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희 Jan 16. 2024

나스

신사는 어떻게 멸종했는가?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겠지만, 타인에 대한 정성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분위기가 득세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겠으나 대중음악에선 힙합의 부상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팝스타 중에서도 랩 스타란 자기 자신의 고뇌나 분노를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는 부류고, 이는 그들을 보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뒤 이어지는 장구한 솔직함 예찬, 진정성의 찬미, 꼬아서 보자면 솔직함을 핑계로 한 무례와 막말 문화에는 힙합의 책임도 있다. 힙합은 그 점에서 애증의 장르다. 하지만 ‘애증’에는 ‘애’도 있지 않은가? 어찌 됐든 힙합의 솔직함은 진실로 보였고 성공적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나는 나스의 “N.Y. State of Mind”를 들으며 울기도 한다. 한바탕 눈물 흘리라고 만들어진 발라드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래퍼 지망생들이 야망을 가지고 카피 랩을 할 미국 메가 히트곡에. 내가 뉴욕 살았니,라고 생각해 봐도 눈물을 멈추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나는 우울하고 슬프고 화가 나지만 무엇을 해야 할 때 나스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애먼 노래에 슬픔이 각인된 건 아닐까? 힘들 때 먹었던 음식을 맛보면 그때가 떠올라서 울컥한다는 사람처럼.      


So now I'm jetting to the buildin' lobby. 
그래서 지금 난 빌딩 로비로 도망가고 있어.     
And it was full with children, probably couldn't see as high as I be
아마도 아이들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은데, 취해서 뵈는 게 없었어.     


하지만 다소 퉁명스러운 나스의 랩이 뉴욕의 그림자를 비웃을 때, 그 차가운 거리두기 속에서도 그가 겪었던 묘한 분노와 슬픔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너무 화가 나서 화내는 법도 잊어버릴 것 같은 나에게 분노를 알려주는 분노다. 눈이 빨개질 정도로 후련한.     


해서 “N.Y. State of Mind”이 “Illmatic”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illmatic’은 나스가 만든 조어로, 흑인 영어에서의 은어로 ‘멋진’, ‘뛰어난’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ill’에 ‘matic’을 더해 ‘정말 뛰어난’, ‘궁극의’라는 의미다. 하지만 원래 ‘ill’은 아픔을 뜻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아프고 더러운 현실 속에 숨어있는 멋이나 유머를 굳이 은폐하지 않는, 비판도 미화도 없이 삶을 응시하려는 나스의 태도를 보여주지 않나 한다. 이후로 그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준 “King’s Disease”, 즉 ‘왕의 질병’ 3부작도 자기 자신이 왕이라는 과시적인 설정 뒤에, 일상이나 (더 나아가) 사회의 고통까지 고스란히 통과하겠다는 자세의 표현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멀리 나간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모든 창작물은 수용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내 멋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속 얘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 붙일 이야기 하나는 갖고 싶으니까.                                   

이전 01화 냇 킹 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