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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Jan 09. 2024

냇 킹 콜

이름에는 닻이 있다. 연말, 하면 떠오르는 감미로운 목소리. 사랑을 담아내는 배우. 겨울의 배경음악. 막연한 감상의 주인공이 ‘냇 킹 콜’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마음을 데우는 따뜻함이 더는 막연한 것, 사라질 만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냇 킹 콜은 1919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침례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수로 더 널리 알려졌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로 경력을 시작했다. 1939년에는 피아노, 기타, 베이스의 심플한 편성으로 이루어진 ‘냇 킹 콜 트리오’를 결성해, 빅밴드 시대에서 트리오 밴드 시대를 열기도 했다. 1944년에 가수로서 “Straighten Up and Fly Right”를 히트시킨 이후, 1965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솔로 가수로서도 미국 대중음악계에 군림했다. 동시대에 활동한 프랭크 시나트라에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위상이었다고 하며, 오히려 차트 성적은 냇 킹 콜이 더 우위라고 평가받는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었지만 1958년 흑인 최초로 “The Nat King Cole Show”라는 버라이어티 쇼의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남아있는 1963년 BBC 스페셜 라이브를 보고 있으면, 쇼에서의 냇 킹 콜 모습이 짐작되는 것도 같다. 50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냇 킹 콜은 거의 혼자서 라이브를 이끌어간다. 그래서인지 그는 토크를 할 때나 노래를 할 때나 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가 짓는 사랑에 빠진 표정은 누구든 그의 연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멋진 슈트 차림, 예의 바른 유머, 부드러운 웃음, 노래. 흑인이면서 신사라는 존재가 주는 생경함은 접어두더라도(유색인을 진지한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는 시대의 한계가 컸다고 본다), 이렇게까지 신사에 걸맞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신사가 멸종된 지도 너무 오래되지 않았나. 솔직함과 자기 고백이라는 명분을 빌미로 자신의 찌질한 편견이나 위악을 내보이는 유행이 대중음악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냇 킹 콜이 활동했던 40년대에서 60년대의 기간이 어떤 노스탤지어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통과했던 시대가 흑백분리가 횡행하던 야만의 시절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냇 킹 콜도 그 야만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이 노스탤지어는 시대의 것이 아니라 냇 킹 콜이라는 이름이 주는 것이라고 해야겠지. 대부분의 향수는 그 시대가 아니라, 시대를 지나온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니까. 비루한 시절에도 결코 비루해지지 않았던, 사랑으로 충만한 완벽한 노래, 그것이 주는 옅은 배경색의 슬픔은 그 이름에 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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