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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Mar 19. 2024

겁쟁이들의 나락

나는 어려서부터 웃음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한 코미디를 보면서도 웃기는커녕 내가 웃음이 없는 건가, 이상한 건가, 고민하고는 했다.      


<나락퀴즈쇼>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때때로 쌍욕이 나온다는 것 정도? 이런 걸 보면서 낄낄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보기를 주고 하나를 고르라고 말하며 사람을 난감하게 만드는 게 웃음 코드라 하더라도, “다음 중 가장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내고, 3.1 운동, 흑인 민권 운동, 노동자 인권 운동, 여성 운동을 제시하면 막장까지 내려가겠다는 말밖에 더 되나 싶다. 타인의 투쟁이 누군가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니까. 그래도 SNS 알고리즘에는 부단하게 오르내리니, 재미없고 멍청한 상사의 농담이 끝없이 들이밀어지는 회식 자리 같은 피로함마저 든다.     


이딴 걸 꽤 많은 사람이 재미있어하는 현상의 기저에는, 자신을 중립파라 자처하는 이들이 만든 탈정치적 사회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다. 기성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기성 정당 중 하나에 당적을 정하고, 특정 정당과 정당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윤리적으로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정당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한다고 해서 모든 사회적 의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나락퀴즈쇼>의 “다음 중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시오.”는 정당 정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정파와 상관없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그 가치들을 수호해야 하며,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하라는 헛소리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소위 중립파는 사회적 가치와 정의도 정파의 문제인양 왜곡해서 인지한다.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의 프레임에 걸려든 결과라 하더라도, 그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는 게 민주 시민의 의무이다. 자기들 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이들에게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도.)      


정파의 문제가 되는 순간,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소란’과 ‘싸움’이 일어나기에, 중립파는 가치, 정의와 관련된 일에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투쟁하더라도 퀴즈쇼에서처럼 모른 체하거나 비웃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건전한 시민이며 ‘정치병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 사이에 사회에는 계속해서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불의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정파적인 사람들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R&D 연구 예산이 삭감된 것을 항의하여 퇴장당한 이는 정의당 당원이고,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소극적인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국민의힘 당원이다. 대체 순수한 무당파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가 아파하거나 죽는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까. 하다못해 그 당원들의 항의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기에 목소리를 함께 할 수 없는 거라는 입장이라도 표하고 있나?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여론조사에서 R&D나 채 상병 사건,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설문에 대답을 하기도 하지만 거기까지며,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나쁘다는 ‘쿨병’ 가득한 시선을 유지한다. 때로 ‘이쪽도 저쪽도 문제’라는 식의 코미디나 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힘든 시간을 해학적으로 이겨나간다 착각하겠지. 현실은 ‘1번이냐, 2번이냐’를 가지고도 벌벌 거리는 애어른들인 주제에. (SNL 모텔 개그는 찾아보면서 정당 얘기는 불편해하는 꼬라지가 유치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들이 이름 그대로 ‘나락’에 갔으면 좋겠다. 어른들이라면 아파트 값이 떨어졌으면 좋겠고 내 또래 청년들이라면 언더도그마 운운하면서도 틈틈이 부은 ‘청년도약계좌’ 잔고가 바닥나기를 바란다. 여행 가려고 만든 목돈이 모종의 이유로 날아갔으면 하며, 연인이 있다면 파국적인 이별이 성사되길 바란다. 사람은 사람을 바꾸기 어렵지만, 시련은 때때로 사람을 강하게 하고, 용감하게 만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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