠다는 음유시인이나 쓸 법한 말에 걸맞은 사람은 없다.


아이디어로 바꿔봐도 마찬가지다.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대한 구상”이라는 뜻이지만, 그런 소박한 의미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라고 검색하면 ‘세상을 바꾸는’, ‘수익을 가져오는’ 따위의 수식어가 자주 따라온다. 결국 “자본주의 최고”, “돈 최고”라는 건가. 이런 수식어를 보고 있으면 결국 좋은 아이디어는 돈이 되는 아이디어라는 뜻인지, 아이디어만이 돈이나 성과를 만드는 유일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기업의 성공 비결을 다루는 책들에서는 명상 매니아 CEO가 벼락같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성과는 다 만들어진다고 본다.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고강도의 노동은 그 앞에서 지워지며, 노동자들의 ‘고행’은 그들이 아이디어가 없고 진부하기에 감당하는 것이라 지껄이기도 한다. 일부 대기업 중심의 경제 질서를 찬양하기 위해서도 ‘아이디어’가 동원된다. 그들이 독과점, 담합, 약탈적 합병, 하청기업 착취 등으로도 대규모의 수익을 낸다는 사실은 아이디어의 ‘독창성’, ‘창조성’이라는 사탕발림으로 가려진다.


적어도 글을 쓴다는 사람들, (에세이를 비롯하여 소설 등)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끼어있기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이디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문학 바깥에서 통용되는 아이디어에 담긴 편견과 맹점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또 ‘신선함’이라는 기준에 매몰되어 색다른 발상만 빛나는 글, 소재주의로 이어지는 글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니나》같은 위대한 작품에서의 아이디어나 소재는 평범하다. 다만 작가가 그 아이디어와 소재를 인식하는 방식,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며 그 다름을 밀어붙였을 때의 결과가 모두의 예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런 텍스트에서는 문학 전통에 기대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으며, 자신의 ‘다름’, ‘창의성’을 요란하게 떠들지 않는다. 오히려 독창성과 창의성을 강조할수록, 완성도와 주제의식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수다. OTT 사이트 순위에서 반짝 1위 하고 마는 작품들이 떠오른다. 자신들의 창의성으로 한국 문화의 위력을 보여줬다고 자랑하지만, 그저 성찬기에 마약을 부어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외에는 별 의도도 의미도 없는 것들을 늘어놓는다. 대단한 자아도취들. 그렇다고 자신들의 평범성을 ‘평범함의 미학’이라고 팔아먹는 경우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해서 결국 의지할만한 것은 과거의 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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