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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Jul 19. 2023

한나 아렌트, 파울 첼란,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의 사진을 종종 들여다본다. 

왜 그러나. 먼저는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가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자주 출판해서. 출판사가 SNS에 카드뉴스 스타일의 홍보자료를 올리면 백이면 백 한나 아렌트의 사진이 같이 들어있다. 네이버 이미지 탭에 한나 아렌트라고 치면 맨 처음 나오는 그 사진 말이다. 거의 비스듬히 누운 채로 오른편을(그녀에게는 왼편을) 응시하고 있는데 흑백 사진 특유의 진한 선과 명암,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형형한 안광이 인상적이다. 흑백 사진이라서 더 그래 보이는 걸까. 아니면 찍힌 사람의 아우라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보정되지 않은 깊은 주름과 어우러져서일지도 모르지. 옛날 대가들의 그 뚫어질 것 같은 눈빛이 좋아서 보면 자꾸 집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사진은 김수영과 벤야민이다.) 그래서 더 찾아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얼마 전에 ≪파리 좌안≫을 읽었던 것을 떠올려서 일지도 모르지. 

194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파리 좌안에 살았던 지식인들의 연관 관계를 다룬 책이었는데, 어딘지 낭만적인 표지와 부제와는 다르게, 초반부에 등장하는 전쟁의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하루에 한 장씩 배급되는 종이를 들고 싸구려 카페에서 하루를 나야 했던 사람들. 부족한 배급 식량 때문에 자꾸 허기가 지는 것을 묽은 커피로 채우는 사람들. 당장의 비참함을 글쓰기로 벼른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사람들. 진짜 전쟁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닌가. (이와 비슷하게 한국 전쟁 당시에 소풍을 가던 아이들을 찍은 사진도 있다.) 아무리 세세하게 전투를 재현한다 해도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전쟁의 얼굴.      


한나 아렌트도 2차 대전을 체험한 사람이다. 

1939년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고 나서는 파리로 망명했다. 1961년에는 나치 부역자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취재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를 발표한다.      

어떻게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무지하고 폭력적인 나치 정권의 억압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전후에는 역시나 폭력적인 전범에 무조건 복종했던 사람을 관찰하는 보고서를 써야 했다. 자신의 지성이 저급한 자들의 폭력과 반지성주의로 위협당하는 것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자신의 신념과 정의가 짓밟히고 무력화되는 것을 어떻게 참아냈을까.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힘을 견뎌내고 계속 살기를 결정했던 걸까. 아렌트의 사진을 보면 그런 의문이 든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파울 첼란이 전후에 시를 쓰는 것을 보고서는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나의 말은 잘못이었다.” 파울 첼란은 수용소에서의 고통, 부모가 겪은 죽음을 시로 형상화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렌트의 책들처럼 첼란의 시도 고결한 인격의 결과물이고, 사람들의 정신을 가르치지만, 그럼에도 무자비한 폭력과 거악 앞에서 본인의 작품이(나아가서는 본인의 인생이) 무력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을지. 첼란은 1970년에 센 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보다도 종전 후 25년 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게 나로서는 좀 더 충격적이다. 어떻게 그랬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잘 모르겠다.     


3

인간이 쉽게 답할 수 없는 것, 예를 들면 선과 악의 문제, 고통과 의미의 문제들은 신비의 영역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아마 이 누군가는 가톨릭 신비주의자일 것이다. 요새 읽고 있는 시몬 베유처럼.      


시몬 베유와 동문이기도 했던 보부아르는 재능 있기로 유명했던 베유가 중국에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한 것을 회상하면서 “철학적 재능보다 그 눈물 때문에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보부아르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보부아르의 천재적인 담론보다 베유의 눈물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 때문에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만약 요즘에 세계의 어디쯤에서 지진이 나고 그걸 사람들이 전해 듣는다면, 누가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울어주겠는가. 오히려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을 보고 그의 정신건강과 재능을 의심할 것이다. 감정 결핍, 인간성 결핍을 이성과 지능의 증거로 자랑하는 게 최근의 유행이니까. 


아무튼 시몬 베유의 이런 공감 능력을 염두에 두고 그녀 삶의 약력을 훑고 있으면 역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먼 곳의 지진 소식을 듣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우는 사람이 어떻게 2차 대전 레지스탕스가 되고 프랑스 망명 정부에 참여할 수 있지. 노동자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서 공장 노동을 하고, 노동 수기를 발표하며, 그들과 같이 최소한의 식량을 섭취하려다가 영양실조와 이러저러한 합병증이 겹쳐져 객사한, 베유 인생의 마지막만 보면 그녀의 감정과 삶은 자연스럽게 일치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두 부분, 정부에 참여하는 시몬 베유, 레지스탕스 시몬 베유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하니까.      


전후에도 수십 년을 살았던 한나 아렌트와 파울 첼란, 종전을 몇 년 앞두고 죽었지만 강력한 힘으로 자신을 불태웠던 시몬 베유.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추측해 봐도 딱히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는 않아서 나는 그것을 신비의 영역에 놓기로 한다. 오로지 그들 자신만이 자기 삶의 이유를 알 것이고, 그들은 주로 자기 자신에게만 그 이유를 적용했다. 개인과 그가 찾은 삶의 이유 사이에는 타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누구도 자신을 타인의 삶의 이유로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죽음의 이유가 될 수는 있다. 사람은 사람을 살게 하지 않는다. 살아감의 이유는 자신에게서만 나온다. 타인은 그것을 방해해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고 방해하지 않아서 살아감을 멈추지 않게 도울 수 있을 뿐이다. 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는 것. 나는 이를 염두에 두고 늘 자기 검열하고, 반대로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기도 한다. 죽게 하지 말아야지. 타인의 동력을 죽이지 말아야지. 내가 가진 동력에 집중해야지. 그 사람의 슬픔을 존중해야지. 


타인의 삶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이 스스로 생을 달리하기라도 하면 손가락질하는 자들이다. 자살자가 지옥에 간다느니, 남은 가족에게 죄를 짓는다느니 그런 식의 가정이 옳은지 아닌지 검증하고 싶진 않다. 단지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사회를 가장 안정적인 지옥으로 만든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해서 시시각각 눈에 보일 정도다. 이 지옥의 수문장들은 유약하다. 너무 유약해서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면서 깎아내리지 않으면 스스로를 견딜 수 없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기껏 자신을 강화해 놓더라도 타인이 그의 행복한 상황을 자랑하기라도 하면 내면이 무너져 내린다. 전쟁과 죽음에 이르는 차별과 폭력조차도 이겨낸 사람들과 달리 너무나 무력하게. 사실 아렌트와 첼란과 베유의 강인함만큼이나 이들의 약함도 기이하고 신비롭기는 하다. 별로 알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와 ≪노동 일지≫는 읽고 교훈을 배울 수 있지만, 지옥의 수문장들에게서는 무엇도 배울 것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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