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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Feb 06. 2024

비욘세

어디서 망한 개그를 치고 앉아있어.      


얼마 전 <나락퀴즈쇼>에서 “다음 중 가장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1 운동, 흑인 민권 운동, 노동자 인권 운동, 여성 운동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데, 다 숭고한 운동이기에 ‘싫어하는 운동’으로 고르는 순간 “나락”에 간다는 식으로 의도를 어찌어찌 생각해 준다 하더라도 남의 투쟁을 웃음거리로 삼고, 호오를 매기라는 것이 아주 불쾌하게 다가왔다. 3.1 운동이야 현대인들은 못한다지만, 자기들은 평생 여성 운동, 노동자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참여할 필요 없다는 거야, 뭐야. 우리는 투쟁할 필요가 없는 ‘높으신 분들’이라 운동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거야, 뭐야. 화가 나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메일을 보내고 난 뒤에도 한참을 씩씩거렸다. 뭐 이딴 멍청한 놈들이 다 있어. (스태프의 구성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락퀴즈쇼> 출연자는 거의 다 남자다.) 음악 어플에 들어가서 노래라도 들으려는데 그날따라 애꿎은 남자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듣기 싫었다.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게 뭐가 있겠냐만은.     


결국 보이는 건 비욘세 노래구만. 개중에서도 “Run the world”를 재생한다. 

“Who run the world? Girls!” 비욘세가 노래하듯이 세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그리고 노동자, 유색인종, 피식민자들이지.)

아무리 멍청한 놈들이 설쳐도 말이지, 하고 생각해 본다.     


비욘세는 다들 알다시피 데스티니스 차일드라는 걸그룹 출신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솔로로 대성한 여성 아티스트다. 누군가는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이자 팝 아이콘이라 찬양할 정도다. 20년 넘게 전성기를 유지하면서 가창력이든 외모든 뭐 하나 변한 게 없을 정도고, 수익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런 면이 비욘세라는 사람을 더 희구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비욘세에 쉽게 마음을 두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까 그녀의 명성은 나처럼 음울한 아웃사이더도 이름을 알고 Crazy love”나 “Listen”, “Single lady” 같은 곡을 듣게끔은 하지만, 앨범 전체를 다 감상할 마음은 주지 못한달까. 그녀는 노래에서 굳이 없는 피해의식이나 좌절감, 공격성을 지어내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모든 노래에서도 잘 나가는 스타로서 이야기한다. 굳이 절망한다면 아무리 잘난 사람도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영역에서일텐데, 사랑에 있어서나 한계를 느끼고, 그럼에도 사랑을 추구하는 그녀의 모습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반대로 나는 사랑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한계를 느끼고, 사랑에 대해서는 무감해진지 오래니까. 그녀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발매하고, 노래들은 늘 감탄을 자아내나, 그게 파워 우먼으로서 소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당장 “Run the world”의 가사에서도 좀 더 앞서는 것은 ‘수백만 달러를 버는’ 여자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잘난 게 죄겠는가? 강한 여성상도 클리셰가 돼버렸다지만, 여성이고 남성이고 ‘미움받을 용기’ 없이 자기 손가락의 가시만 가지고 징징거리는 이때에 비욘세의 강력한 가사,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청량제다. 그녀의 노래가 당당하듯이 그녀의 발언도 용감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를 내보낸다고 언론사를 절단 내버리고 싶어 했던 전 대통령에 대해서, 그는 인종차별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모든 인종의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고 말할 만큼 말이다. 비욘세 특유의 박자감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하이힐로 멍청이들의 배를 걷어차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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