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생활 - 관찰

by 김남희

몇 해 전이다. 요즘 같은 맑은 가을 어느 날에, 파란 하늘에서 레몬색의 햇볕이 떨어지며 가로수 잎들을 적시고 있었다. 햇빛이 잎 위에서 점점이 영글다가 거리를 뒤덮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투명한 계곡 속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햇빛이 관통한 거리가 빛으로 밝아진 맑은 물속 같구나. 단숨에 떠오른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밝은 가을날을 너무 좋아했고,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알맞은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말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누릴 것만 같았으니까.


관찰의 사전적 정의는 주의 깊게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관찰 방법은 사물의 이름을 잠시 제쳐두고 외양을 하나하나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햇살을 받은 가로수라고 한다면, 가상의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생각하면서 문장을 쓴다. 가로수는 구축 건물 2층 높이 정도 되고, 가을이라 그런가, 잎들의 가장자리가 물결치고 있다. 빛바랜 종이 같은 색과 연두색이 잎에 섞여 있고, 햇빛을 받아 자잘하게 뻗어있는 잎맥이 다 보인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감각하는 과정 자체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사물이나 풍경을 그 자체로 만끽하는데도, 관찰과 묘사의 능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혁명과 모더니즘》에 따르면, 이렇게 사물의 이름을 제쳐두고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언어화하려는 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발명한 ‘낯설게 하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사물은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 이상 그에 대해 면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자동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뒤에 두고 그것을 설명하고 묘사할 때,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았거나 잊고 있었던 사물의 모습에 주목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해서 사물이든 인물이든 현상이든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파격,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문학에서 위대한 작가들은 계급, 성별, 인종과 같은 거대한 조건이나, 조건에 붙는 통념을 뒤로하고 개인의 삶을 관찰해서 파격을 이루어 냈다. 부자는 고결하지 않고 빈자는 순수하지 않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속한 세계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늘 세계와 불화하기에, 인생의 비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가 세상과 불화하지 않는다면, 한심한 삶을 살고 있어서이다. 등등. 위대한 문학이 주는 교훈 안에서 인간은 삶의 조건과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관찰이 사물의 이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은 먼저 주어진 지식을 가지고 만물을 바라보며, 이름을 뒤로한 채 사물을 관찰하더라도 결국 그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깊게 보고 주의 깊게 보고 자세히 살펴보되, 사물과 현상의 이름을 짊어지고 관찰하는 것을 잊지 않기. 고정관념과 편견이 언제든 섞여 들어갈지 모른다는 것을 잊지 않기. 예민한 지각만큼이나 관찰에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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